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기억’ 의도적으로 감출 수 있다

 

과거에 있었던 일 중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들이 있다. 육체적으로 고통 받았던 기억, 누군가와 이별했던 기억 등이 그렇다. 죄책감이 동반되는 범죄 유형의 기억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의도적으로 범죄와 관련된 기억을 지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결백한 사람들의 뇌와 동일한 활동 양상을 보이게끔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심리학회의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저널’에 이와 관련된 논문을 발표한 미국 텍사스대학교 오스틴 캠퍼스 연구팀이 실험실 기반 범죄모의실험을 진행했다. 이 실험을 통해 실험참가자들이 죄책감이 드는 기억을 간파 당하지 않도록 숨길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연구팀은 학부생 78명을 모집해 세 그룹으로 나눈 뒤 각 그룹에 학생들을 무작위로 포함시켰다. 그리고 이 중 2그룹은 ‘죄책감이 드는 그룹’으로 분류했다. 이 학생들에게 교수의 메일박스에서 특정한 물건을 찾은 뒤 훔치라는 과제를 부여한 것이다.

특정한 물건이란 반지를 의미하지만 연구팀은 ‘반지’라는 단어를 명확히 언급하지 않았다. 연구팀의 지시로 반지를 훔쳤다는 기억을 생산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한 장치다.

세 번째 그룹은 ‘결백한 그룹’으로 분류했다. 이 그룹에 속한 학생들은 앞선 두 팀과 마찬가지로 교수의 메일박스가 있는 공간으로 갔지만 반지를 훔치는 대신 포스터 보드에 자신의 이니셜을 간단히 남기도록만 했다.

죄책감이 드는 그룹에 속한 학생들 중 일부에게는 연구팀이 진행하는 검사를 받는 동안 물건을 훔친 기억을 떠올리지 말라고 요구했다. 이와 같은 요청을 한 뒤 연구팀은 ‘숨긴 기억검사(CIT)’를 진행했다.

CIT 검사는 뇌파의 변화를 감지하는 검사로, 각 개인이 범죄와 연관된 특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평가하는 테스트다. 연구팀은 이 검사를 실시하기 위해 실험참가자들에게 범죄와 연관이 있는 반지, 범죄와 무관한 아이템인 팔찌, 목걸이, 시계, 커프스 단추, 펜던트, 지갑 등을 보여주었다.

해당 물건들을 보는 동안 실험참가자들의 뇌는 뇌전도 장치를 이용해 측정했다. 그 결과, ‘P300’이라는 특정 뇌파의 변화가 감지됐다. 이 뇌파는 특정한 기억을 의식적으로 끄집어낼 때 반응을 보인다.

죄책감이 드는 그룹에 속한 실험참가자들은 범죄와 무관한 자극이 가해졌을 때보다 범죄와 관련이 있는 자극(반지)이 가해졌을 때 좀 더 큰 P300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앞서 연구팀이 범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지 말라고 요구한 그룹은 또 다른 뇌 반응을 보였다. 반지를 볼 때와 또 다른 아이템을 볼 때 P300의 반응 차이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결백한 그룹에 속한 학생들과 구분되지 않는 뇌파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범죄에 대한 기억을 감출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또 기억력을 의도적으로 감췄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효과에 대해 추가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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