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안에 죽는다”…20대女 안락사 최종 승인 받아

만성 우울증, 불안, 트라우마, 경계성 인격 장애, 자폐증 등 앓은 29세 네덜란드 여성...의사조력자살 신청해 3년 반만에 승인

신체적으로 건강하지만 극심한 우울증을 앓은 네덜란드 20대 여성이 조력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진=미국 일간 뉴욕포스트 보도 갈무리]
신체적으로 건강하지만 극심한 우울증을 앓은 네덜란드 20대 여성이 조력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가 조력자살을 신청한지 3년 반만이다.

영국 가디언, 미국 일간 뉴욕포스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네덜란드 당국은 견딜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이유로 의사 조력 자살(안락사)을 신청한 조라야 테르 비크(29세)에 대해 조력 자살을 최종 승인했다.

비크는 불우한 어린시절로 인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겪은 후 2020년에 처음으로 조력 자살을 신청했다. 한때 정신과 의사를 지망했던 비크는 만성 우울증, 불안, 트라우마, 경계성 인격 장애를 앓고 있었으며 자폐증 진단을 받기도 했다.

비크는 자신의 연인이 제공한 안정적 환경에서 정신적 치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고 계속해서 자살 충동을 느끼고 자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자신이 죽고 싶었던 것은 단지 정신 질환 때문이었다고 비평가들에게 반박했다.

비크는 “3년 반이 걸리는 동안 내 결정에 대해 한 번도 망설인 적이 없다. 파트너, 가족, 친구들이 있고 그들의 고통을 모르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고 두려움도 느꼈다. 하지만 내 일을 해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몆 주안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자택에서 진정제 투여하고 심장 멈추는 약물 사용  

네덜란드 법에 따르면 조력 자살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려면 ‘개선의 가능성이 없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고 판단돼야 한다. 조력 자살을 요청하는 환자는 의료진의 평가를 받아야 하고, 자격에 대한 두 번째 의견을 받은 다음 제 3자의 외부 의사가 전체 사례를 검토해야 한다.

그는 “내가 신청한 조력 자살 과정은 생각보다 길고 복잡하다. 월요일에 조력 사망을 요청하면 금요일에 죽는 것과는 다르다. 정신적 고통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조력 사망에 관여하려는 의사가 너무 적어서 오랫동안 심사 대기자 명단에 올라 있었다”고 말했다.

비크는 지난 4월 자신의 사례에 관한 기사가 게재된 후 소셜 미디어 프로필을 모두 삭제해야 했고, 많은 사람들로 부터 조력자살 절차를 진행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이로 인해 괴로움을 겪기도 했다.

그는 “사람들은 ‘당신의 생명은 소중하니 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왔다. 나도 안다. 다른 사람들은 (내 우울증을 완화하기 위해) 특별한 식단이나 약물 같은 치료법이 있다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예수나 알라를 찾으라 했으며 지옥에 떨어질거라 말하기도 했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모든 부정적인 말을 감당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비크는 의료진과의 면담 후 몇 주 안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망 당일, 의료진이 비크의 자택을 방문해 진정제를 투여하고 혼수상태에 빠지면 심장을 멈추는 약물을 투여하는 과정을 시작한다.

그는 이에 대해 “안도감을 느끼고 정말 긴 싸움이었다. 잠이 드는 것과 같을 것이다. 내 애인이 곁에 있겠지만 죽음의 순간이 오기 전에 병실을 나가도 괜찮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그 시점이 왔고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고 평화를 찾고 있다. 나도 죄책감을 느낀다. 때로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를 보내줘야 할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안락사 합법인 네덜란드…우리나라도 안락사 허용 목소리 높아지고 있지만 제도적 벽 높아 

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약물을 투여하는 방식의 안락사가 합법화된 나라다. △환자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으며 △나아질 가능성이 없으며 △의사 2명 이상이 이를 확인하는 등의 엄격한 조건 아래서만 안락사가 허용된다. 2022년 기준 안락사로 사망한 인구는 8720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5.1%를 차지한다.

지난 2월5일 네덜란드 전 총리 부부가 안락사로 함께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으로 ‘존엄한 죽음’이 다시 이슈가 되기도 했다. 판 아흐트 전 총리는 93살 동갑인 아내와 70여 년 함께 살아왔고, 2019년 팔레스타인 추모행사에서 연설 중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회복되지 않아 안락사를 결심했다. 두 사람은 의사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부부가 동시에 안락사한 경우는 네덜란드에서 2022년 58건이었다.

우리나라는 2018년 존엄사라 불리는 연명 의료 중단을 합법화했지만, 아직 의사 조력 자살을 포함한 안락사는 불법이다. 연명 의료 중단은 생의 마지막에 인공 호흡기 착용과 심폐소생술 등 무의미한 연명을 중단하는 것이다. 환자와 가족의 고통이 갈수록 커지고, ‘간병 살인’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면서 존엄한 죽음을 위해 안락사를 원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교수팀이 2021년 19세 이상 1000명을 조사한 결과 76.4%가 의사 조력 자살 합법화에 찬성했다. 이후 말기환자가 의사의 도움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의사조력자살’ 신설 법안이 2022년 6월 발의됐다. 다만 국민을 대상으로 한 다른 조사에서는 의사조력자살보다 간병비·의료비 지원, 호스피스·완화의료 확충이 먼저라는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여전히 의사조력자살은 의료계나 정치계에서 “자살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 등의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이에 안락사 찬성자들은 안락사 허용국들이 의사 확인서와 별도 전문가 위원회 승인 등 엄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런 가이드를 제도화해 시행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정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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