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착한 것들을 보면 눈물이 나는가!!


늦은 오후 전국에 눈 소식. 박용래시인(1925∼1980)의 시 ‘저녁 눈’이 생각나는 하루. 술 마시다가 느닷없이 엉엉 마구 울어대던 눈물의 시인. 풀잎에만 스쳐도, 조갯살처럼 여린 속살을 여지없이 베이던 ‘풀여치 시인.’
 
“갸륵한 것, 어여쁜 것, 소박한 것, 조촐한 것, 조용한 것, 알뜰한 것, 인간의 손을 안 탄 것, 문명의 때가 아니 묻은 것, 임자가 없는 것,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 갓 태어난 것, 저절로 묵은 것들을 만날 적마다 눈시울을 붉히지 않은 때가 없었던(절친 소설가 이문구 회고)” 울보 시인.
 
어스름 퇴근길, 발밑에 차이는 헛헛함과 그리움의 아수라장. 호롱불 왕겨빛 장지문 밖으로 하늘하늘 소리 없이 내려앉는 수억만 마리의 배추흰나비떼. 싸르륵♪ 싸륵♫ 여물 써는 소리로 뙤창문을 도담도담 토닥이며 하롱하롱 내려앉는 저녁 눈.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꿩 오목눈이 멧새 박새 딱새 굴뚝새 어치 딱따구리 직박구리 소쩍새 부엉이 말똥가리 호랑지빠귀 찌르레기 쏙독새 꾀꼬리 노랑지빠귀 멧종다리 호반새 참새 까치 까마귀…. 이 저녁눈 속에서 새들은 밥이나 제대로 챙겨 먹었을까. 다람쥐 청설모 산토끼 노루 사슴 산양 멧돼지 들고양이 들개 족제비…. 들짐승 산짐승들은 과연 삼시세끼 입에 풀칠이나 했을까.
 
저녁 눈은 오더라도, 딱 눈물 적실 정도만 오시면 좋겠다. 딱 아슴아슴 술이 몸에 적셔오는 정도로만 오시면 좋겠다.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온다(이성부 시인).’ 알싸한 바람 속에도 한줄기 따뜻한 ‘봄내’가 살갗을 간질인다. 남도들판 논두렁에선 ‘햇쑥’이 우우우 돋아난다. 감나무 끝 까치밥이 꽃처럼 붉다.
 
김화성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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