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썩정부’의 식약청 폐지

올해 미국의 슈퍼스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4년 만의 공백을 깨고 낸 앨범의 타이틀 은 ‘Back to Basics’. 우연인지 100여 년 전 구한말의 강증산이 득도한 뒤 갈파한 ‘원시반본(原始返本)’ 사상과 메시지가 같다.

요즘 필자는 작은 사업을 준비하느라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는데, 많은 이들로부터 똑같은 뜻의 덕담을 듣고 있다.

“사업이 힘들 때 처음의 원칙을 되새겨라.” 안개 속같이 답답한 형국에서 처음을 돌이키면 길이 보인다는 것은 동서고금에 통용되는 진리인 듯하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식약청 폐지, 식품안전처 신설’의 문제도 ‘처음의 정신’을 살피면 쉽사리 해답이 나올 듯 하다.

식약청은 1998년 당시 비등한 시대 요구에 따라 만들어졌다. 당시의 시대적 요구는 복지부의 식의약품 행정을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것이었다.

식의약품 행정 목표는 업체 관리 및 지원에서 식약품 안전관리와 소비자 보호로 상향돼야 했다. 이를 위해 대화 채널은 복지부와 업체 양자간 소통에서 국회, 시민단체, 이익단체 등 다양한 이해집단의 소통으로 변화해야 했다. 정책집행과정은 폐쇄적, 비밀주의에서 개방적으로 바뀌어야 했다. 관료적인 행정을 전문 행정으로 탈바꿈하라는 것 역시 시대적 요구였다.

이런 요구에 부응해 미국의 식품의약국(FDA)을 모델로 식품의약품안전본부를 복지부와 독립한 청으로 확대 신설한 것이다.

당시와 지금의 시대 요구가 달라졌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는 서둘러 식약청을 없애려고 안달이다. 기존의 의약품 업무는 보건복지부 약품관리본부로 이관하고 식품 업무는 총리 직속의 식품안전처를 신설, 이곳에서 해양수산부, 농림부 등에 흩어져 있는 농축어업 등의 생산 가공 유통 업무를 총괄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메이저 언론은 전문성 부족으로 이런 중대한 문제에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있지만, 일부 전문지를 통해 흘러나온 얘기를 종합하면 올해 급식파동 후 민관합동의 식품안전대책협의회에서 수차례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두 차례 관계장관회의가 열려 이같은 방침을 정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사안에 대해 이 정도 논의하고 결정하는 것을 충분하다고 여기는 그 발상이 놀라울 따름이다. 8개 부처의 일을 새로운 부처에 옮기는 것이 이렇게 뚝딱뚝딱 해치울 수 있는 일인가? 전형적인 탁상 행정주의이자 제도 만능주의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부처와 식품안전처의 책임 문제가 얽히고설켜 지금까지의 식품사고보다 더 큰 대형사고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식품만 총괄하는 부서가 생기면 식품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공무원의 책임 회피적 주장에 근거했다는, 정치권 일각의 비판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지금껏 대형 식품 사고는 관할 부서가 일원화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공무원의 부처 이기주의로 인한 소통의 부재와 소명의식의 부족이라는 측면이 더 크다.

올해 급식파동의 경우에도 통합 조직이 없어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급식 사고가 난 학교에서 관할 교육청과 보건소에 환자 발생을 보고했는데도 보건소가 3일이 지나서야 식약청에 보고한 ‘소명의식 부족’이 화를 키운 측면이 크다.

김치 파동 때에도 식약청에서 기생충 알의 의미에 대해 충분한 검토 없이 한 건주의식으로 덜렁 발표한 잘못이 크다.

식약청이 출범한 98년은 우리 식품행정사의 이정표가 된, 우지파동 사건의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난지 한 해 밖에 지나지 않았으며 당시 이런 식품행정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식약청을 만들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왜 없애야 하는지 아둔한 필자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약무행정도 그렇다. 정부는 복지부와 식약청으로 이원화된 의약품 행정이 통합되면 행정이 효율화하고 산업육성도 활성화한다고 주장하지만 시대는 이미 행정편의를 강조하던 때를 훨씬 지났다. 왜 갑자기 보사부 약정국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인지, 누가 좀 가르쳐줬으면 한다.

게다가 21세기는 웰빙시대이자 고령화시대이다. 건강기능식품을 비롯해 약과 식품의 경계에 있는 식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이를 관리하는 데에는 지금의 식약청 시스템이 훨씬 효과적이다. 상황이 이러니 불필요한 의심까지 사게 되는 것이다.

행정부 이전 때 식약청과 보건원이 함께 충북 오송으로 가게 돼 있지만, 열린우리당이 전북의 표심을 사기 위해 식품안전처를 만들어 그곳으로 보낸다는 말까지 나오는 것이다.

필자는 누가 뭐래도 참여정부가 100% 잘못만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미 이 나라가 결딴이 났을 터이다. 특히 실세 장관이 잇따라 둥지를 튼 복지부의 여러 정책은 소리 소문 없이 효과를 보고 있다.

하지만, 이번만은 아니다. 이런 일들이 참여정부를 ‘하고잡이 정부’, ‘얼치기 정부’, ‘386의 미숙 정부’로 채색하는 것이다. 잠시라도 가만히 못 있어 무엇인가 할 때마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전철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특히 식품의약 행정은 신뢰성이 고갱이에 있다. 신뢰성은 확실한 이유 없이 제도를 바꿀 때마다, 그래서 법적 안정성이 흔들릴 때마다 상처를 받는다. 이 경우 비수(匕首)는 정부와 국민 모두에게 돌아간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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