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빅 데이터’ 갈등, 유럽은 어떻게 해결했나?

[사진=dencg/shutterstock]
인공지능(AI)이 헬스 케어에 접목되면서 의료 정보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지만, 의료 정보 오·남용으로 인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무조건 개방을, 한쪽에서는 무조건 보호를 외친다. 쳇바퀴 돌고 있는 의료 빅 데이터를 제대로 논의하려면 의료 빅 데이터를 수단으로만 보는 정부의 관점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0일 무상의료운동본부, 참여연대 등 노동 시민 사회 단체는 국회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정부의 개인 의료 정보 관련 사업에 대해 반대 의견을 표했다. 단체는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의료 빅 데이터 사업과 규제 완화 움직임이 개인 의료 정보를 민간에 공유하도록 해 사회적 낙인 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현재 정부는 업계, 의료계, 학계 등과 함께 3개에 달하는 대규모 의료 빅 데이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의료 정보는 유전체 및 진료 데이터, 라이프로그 등을 총칭한다. 진료 내역, 유전병 등을 포함하는 민감 정보이기 때문에 무분별한 공유로 사회적 낙인·차별이 일어날 경우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향후 병·의원 진료나 투약 정보 등 민감한 의료 정보가 보험사나 제약사 등으로 제공될 경우, 개인 의료 정보가 무분별하게 활용되면서 개인이 밝히고 싶지 않은 병력의 유출로 평생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의료 정보 활용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AI를 활용한 질병 진단 및 맞춤형 치료를 위해선 축적된 빅 데이터로 AI를 학습시키는 것이 필수다. 정보가 많고 질이 높을수록 AI의 능력은 더 좋아진다. 하지만 현재 의료 정보는 개인정보보호법, 의료법 등에 따라 제3자에게 공유가 불가하다. 자체적으로 의료 정보를 꽤 축적한 대형 병원은 사정이 낫지만, 소규모 헬스 케어 스타트업의 경우 AI의 연료에 해당하는 의료 정보를 얻기가 어려워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개발에 난항을 겪고 있다. 한 헬스 케어 스타트업 관계자는 “환자 정보의 접근과 활용이 힘들다는 게 개발의 어려운 점”이라고 꼽기도 했다.

양날의 검과 같은 의료 빅 데이터가 산업 활성화에 기여하면서도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방안으로 활용될 수 있을까?

영국 및 유럽은 좋은 참고 사례로 꼽힌다. 유럽은 최근 개인 정보 보호 규제(GDPR)를 통해 빅 데이터의 활용 가능성을 높이면서도 삭제권, 이동권 등 정보 주체의 권리를 강화했다. 공익적 목적과 상업적 목적의 연구를 구분해 규제하며, 의료 정보를 분석한 AI가 알고리즘에 따라 자동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에 종속되지 않을 권리도 담았다. 영국도 의료 정보를 민간 기업이 연구에 활용할 수 있지만, 독립된 검증위원회가 어떤 정보를 어디에 활용했는지, 목적 외 용도로 쓰지 않았는지 수시로 감독한다.

반면 한국은 정부가 경제 활성화나 일자리 창출 목적의 수단으로만 의료 빅 데이터 활용을 바라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다 보니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찬반 대립으로만 흐르기 일쑤다. 제대로 된 감독, 관리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선 빅 데이터를 바라보는 관점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것.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건강형평성연구센터장은 “정부가 성장 동력으로 빅 데이터 사업 등을 주도하고 있는데, 그로 인한 경제적 이득도 있겠지만 그에 따른 사회적 폐해도 커질 것”이라며 “지금도 만연한 혐오, 차별, 불평등에 이어 과거에 없던 불평등도 생기는 일이 초래되지 않도록 관점과 전제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새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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