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지도 발표 이후

‘쓰레기더미는 더 이상 쓰레기더미가 아니다.’

2001년 사람의 유전자 지도가 발표되면서 사람의 유전자 수가 초파리의 두 배 밖에 안 된다고 밝혀지자 과학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유전자는 2만6000∼4만개에 불과하며 32억 개의 염기쌍이 꽈배기처럼 꼬인 디옥시리보핵산(DNA)에서 전체 염기쌍의 1∼1.5% 만이 유전자를 이루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는 이전 예상했던 3∼5%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과학자들은 유전자만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고 봤지만 이제 유전자와 유전자 사이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 ‘쓰레기더미’로 불렀던 98.5∼99%의 염기쌍들에 주목하게 됐다.

일부 과학자는 한때 “DNA의 3∼5%만 인간에게 유용하며 나머지는 아무 의미없는 쓰레기더미이기 때문에 이들까지 분석하는 것은 시간과 예산 낭비”라고 주장했다. 일부에선 쓰레기더미는 유전자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 땅투기한 것일 따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체를 분석한 결과 엉뚱한 결과가 나왔다. 도대체 1∼1.5%만 유전자라면 인류와 초파리의 차이가 두 배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과학자들은 당장 두 가지 가설에 주목했다.

첫째, 탤런트 A씨가 몇 개의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처럼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둘째, 지금껏 탤런트만 중요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연출자가 더 중요하며 ‘쓰레기더미’가 바로 연출자다. 연출자가 탤런트의 출연 스케줄을 조절하듯 쓰레기더미는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등 주요 역할을 한다는 것.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것도 지금껏 푸대접받은 염기쌍의 연출 때문이고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도 초파리의 두 배 밖에 안되는 유전자보다 ‘쓰레기더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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