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은 아내 탓? 임신 전 관리 외면하는 남편들

 

임신 전 관리를 위해 병원을 찾은 여성 5명 중 1명 정도만 남편과 함께 상담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한 임신을 위한 과정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책임에 비해 남성에 대한 관리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1일 제일병원 비뇨기과 최진호, 산부인과 한정열 교수팀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제일병원에서 임신 전 관리를 목적으로 진료한 여성 260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이들 중 23.5%(61명)의 배우자만 임신 전 상담을 위해 비뇨기과를 찾았다.

비뇨기과에서 진료를 받은 남편들 중 정액검사 이상 소견은 2명 중 1명꼴인 45.9%(28명)에서 확인됐고, 비임균성 요도염 원인균 감염은 29.5%(18명), 남성 난임의 주요 원인인 정계정맥류는 18%(11명), 염색체 이상은 1.6%(1명)에서 진단됐다.

연구팀은 “실제 진료를 받은 남성이 소수인 것을 감안할 때 병원을 찾지 않은 남성으로 범위를 넓히면 건강한 임신을 저해하는 원인을 가진 남성이 훨씬 많을 것”으로 분석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요인을 빼면 의학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난임 요인은 각각 반반으로 보고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난임의 책임은 여성에게 전가되고, 건강한 임신을 위한 과정보다 임신의 결과에만 집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실제 정부가 지난 2013년 발표한 체외수정시술 난임 원인 분석 결과를 보면 여성 요인이 31.3%나 되는데 남성 요인은 6.2%에 그쳤다. 시험관 아기 등 보조생식술의 발달이 난임 부부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남성 건강에 대한 진단과 치료가 생략되고 있는 현실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남성 요인에 대한 적극적인 진단과 치료의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남성의 초혼 연령과 맞물려 있다. 남성의 정액도 나이 들수록 사정량과 운동성, 정자의 수 등이 감소한다. 한국 남성의 초혼 연령은 2014년을 기준으로 만 32.8세로, 20년 전보다 4세 이상 높아졌다.

결혼 연령이 높아지면서 질병, 유해약물, 작업환경에서 발생하는 독성물질, 부적절한 생활습관 등 정액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노출되는 시간 역시 길어지는 것도 남성이 반드시 임신 전 관리를 받아야 하는 이유로 꼽힌다.

부부의 경제력과 나이, 연상연하 등 특수성이 임신 계획에 반영돼야 하고, 비만, 당뇨 등 질병과 생식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수술 여부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특히 고혈압약, 전립선비대증 및 탈모약, 항진균제 등은 정자의 형성과 질 자체를 떨어뜨릴 수 있다. 탈모약 성분인 5알파환원효소 억제제는 투약 중단 후 회복까지 3-12개월이 걸린다는 보고도 있다.

취미 활동 역시 평가 대상이다. 몸매관리를 위해 먹는 스테로이드 함유 단백질 보충제는 고환위축, 무정자증 등 치명적인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화학물질과 중금속 물질이 포함될 수 있는 유기용제로 작업하는 수제가구 만들기, 그림 그리기, 도자기 제작 등도 생식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임신계획이 있다면 중단을 검토해야 한다. 직업상 독성물질을 다루거나 보호복 착용, 고온의 작업환경에서 근무하는 남성도 임신 전 관리를 받아야 한다.

최진호 교수는 “임신 전 남성 관리에 대한 인식이 현저히 떨어져 대다수의 남성들은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봐야한다”면서 “임신이 안 돼 병원을 찾은 후에는 건강한 상태로 되돌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위험요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임신 전 남성관리’라는 제목으로 한국모자보건학회지 최근호에 실렸다.

    배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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