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말할 수 없는 직장인들, “우울증의 함정”

[사진=ESB Professional/shtuterstock]
“직장인은 우울증을 앓아도 숨기는 경우가 많아요. 이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울증이 심하면 업무 능력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건강을 더욱 해치고 저성과자로 몰릴 수 있습니다. 우울증을 상사나 동료에게 알리고 잠시 쉬는 게 좋습니다.”

직장인 김진수(남, 45세) 씨는 우울증을 숨기고 일하다 오랜 휴직 끝에 결국 회사를 그만 둔 케이스이다. 승진 욕심에 과로가 잦았던 그는 불면증과 의욕 상실에 시달리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한 달 정도의 휴직을 권했지만, 그는 출근을 고집했다.

그는 “우리 회사의 인사고과는 성과, 근태관리가 엄격하다”면서 “연말 인사에서 승진하기 위해서는 아파도 참고 일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특히 우울증 환자로 소문날 경우 사내에서의 이미지 훼손도 우려했다. ‘정신력이 부족하다’거나 ‘의지 박약자’로 찍힐 가능성을 걱정했다는 것이다.

– 우울증 환자의 후회 “치료에만 전념했더라면…”

김 씨는 이제야 후회하고 있다. 건강이 악화된 그는 결국 1년여의 휴직 끝에 자의반타의반으로 회사를 나와야 했다. 그는 “일찍 병가를 내고 우울증 치료에만 전념했더라면 나중에 퇴직까지는 몰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평소 업무능력이 뛰어나고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우울증에 걸린 후 자주 중요한 일을 빠뜨리고 의욕이 없어진 모습을 보였다. 우수사원이었던 그가 상사로부터 “대체 일을 할 생각이 있냐”는 핀잔까지 받을 정도였다.

우울증을 앓게 되면 의욕이 없어지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불면증으로 근무시간에 조는 일도 잦다. 직장에서는 생산력 감소가 두드러지고 대인관계도 원활하지 않게 된다. 우울증 환자는 해고 등을 우려해 회사에 자신의 병을 알리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상사나 동료의 오해를 살 수 있다. 업무와 관련된 직원들은 “일이 진척이 안 된다”면서 불만을 토로한다.

– 고용불안은 정신건강을 악화시킨다

우울증은 ‘명퇴’ 등 퇴직 압박을 받는 40-5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 급격히 늘고 있다. 이들 중에는 가정보다는 직장에 전력투구해온 ‘회사형 인간’들이 많다. 자신에게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던 직장에서 밀려날 상황을 맞으면 갑자기 우울증에 빠져들 수 있다.

김승섭 고려대 교수(보건정책관리학부)는 “고용불안은 정신건강을 악화시키고 심장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많다”면서 “실제 해고되지 않았더라도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은 노동자의 삶을 잠식하고 몸을 아프게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또 쉬는 만큼 그대로 월급이 깎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연차나 병가를 쓰지 못한 채 몸이 아파도 참고 일했다”면서 “회사에 밉보이면 언제 해고될지 모르니, 그들은 더 많이 아파도 덜 쉬었던 것”이라고 했다.

– 비밀이 보장된 직장 내 의사소통이 중요

우울증은 정신과 치료가 필수적인 뇌질환이다.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저하되면서 생긴다. 우울증이 깊어지면 꼭 항우울제를 복용해야 한다. 우울한 기분은 건강한 사람도 느낄 수 있다.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우울증이란 일시적으로 기분만 저하된 상태가 아니다. 생각의 내용, 사고과정, 의욕, 관심, 행동, 수면, 신체활동 등 전반적인 정신기능이 떨어진 상태를 말한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우울증이 기업의 생산력 감소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중시해 적절한 치료와 함께 직장 복귀까지 도와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사원들의 우울증 조기발견과 스트레스 관리가 회사에 더 큰 이득을 준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비밀유지가 중요하다. 비밀이 보장되지 않으면 직장 내에서 솔직한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국내에서도 몇몇 기업에서 도입하고 있지만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 “병을 드러내라” 우울증은 조기 치료가 가능하다

일부 환자의 경우 우울증을 병으로 보지 않고 방치하다가 극단적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아직도 우울증은 정신력이 약해서 생긴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가족이나 친구의 역할도 중요하다. 짜증이나 무기력 등의 증상을 비난하지 말고 우울증인지 의심해보고 공감하며 치료를 권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의 정신건강 실태조사(2016년)에 따르면 국내 우울증 환자는 61만여 명이 넘지만 이중 치료를 받는 비율은 15%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료를 미루면 상태가 악화돼 완치가 어렵게 된다. 자살자의 상당수가 우울증 환자임을 명심해야 한다.

다행히 우울증은 효과적으로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다. 초기 완쾌율이 2개월 내에 70-80%에 이른다. 하규섭 서울대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 관리를 제대로 못해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과 속을 터놓고 얘기하고,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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