장하석, 정경연, 그리고 베푸는 의사

북핵(北核) 문제에 간첩단 사건까지, 주변이 흉흉하고 온 세상이 뒤숭숭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밝다.
최근 며칠 사이에 만났던 분들에게서 청명(淸明)한 가을하늘 같은 희망을 보았다.

지난 일요일 신현호 법무법인 해울 대표, 대학 동창인 노형근 민맥정보 이사와 함께 만난 개인투자가 장하석 씨는 전 재산을 항일투쟁에 쏟아 부은 장병준 상해임시정부 외무부장의 손자다.

장 씨의 할아버지 형제 3명은 모두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펼쳐 ‘항일 3형제’로 유명하다. 항일 3형제는 후손에게 큰 재산을 남겨주지 못했지만, 후손들은 하나같이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있다. 후손들은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장하진 여성부 장관,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장하석 런던대 교수 등 한결같이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쟁쟁한 인사다.
의료계에서는 장정식 전 전남대 의대 교수와 그의 네 자녀인 장하종 조선대 의대 교수 등 이 있다. 김홍명 전 조선대 총장, 임수빈 검사 등은 가문의 사위들이다.

필자가 만난 장 씨는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대부분 그렇듯, 고학을 하며 힘든 학창생활을 보냈다. 지난해 그는 대학 동아리 선후배를 모아 장학모임을 만들었다. 가장 먼저 민주화운동을 하다 병마에 쓰러진 두 동창의 자녀를 찾아 등록금을 댔다. “그 자녀들은 모두 힘든 생활을 하면서 먼저 간 아버지를 원망했고 사회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장학금을 받으며 세상을 밝게 보는 듯 했습니다. 우리 사회를 위해 희생한 사람의 가족에게 피해만 온다면 누가 좋은 일을 하겠습니까.”

유유상종이라고나 할까, 노 이사에게 들은, 장 씨의 붕우(朋友) 정경연 전 노사정위원회 기획위원의 얘기는 베풂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한 신문사 지국장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정 씨는 후배 A씨가 등록금 때문에 학업을 지속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 전세금을 뽑아 등록금을 대주고 자신은 월세방으로 옮겼다.
정 씨는 정작 자신이 눈 수술을 받아야 했을 때 치료비를 구하느라 치료시기를 놓쳐 실명(失明)했다. 이후 후배들이 정 씨의 소식을 듣고 도움의 손길을 모으며, A씨에게도 전화를 했다. 하지만 A씨는 군색한 변명을 하면서 도움을 거절했다.
노 이사가 A씨를 고급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뒤, 다음날 A씨에 전화를 걸어 분노를 표출했다. 이에 대해 정작 정씨는 “네가 나설 일이 아니다”며 오히려 노 이사를 나무랐다. “내가 좋아서 도와준 것이지, 무슨 보상을 바란 것이 아니다. 그리고 A가 그렇게 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사람을 쉽게 비난해서는 안 된다.”

지난주 금요일 만난 한 의사가 마음을 나누는 사연 또한 감동적이었다. 그는 개원가에서 척추질환 치료의 최고 명의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술자리에서 자신에 대해 겸연쩍은 표정으로 얘기했다.
“어느 날 곰곰이 생각해보니 돈을 그렇게 많이 가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수줍은 듯 말을 이어갔다.
“아이가 결혼할 때 아파트 하나 구해주는 것하고 우리 부부 노후에 살 정도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겠어요? 자녀의 유학 비용, 외국 거주 비용까지 대야 한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자식에게 모든 뒷바라지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래서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것 이외의 병원 지분은 모두 내놓으려고 해요. 지금도 병원 직원들에게 어느 정도 지분을 나눠주고 있지만….”
그 이야기를 듣던 Y 교수는 “당신, 혹시 몹쓸 병에 걸린 것 아니야? 마치 얼마 삶이 남지 않은 것 같아”하며 농을 했지만, 동료를 존중하는 표정이 얼굴에 그득했다.
그 원장은 “의사는 환자의 심적, 경제적 부담까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며 “일부에서 환자를 수익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요즘 척추 과잉시술 논란이 뜨거워서인지, 가슴 깊은 곳을 찌르는 말이었다. “이익을 나누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하는 일이지, 남에게 강요할 일도 자랑할 일도 아닙니다. 제 이름을 내세우는 기사는 쓰지 말아주세요. 대신 나중에 소주나 한 잔 하면서 바람직한 의사의 길에 대해 토론합시다.”

주위에서 모델로 삼을 만한 사람을 며칠 새 몇 명이나 발견한 것은 대단한 행운이리라.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조금만 귀기울여보면, 묵묵히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수많은 사람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일 것이다.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건조하고 변덕스럽게만 느껴졌던 가을바람이 삽상(颯爽)하기 이를 데가 없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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