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환영에도 연명 치료 가능 병원 10% 이내

환자 A씨는 임종기에 불필요한 연명 치료를 받지 않길 원해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를 작성했다. 건강이 좋지 않아진 A씨는 가정 내 돌봄이 어려워 요양 병원에 입원했다. 임종기에 이른 A씨는 연명 의료를 중단하고 싶었지만 등록 기관이 아닌 요양 병원에서는 A씨의 의향서를 확인할 수 없었다. 결국 A씨는 심폐 소생술, 산소 호흡기 등 연명 치료를 받고 연명 치료 완전 중단을 위해 서울 대형 병원에 새로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지 5개월 동안 연명 의료 의사를 표한 국민이 4만 여명을 넘겼다. 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현장의 혼란은 여전하다.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 대한병원협회는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명 의료 결정 제도 시행 5개월, 현장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모색 토론회’를 개최했다. 최도자 의원은 “현재 연명 의료 중단의 절반 이상은 환자가 아닌 환자 가족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며 “다양한 가족 형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현행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허대석 서울대학교 의과 대학 교수는 ‘환자의 의사 추정,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라는 이번 토론회의 주제에 대해 “많은 국민의 바람, 국회 절대 다수의 동의를 얻어 연명 의료 결정법이 통과됐지만 연명 의료 결정법을 따르는 의료 기관은 소수의 대형 병원뿐”이라고 했다.

현행법상 의료 기관이 연명 의료 결정법을 이행하려면 의료 기관 내에 윤리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허대석 교수는 “요양 병원 등 중소형 병원은 윤리위원회, 전담 인력을 두기 어려워 법을 따르지 않고, 대형 병원 역시 복잡한 요건을 따르기 어렵다는 문제, 법을 지키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법이 아닌 내부 지침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연명 의료 결정법을 따르는 의료 기관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현실에 더해 환자 본인의 의사대로 연명 치료 중단 결정을 내리는 비율도 적었다. 허대석 교수는 “등록 기관 등을 통해 본인이 계획서를 작성한 환자를 제외한 대부분은 가족에 의한 추정, 대리 결정에 따라 연명 치료를 중단한다”고 말했다.

허대석 교수는 대만, 일본, 미국 등 해외 연명 의료 결정 사례를 소개하며 우리나라의 연명 의료 결정법이 ‘환자를 위한 최선의 이익’보다 ‘환자의 자기 결정권’에 과도한 비중을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대석 교수는 “대다수 국가는 임종기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의료진의 의학적, 인도주의적 판단에 힘을 싣는다”며 “환자의 자기 결정권은 뇌사, 식물 인간 상태 등 일부 환자에 별도로 적용되는 법을 둔다”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환자의 입장에서 무엇이 최선인가라는 대원칙에 따라 연명 치료 결정의 범주를 유연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토론에서는 연명 의료 결정법 시행 이후 더 많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환자 본인의 의사보다 환자를 위한 최선의 이익을 강조한 허대석 교수의 주장과 달리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신성식 중앙일보 기자는 환자의 자기 결정권에 무게를 뒀다.

안기종 대표는 “연명 의료 결정법이 만들어진 당초 취지는 일상에서 혹은 치료 현장에서 의료진과 환자가 협력해 자신의 죽음을 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자는 것”이었다며 “복잡한 절차에 대해 의료 수가를 높이고 이를 통해 정부 차원에서 대규모 캠페인을 벌이는 등 사회적 논의를 부상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신성식 기자 역시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한 2009년 김 할머니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현행 연명 의료 결정법의 근간이 됐다”며 “현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정비는 필요하나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신중히 개정 시기를 정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최도자 의원은 지난 6월 25일 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데 동의가 필요한 가족의 범위를 기존 ‘환자 가족 전원’에서 ‘배우자, 1촌 이내의 직계 존비속’ 등으로 변경하는 연명 의료 결정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사진=benedix/shutterstock]

    맹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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