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의 고백 “유전성 암…다 제 불찰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이어 저도 위암 환자가 됐습니다. 조심하긴 했는데, 일에 치여 한동안 방심했어요. 그동안 제가 워낙 건강해 보여 유전성 암을 의심하는 친구도 있지요. 해외에서 귀국하자마자 검사를 서둘렀기 때문에 최악은 피한 것 같습니다. 가족력을 의식한 게 도움이 됐어요.”(40대 남성 위암 환자 김 모 씨)

김 씨는 위암 2A기 진단을 받았다. 종양이 위 벽의 점막을 침범하고 주위 림프절 3개에 전이가 됐지만 다른 장기까지 암이 퍼지지 않아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단계였다. 그는 아버지가 위암으로 별세한 후 가족력을 걱정해 정기적으로 위내시경 검사를 하는 등 신경을 써왔다. 하지만 사업 때문에 해외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검진을 소홀히 했다. 귀국 직후 한 건강 검진에서 위암 판정을 받았다.

그는 아버지와 식성이 비슷했다. 간이 잘 된 짠 음식을 좋아했고, 직장 회식 때도 탄 고기를 주저하지 않고 먹었다. 가족끼리 식사할 때면 찌개 하나를 놓고 각자의 숟가락으로 떠먹곤 했다. 아버지가 별세한 후 식습관을 고친다고 했지만, 바쁘게 생활하다보니 ‘설마’하고 무심코 넘기기도 했다. 그는 “충분히 암을 예방할 수 있었는데, 내 불찰로 환자가 됐다”면서 “그나마 비교적 일찍 발견한 게 다행”이라고 했다.

– 암 환자 중 5-10%는 유전성 암.

암은 유전이 된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암의 원인에 가족력을 포함시키고 있다. 국내외 의료진은 암 환자 중 5-10%는 유전성 암에 해당한다는데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다른 암에 비해 가족력이 두드러지는 것이 유전성 유방암, 난소암, 유전성 비용종증 대장암 등이다.

김은선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는 “유전자는 암을 억제하거나 손상된 염색체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면서 “이러한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유전성 암이 발생하게 되고 이로 인해 젊은 나이에도 암 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유전성 암이 의심되면 유전자 검사 및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 유전성 암은 주로 젊은 나이에 생긴다.

유전성 대장암의 경우 태어날 때부터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젊은 나이에 발생한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유전성 대장암은 유전자의 기능이 대장에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장기도 이상을 보이는 수가 많다. 대표적인 유전성 대장암의 하나인 유전성 비용종증 대장암은 유전성 암 가운데 발생 빈도가 가장 높다. 가족성 선종성 용종증의 경우 선종이 수백, 수천 개나 생기기 때문에 대장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가족성 선종성 용종증은 제 때 치료를 하지 않으면 100% 대장암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립선암 환자 중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9% 정도로 알려져 있다. 형제 중에 전립선암 환자가 있으면 발병 확률이 3배 정도로 높아지고,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한쪽이 전립선암이면 다른 쪽도 생길 확률이 4배 이상이 된다. 전립선암의 가족력이 있는 집안은 발병 가능성이 8배 정도 높다. 유전성 전립선암은 일반 전립선암에 비해 7년 이상 빠른 55세 이전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손자까지… 3대가 췌장암 환자.

5년 상대 생존율이 낮은 암으로 꼽히는 췌장암은 유전적 소인이 약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암정보센터에 따르면 다른 악성 종양 없이 한 집안에서 3대에 걸쳐 췌장암이 발생한 사례가 있다. 케이라스(K-Ras)라는 유전자의 변형이 췌장암의 90% 이상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은 주목할 할만하다. 이는 모든 암 종류에서 나타나는 유전자 이상 가운데 가장 빈도가 높은 것이다.

유방암도 5-10%에서 유전적 요인이 작용한다. 어머니나 자매 어느 한쪽에 유방암이 있는 사람은 둘 다 암이 없는 사람에 비해 유방암 환자가 될 가능성이 2-3배 된다. 어머니와 자매가 모두 유방암 환자라면 위험도는 8-12배로 늘어난다. 위암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위암 발생률이 2배로 증가한다. 유전 요인보다는 가족의 식습관이 비슷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신장암(신세포암)도 가족력이 있으면 위험도가 4-5배 증가한다. 전체 신세포암 중 유전성은 4-5%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유전성 신세포암은 비유전성에 비해 좀 더 일찍 발병하고 다발성으로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폐암은 대부분 흡연 등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유전성은 드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도 가족력이 있으면 발병 위험이 2-3배 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 가족 중에 암 환자가 얼마나 많으면 유전성일까?

김은선 교수는 “유전성 암은 멘델의 유전 법칙에 따라 유전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상염색체 우성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부모 중 한 명이 암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면 자녀의 절반 가량의 확률로 암이 생기고, 암에 걸린 자손의 자녀도 절반 정도 암 환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부모나 형제 등 직계 가족 가운데 50세 이전에 췌장암에 걸린 사람이 한 명 이상 있거나, 발병한 나이와 상관없이 직계 가족 가운데 췌장암 환자가 둘 이상 있다면 유전성 췌장암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인 55세 이전에 발생하는 전립선암은 유전적 요인이 45% 정도나 되는데, 부계의 가족력뿐 아니라 모계의 가족력도 중요하다.

– 유전자 검사 고려, 정기 검진은 필수.

가족력이 있다고 해서 모두 암에 걸리지는 않는다. 가족력이 있는 사람이 암 환자가 될 경우 모두 유전성은 아니다. 그러나 가족력을 의식하면 암 예방과 조기 발견에 도움이 된다. 유전적 소인이 의심될 때는 전문의와 상의해 유전자 검사 등을 고려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정기적인 검진이 중요하다.

유창식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가족 중 대장암이나 용종, 그리고 자궁내막암, 난소암, 위암 등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대장암 발생의 위험군으로 여겨진다”면서 “부모, 형제 등 직계 가족 중 대장암 환자가 있다면 나머지 가족의 대장암 발생 위험이 2-3배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정기적인 대장내시경 검진이 중요하다”고 했다.

[사진=Magic mine/shutterstock]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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