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아버지 “쉬∼” 시킨 예순 아들


사람 ‘人(인)’자는 ‘두 사람이 적당히 기대고, 적당히 서 있는 모습’. 만약 어느 한 사람이 상대를 윽박지르면, 금세 구부러져 칼 ‘刀(도)’자가 된다. 그렇다고 서로 무심하거나 꼿꼿하게 가다보면 두 ‘二(이)’자가 된다.
 
사람은 남을 너무 의지거나 간섭해도 안 되고, 혼자 무소의 뿔처럼 가도 문제가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人間(인간)’이 있는 것이다. 결국 ‘人間’이란 커뮤니케이션이다. 말이 서로 통해야 사람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말이 안 통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직장동료나 친구 사이는 물론 가족끼리도 말이 안 통해 아예 서로 입을 닫고 사는 경우도 많다.
 
‘현대경영학의 그루’ 피터 드러커(1909∼2005)는 말한다. “커뮤니케이션이란 ‘요구’다. 수신자가 뭘 하기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만일 커뮤니케이션이 수신자의 뜻(야망, 가치관 등)에 부합된다면 그것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수신자의 뜻에 어긋난다면 그것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저항을 받게 된다.” 한마디로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은 말하기보다 듣기가 훨씬 중요하다.
 
인간은 보통 1분에 약 150개의 낱말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1분에 600개 정도의 단어를 들을 수 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것은 일단 그 사람을 신뢰한다는 뜻이다. 커뮤니케이션은 ‘인간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다. 정보’와는 전혀 다르다. 정보는 ‘논리’다. 정보는 인간적 요소가 없을수록 그 가치와 신뢰감이 높아진다.
 
반대로 커뮤니케이션은 스킨십이 많고 신뢰감이 쌓일수록 잘 된다. 환갑이 지난 아들이 아흔 넘은 아버지를 안고 ‘쉬∼’를 시키거나 할매가 손주의 고추를 잡고 ‘쉬∼’를 시키는 일. 그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믿음이 쌓인다면 커뮤니케이션에 굳이 말 따위는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신은 아직 초롱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었다고 합니다. ​-<문인수 ‘쉬’에서>
     
김화성 칼럼니스트 
 
<사진=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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