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왕이다, 전자레인지에 돌리지 마라”

 

정은지의 식탁식톡 (11) / 브로콜리

자꾸 사람들이 ‘브로콜리 너마저…’ 그러길래 무척 궁금했어요. 이는 인디밴드 이름이라죠? 덕분에 서양채소로 생소하게만 들렸던 제 이름이 사람들에게 더욱 익숙해진 것 같아요. 하지만 특이한 밴드이름을 짓고 싶어서 ‘왕건이 브로콜리’, ‘너마저 맛없어’를 합쳐서 ‘브로콜리 너마저’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살짝 눈을 흘겼어요. 맛이 없어요? 제 참 맛을 모르고 그런 것 같네요.

맛과 영양을 말씀 드리기 전에, 뽀글 머리 스타일과 잘 어울리는 브로콜리라는 제 이름에 대해 소개할게요. 원래 ‘팔’ 또는 ‘가지’를 뜻하는 라틴어 ’Brachium’에서 유래된 제 이름은 이탈리아인들이 애용하면서 ‘브로콜로’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이탈리아 사람들에 의해 전파되면서 영어식 이름 ‘브로콜리’ 가 되었다지요. 어찌됐든 이름의 어원은 작은 뽀글 머리통들이 모여 하나의 큰 송이를 이루고 있는 제 모습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해요. 한국식으로는 ‘녹색 꽃양배추’로 명명 되어 있더군요.

제가 다방면에서 ‘채소의 왕’이자 ‘슈퍼푸드’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것은 설포라판이라는 성분 덕분입니다. 설포라판은 강력한 항산화 효과를 가지고 있는 슈퍼성분으로 항암 작용뿐 아니라 헬리코박터 파이로리 균을 억제하는 기능을 합니다. 제 사촌들인 양배추, 콜리플라워, 케일, 콜라비 등 십자화과 채소에 많이 함유돼 있지요.

이 설포라판은 무엇보다 제가 어렸을 때, 새싹에 최고로 많이 함유돼 있는데요. 자란지3일된 제 새싹은 성채 브로콜리 보다 20-25배 넘게 설포라판을 품고 있습니다. 이 새싹 브로콜리 설포라판의 함유량은 또 다른 십자화과 채소보다 적게는10배 많게는 100배에 이르는 수치입니다. 항암효과 외에 제 안의 설포라판이 얼마나 매력적인 성분인지 들어보실래요?

선크림에 버금가는 천연피부 보호제 효능이 있습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분자약물학자인 폴 탈라레이 박사팀은 저의 새싹에서 추출한 설포라판이 자외선에 의한 피부손상을 막는데 선크림보다 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렇다고 저를 으깨서 피부에 막 바르라는 것은 아닙니다. 제 안에서 추출해낸 설포라판 성분이 들어간 자외선 차단제를 찾아보는 것이 방법이겠지요?

 

또한 설포라판은 사람의 기도에서 항산화효소를 증가시켜 오염된 대기, 꽃가루, 디젤배기가스, 담배 연기 등에 들어있는 활성산소의 공격을 막아줍니다. 활성산소는 산화로 인한 조직손상을 일으키고 천식 등의 염증과 호흡기질환을 유발하죠. 제가 천식, 알레르기성 비염,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등 호흡기염증 예방에 제가 큰 도움이 된다는 실, 특히 요즘 같은 봄철 알레르기가 극심한 때 기억하세요.

더불어 흡연자들에게도 제가 좋은 음식친구가 될 수 있어요. 담배에 찌든 폐를 씻어내는 데도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담배를 많이 피워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제 몸에서 추출해낸 설포라판을 섭취하도록 했더니, 폐에 있는 해로운 세균들이 줄어들었습니다. 담배 연기에 노출 시킨 쥐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죠.

제 안의 설포라판의 신비한 작용 하나 더 말씀 드릴게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자폐증 환자들의 행동개선에도 도움을 준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아동병원과 존스 홉킨스 대학 의과대학 연구팀은 브로콜리에 들어 있는 설포라판이 자폐증 환자의 행동장애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자폐증 환자 4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시험 결과, 설포라판을 투여 받은 쪽은 46%가 사회성이 개선되고 42%는 언어적 의사소통이 호전된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지만 제 안에 들어있는 설포라판이 제대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효소의 일종인 미로시나아제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미로시나아제가 파괴되면 설포라판이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미로시나아제가 잘 보존되도록 요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렇게 데치고 삶는다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라구요.

제가 어떤 상태에서 가장 미로시나아제의 보존력이 좋은지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연구팀의 연구결과를 소개합니다. 삶기, 찌기, 전자레인지에 돌리기 등 여러 방법으로 저를 익혀봤습니다. 그랬더니 5분간 찜통에 넣고 찔 때 미로시나아제가 가장 잘 보존되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끓이거나 전자레인지에 데우면 1분 이내로 효소의 대부분이 파괴됐습니다. 요리하기 쉽다고 그냥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지 마세요. 저의 영양을 고스란히 섭취하려면 찜통에 5분간! 기억하세요.

 

아, 또 말씀드릴 것이 있어요. 한국 사람들은 저를 삶아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더라구요. 그런데 초고추장 대신 겨자나 고추냉이와 함께 먹어보세요. 이 또한 미로시나아제의 효능을 증대시킬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랍니다. 실제로 미국 일리노이 대학 엘리자베스 제퍼리 교수가 브로콜리에 겨자와 같은 양념을 강하게 해서 먹으면 좋다고 조언했는데요. 고추냉이의 ‘시니그린’이라는 성분이 제 안의 ‘미로시나아제’라는 효소를 강화시킨다는 것입니다. 겨자나 고추냉이에 찍어 먹을 땐 아마도 더 맵게 느껴질텐데요. 이는 곧 미로시나아제 효과가 크다라는 뜻이니, 맛있게 드시면 돼요.

잘 익혀진 저를 미로시나아제가 들어간 다른 생채소와 함께 먹어도 설포라판의 혜택을 더 많이 누릴 수 있습니다. 양배추, 무, 아루굴라(루콜라, arugula), 미나리, 방울양배추(Brussels sprouts) 등이 저와 함께 항암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는 친구들이랍니다.

자, 이쯤 되면 약간 부정적인 뉘앙스의 ‘브로콜리 너마저’가 아니라, ‘브로콜리 너야말로 (짱!)’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골라주세요

자, 어떤 모양의 저를 구입하면 좋을지 궁금하시죠? 아무거나 고르지 마시고, 먼저 송이가 단단하면서 가운데가 볼록하게 솟아올라 있으며 줄기를 잘라낸 단면이 싱싱한 것을 고르도록 합니다. 간혹 꽃이 핀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이들은 맛과 영양이 약간 덜하기 때문에 꽃 피기 전 것으로 골라주세요.

얼마나 어떻게 먹으면 좋냐면요

저의 슈퍼 효능을 연구해온 전문가들은 항암성분이 파괴되지 않게끔 잘 요리해서 일주일에 3~5번 정기적으로 저를 섭취하면 항암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저는 뽀글 머리송이보다 굵직한 줄기에 영양, 식이섬유 함량이 높으므로 줄기도 버리지 말고 먹도록 하세요. 조리할 때는 저를 소금물에 30분쯤 담가두는 게 좋습니다. 뽀글 머리 송이 속에 먼지나 오염 물질이 들어있을지도 모르니까요.[그래픽=양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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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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