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최고’ 지향… 의료용 멸균기 시장 장악

 

의약게 CEO 프리즘 / 한신메디칼 김정열 대표

 

최근 의료계 화두는 ‘환자 안전’이다. 교차 투약과 같은 의약품 사용에 각별히 주의해야겠지만, 가장 기초적인 대비책은 감염 방지다. 의료용 멸균기는 병의원이 원내 감염을 막기 위해 취할 수 있는 기본적인 안전장치라 할 수 있다. 치과용구와 수술용품 등 의료기관에서 사용되는 시술 기구들의 세균 감염을 막는 데 쓰이는 의료기기다.

해외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국내 의료기기 시장에서 의료용 멸균기 시장은 무풍지대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보고서를 보면 국산 제품의 시장 점유율이 76%에 이를 만큼 압도적이다. 성장세도 꾸준하다. 의료기술의 향상이 수술 증가로 이어져 세계 시장 규모는 최근 7년간 연평균 4.4%, 국내 시장도 연평균 3% 이상 덩치를 키워왔다는 분석이다.

한신메디칼은 이러한 국내 의료용 멸균기 시장에서 부동의 1위 업체다. 2013년을 기준으로 전체 시장 규모가 연간 275억원으로 추산되는데 이 회사의 연매출이 150~200억원 정도를 차지한다. 시장 점유율이 약 70%에 이른다. 1975년에 설립돼 40여년간 의료용 멸균기 제조에만 몰두하며 기술력을 키워 온 결과라는 게 업계의 평이다.

이 회사 김정열 대표는 지난 해 12월 국내 멸균기 업체로서 최초의 기록을 새로 썼다. 고압증기멸균기에 사용되는 압력용기(chamber)에 대한 미국의 ASME(미국기계학회, American Society of Mechanical Engineers) 규격 인증을 획득했다. ASME는 1880년에 설립된 세계적 권위의 비영리 표준개발기관으로 전 세계 3500개 업체가 가입해 있다.

압력용기는 폭발 등의 위험이 상존하기 때문에 안전성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자체 규격을 만들어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데, 유럽연합의 PED(Pressure Equipment Directive)와 미국의 ASME가 대표적이다. ASME 인증은 설계에서부터 원자재검사, 중간공정검사, 최종전량수압시험, 출하 단계까지 모든 검사과정에서 ASME가 인증하는 공인검사기관의 테스트에 합격해야 스탬프(인증마크, Stamp)를 붙일 자격이 주어진다.

김 대표는 유럽연합이 PED를 강제하기 한 해 전인 지난 2001년에 PED를 획득해 유럽과 중동, 동남아에 수출 교두보를 마련했다. 이번에 ASME를 획득함으로써 유럽에 이어 미국 시장 진출, 즉 미국 식품의약품안전국(FDA) 인증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ASME 인증이 없으면 FDA 심사를 받을 수 없지만, 미국 내 실험실과 동물용 병원시장에는 진입할 수 있다.

김 대표는 “ASME 인증을 지난 2000년부터 추진해왔다”며 “시장 장벽이 두터워 고심하던 끝에 지난 3년간 각고의 노력을 들여 10억원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한신메디칼은 소형모델을 위한 UM스탬프와 대형모델을 위한 U스탬프를 모두 획득했다. 인증 유효기간은 UM스탬프 1년, U스탬프 3년이다.

한신메디칼의 핵심 기술은 무용접 압력용기이다. 해외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압력용기를 개발하는 업체가 몇 군데 있긴 하지만, 국내에서는 한신메디칼뿐이다. 이 회사 품질관리부 고한식 부장은 “보통 3피스(piece)로 붙여 용접부위가 많으면 압력에 의해 용접이 잘못 됐을 때 누수 될 소지가 있다”며 “무용접 압력용기는 훨씬 안전하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무용접 압력용기는 안전성뿐 아니라 수명과 내구성에서도 반영구적이다. 원자재인 스테인리스에 용접을 하면 센 불로 용접부분이 산화되는데 여기서 수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한신메디칼은 압력용기의 원자재인 스테인리스도 일반적으로 쓰이는 재질(304)보다 50%나 비싼 탄소량이 가장 적게 든 원자재(316L)만 사용한다. 국내 최고를 지향하는 김 대표의 고집을 엿볼 수 있다.

김 대표는 “영세한 국내 의료기기업체에게 ASME 인증은 초기투자비도 많이 들어가고, 6백여개에 이르는 코드 표준을 이해하고 충족시키기도 매우 까다롭다”면서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생산성이 40% 정도 향상되고 원자재의 수명과 내구성, 안전성이 커 이익”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의 목표는 ASME 인증을 바탕으로 연내 FDA 인증을 획득해 세계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해 현재 30%인 수출 비중을 50%로 끌어올리고, 매출을 배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김 대표는 “ASME 인증은 우리 제품을 가장 큰 시장에 수출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인 셈”이라며 “유럽시장에 이미 진출했기 때문에 기술과 품질에서 경쟁력이 있고, 대량판매를 통해 단가경쟁력도 맞출 것”이라고 자신했다.

멸균기 제조에 대한 자부심도 가득했다. 김 대표는 “우리 기계가 하찮게 보이지만 매우 까다롭고, 화상과 폭발의 위험도 있다”며 “병원 입장에서야 보험급여도 안 되는 기계, 돈도 못 버는 기계를 좋은 것으로 사겠나마는 감염관리 차원에서 병원 내 멸균기는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를 향한 눈을 국내로 돌리면 김 대표는 안타까운 마음부터 앞선다. 비효율적인 국내 의료기기심사 체계와 글로벌 표준과 동떨어진 여건에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김 대표는 “선진국에서는 온도와 압력에 따라 주어진 재료가 있고 여러 가지 시험방법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그러한 시험을 하지 않고 재료 등을 제조업자 마음대로 해도 제약 없이 허가는 나온다”며 “현재 멸균기 국내 검사의 경우 내구연한이 없고, 검사제도도 없어 부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현대화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대표는 지난해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불합리한 규제를 풀어 달라며 요청한 민원서와 규정상 안 된다는 식약처의 답변서를 모아 ‘고통의 10년’이라는 제목의 자료집을 낸 바 있다. 그에게 규제의 벽은 세계보다 국내가 더 높기만 했다.

    배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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