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탈리스트 지원자 없어… 도입 불투명

 

지난 1984년 미국 뉴욕병원 응급실에서 여대생 리비 지온이 사망했다. 병원에서 그를 맡았던 의사는 인턴과 레지던트 1년차였다. 이들은 36시간을 자지 못한 채 40명의 환자를 맡았고, 지온을 본 다음 응급실에 있는 수십 명의 환자를 본 뒤에야 처치에 나섰다.

뉴욕주의 변호사였던 지온의 아버지는 병원과 의료진을 의료사고로 고소했고, 조사 과정에서 여러 가지 쟁점을 제시했다. 그 중 하나가 36시간 교대근무를 서는 수련의 실태였다. 지온이 사망한 지 20년 후인 지난 2003년 미국에서는 수련의들의 장시간 근무를 금지하는 ‘리비 지온법’이 제정됐다. 이와 맞물려 병동전담의인 호스피탈리스트가 등장했다.

호스피탈리스트가 도입되자 인건비 부담 등으로 반대 여론이 불거졌다. 하지만 신속한 치료 결정으로 환자들의 재원기간이 줄어들고, 포괄수가제 아래에서 병원 수입은 늘어났다는 보고가 나오면서 적극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 내 호스피탈리스트 수는 4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공의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향후 전공의 수련시간 감축에 따른 진료공백을 메우기 위한 호스피탈리스트 도입이 검토되고 있다. 울산대와 분당서울대, 충북대 등 3개 대학병원에서 지난해 9월부터 이달까지 미니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병원 외과병동에는 2명의 호스피탈리스트가 근무 중이다.

하지만 호스피탈리스트제도가 국내에 제대로 도입될지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최근 내과 호스피탈리스트 모집에 나선 대형병원들이 미달사태를 빚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이 모집기간을 1주일 연장해 지난 1~19일까지 4명을 모집했으나, 지원자는 1명에 그쳤다. 삼성서울병원도 지난 17일까지 한 달간 2명을 모집했지만, 1명만 지원했다.

서울아산병원은 오는 29일까지 채용공고를 냈는데, 이미 지난달 모집에 나섰다 연장한 상황이라 정원을 채울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 병원은 지난달 정원 3명 중 2명을 고용했다. 호스피탈리스트는 교대근무를 선다. 순환근무가 가능해야 하는데, 정원에 한참 미달되니 모집정원을 못 채운 병원들은 호스피탈리스트 도입을 보류할 것으로 전해졌다.

연봉 1억원에 당직수당을 따로 주고, 오프가 확실해도 미달되는 데에는 불안정한 신분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한내과학회 회장인 정남식 연세대의료원장은 “미국처럼 의료공백을 해소하고, 환자안전과 의료의 질 향상을 꾀하려면 호스피탈리스트 도입을 고려해야 하지만, 선결과제도 많다”며 “호스피탈리스트의 직위와 업무 범위에 대한 정립이 먼저 이뤄져야 안정적인 제도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호스피탈리스트가 정착된 뒤 전문의들이 택하는 진로의 한 갈래로 자리매김했다. 우리 돈으로 연봉이 1억6천만원 정도로 높아 대학 다니면서 학자금을 대출한 젊은 전문의들에게는 자기 시간도 분명하고 빚을 갚기에도 좋다보니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이수곤 대한내과학회 이사장은 “전공의 수련환경을 개선했는데 거꾸로 갈 수는 없다”며 “호스피탈리스트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가는 것이라 적절하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수가체계 개편 없이는 호스피탈리스트 도입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정남식 대한내과학회 회장은 “전공의를 교육생으로 볼 것인지, 직장인으로 볼 것인지 시각차가 있는데, 전공의 수련은 국가의 기간 전문 인력을 키워내는 것”이라며 “신분보장, 업무내용을 떠나서 호스피탈리스트 도입을 위해서는 정부지원이 필요하다. 지금의 의료수가체제로는 도저히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배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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