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버지가 떨어뜨린 가랑잎 한 장!


음력 동짓달 스무하루. 맑은 하늘. 알싸하면서도 메마른 공기. 오랜만에 식구(食口)들 손잡고 ‘밥 나들이’ 나서기 딱 좋은 날. 맑고 시원한 생태탕, 김 무럭무럭 순대국, 시큼 칼칼한 뽀글뽀글 김치찌개, 매콤새콤 서울 무교동 낙지볶음, 머리에 쥐날정도로 천불나게 매운 마산아귀찜, 입안에 바다향기 가득 매생이국, 비릿 상큼한 통영 굴, 꾸덕꾸덕 갯바람향내 구룡포 과메기, 엇구뜰하고 고릿한 자글자글 청국장, 코끝 찌잉♪∼눈물 찔끔♬! 목포 홍어, 쫄깃쫄깃 혀에 감기는 짭조름 벌교 꼬막, 우두둑♫! 뼈 분질러 쌓는 재미 감자탕….
 
‘나의 본적은 아버지가 떨어뜨린 가랑잎 한 장(이성복시인)’.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 강아지, 굴욕과 굶주림의 추운 길을 걸어 아버지가 왔다(박목월시인)’. 한솥밥 먹는 ‘밥상머리 공동체’의 위대함. 이제 ‘온 가족 둥근 밥상에 둘러앉아 왁자지껄 떠들며 밥을 먹던 그 정겨운 시절’은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나 들어있다.
 
혼밥 혼술의 시대. 벽 쪽을 바라보며 ‘혼자 라면에 김밥을 사먹는’ 중년사내의 등판. 누가 뺏어 먹을까봐, 힐끔힐끔 주위 눈치를 살피며, 혼자 아귀아귀 사냥감을 먹어치우는 맹수도 못되고, 그저 되새김질 하는 암소처럼, 뭔가 골똘하게 생각에 잠긴 채, 우물우물 음식을 입에 우겨넣는 초식동물. ‘동(洞)네’의 ‘洞(동)’은 원래 ‘한 우물을 먹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 요즘엔 시골에 가도 우물 보기 쉽지 않고, 서울 거리엔 저마다 생수통만 들고 다닌다.

김화성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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