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피운다고 다 폐암 걸리나? 겁 없는 환자들

 

김치원의 ‘지금은 디지털헬스 시대’

누구나 자신의 건강에 신경을 쓴다고 이야기 합니다. 주요 언론에서 건강 관련 정보는 꾸준히 잘 읽히는 아이템이라고 하며 홈쇼핑에 나오는 건강 제품은 불티나게 팔린다고 합니다.

건강 관리 혹은 건강 증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고 하는 디지털헬스케어는 이런 건강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에 성공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실제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헬스케어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으며 아직 이용하지 않고 있다고 해도 앞으로 이용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하는 것처럼 실제로 건강에 신경을 쓰고 건강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을까요? 진료 현장에서 보면 좋은 것 먹고 운동 열심히 하면서 건강 검진을 정기적으로 받고 그 결과에 따라서 건강 행동을 조절하는 사람들은 드뭅니다.

건강은 대개 식습관, 생활습관, 흡연, 음주 등과 관련이 많으며 그렇기 때문에 일상 생활을 잘 관리함으로써 예방하거나 관리할 수 있고 디지털헬스케어가 이를 도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들 질환에는 두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1. 어떤 원인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질병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평생 줄담배를 달고 살았지만 폐암에 걸리지 않는 사람도 있으며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고 주위에 담배를 태우는 사람이 없지만 폐암에 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질병이 어느 한 두 가지 원인 때문에 생기는 경우는 드물고 다양한 요인들이 관여하기 때문입니다.

2. 원인이 질병으로 이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1,2년 정도 건강관리에 소홀 한다고 해서 반드시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닙니다. 몇 년 담배 피운다고 금방 폐암이 생기는 것은 아니며 혈당 수치 열심히 관리하지 않았다고 해서, 체중을 당장 빼지 않는다고 해서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즉, 현대인을 위협하는 질병들은 이를 예방하기 위한 건강 활동을 했다고 해서 그 결과를 빠르게 확인할 수가 없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지금 당장의 행동을 바꾸기란 쉽지가 않다 보니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본인의 건강을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기가 힘듭니다. 구체적인 데이터로 살펴보겠습니다.

정부에서 매년 조사하고 있는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보면 고혈압 혹은 당뇨병이 있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이 각각 40%, 30%에 달하며, 진단된 사람 가운데 40%정도는 치료를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비율이 조사를 처음 시작했던 2001년에는 이들 비율이 60~80%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현저하게 개선되었기 때문에 국가 차원 건강 검진이나 대국민 홍보 등 다양한 정책 수단들이 효과를 발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은 큰 변화가 없기 때문에 한계에 달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미 손쉽거나 국가 차원에서 해볼 만한 방법들을 써본 후에도 상당 수의 사람들이 고혈압과 당뇨병을 잘 관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더 개선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수단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병에 걸린 후 스스로 관리하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이와 관련한 가장 대표적인 질환이 당뇨병입니다. 당뇨병 환자들은 정기적으로 손가락을 바늘로 찌르고 피 한 방울을 당뇨 측정기에 떨어뜨려서 혈당을 측정해서 혈당 수치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당뇨병 환자들은 디지털헬스케어가 내세우는 것 중 하나인 자가 관리(self-monitoring)를 통한 건강 관리를 예전부터 실행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월간지 [The Atlantic] 2013년 4월호에 ‘당뇨병 환자에서 관찰되는 역설 (The Diabetic’s paradox)’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당뇨병 환자들은 혈당 수치를 측정하여 혈당을 조절할 수 있다는 뚜렷한 관리 방법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방법을 그렇게 호의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기사에서는 당뇨병 관리에 따르는 이슈로 △자가 측정 및 그에 따른 관리의 번잡성 △혈당 측정기 사용의 불편함 △당뇨병 관리에 따르는 감정적인 부담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서 많은 당뇨병 환자들은 혈당 자가 측정이 오히려 자존감을 떨어뜨리며 불안감과 우울함을 유발하기도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5%의 당뇨병 환자들만이 매일 혈당 수치를 체크하고 있으며 65%는 한 달에 한번도 채 실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기사에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지만 흥미로운 것은 당뇨병 치료 방법에 따라서 혈당 측정을 하는 환자의 비율에 차이가 난다는 사실입니다.

인슐린 주사를 사용하는 환자들은 혈당 측정 결과에 따라서 그때마다 인슐린 양을 조절하는 경우가 있어 혈당 측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들 환자가 매일 1회 이상 측정하는 비율은 40%에 육박하였습니다. 이에 비해 경구 약물만 복용하거나 식이 조절만 하기 때문에 혈당 측정 치가 당장의 약물 복용이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환자들은 4~6%만이 매일 1회 이상 측정하였습니다. 즉, 당뇨병 환자 중에서도 자가 관리가 꼭 필요한 사람들은 비교적 실행을 잘 하고 있는 셈입니다.

당뇨병 이외의 질병을 살펴보겠습니다. 심장 기능이 저하된 심부전 역시 자가 관리가 필요한 질환입니다. 심부전 환자들은 심장 기능이 저하되면 몸 안에 수분이 축적되는데 심해지면 폐에 물이 차서 숨이 차게 되고 더 진행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심부전이 있는 환자가 숨이 차서 입원치료를 받고 퇴원하면 매일 몸무게를 재고 만약 몸무게가 늘어난다면 심부전이 악화되는 것으로 보고 빨리 진료를 보도록 권고 받습니다. 생각해 보면 몸무게를 매일 재는 정도는 당뇨병 환자들이 손가락 끝을 바늘로 찔러서 피를 빼서 기계로 혈당치를 측정하는 것에 비해서 훨씬 간편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환자들은 얼마나 열심히 몸무게를 잴까요?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퇴원 당시 교육받은 데로 매일 몸무게를 측정한 환자의 비율은 14%에 불과했습니다. 심지어 47%의 환자들은 한번도 체중을 재지 않았습니다. 하루 한번 체중계에 올라서는 사람이 14%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놀라운 현상입니다.

아마도 하루 이틀 체중계에 올라가지 않아도 당장 숨이 차거나 증상을 느끼지는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조금씩 계속 체중이 늘어나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심각한 증상이 올 수 있음에도 그때 그때 느끼는 변화가 없으면 이렇게 간단한 행동도 실천에 옮기기 힘들어할 만큼 인간은 나약한 존재일 지도 모릅니다.

당뇨병과 심부전 환자들을 보면 건강한 사람부터 환자에 이르는 다양한 사람들이 자가 측정을 통해서 건강을 관리한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것이 바로 디지털헬스케어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점, 즉 페인 포인트 (pain point)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회사들이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제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디지털헬스케어 업체들이 환자들의 자가 관리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위에서 살펴본 연구 결과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1. 질환 자체의 중증도가 높다고 해서 환자가 열심히 자가 관리를 하는 것은 아니다.

2. 번거러움이 덜하다는 이유만으로 자가 관리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

3. 매일매일에 미치는 영향이 큰 행동은 더 잘 지킬 가능성이 높다.

즉, 디지털헬스케어는 자가 측정 자체의 번거러움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는 매일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많은 서비스들이 하고 있는 것처럼 매일 작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건강해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디지털헬스케어 업계가 마주하는 이슈라기 보다는 사업 기회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사람은 잘 바뀌지 않기 때문에 그런 행동의 근저에 있는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잘 활용하는 기업에게는 기회가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 기업에게는 넘지 못할 장벽이 될 것입니다.

    코메디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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