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집단 속에서 괴물이 되는 까닭

1906년 오늘(3월 19일), 영화의 소재로 줄곧 등장하며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란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주는 사람이 태어났습니다. 독일 나치 친위대 중령으로 유럽 각지의 유대인 500만 명을 수용소로 강제 이주시킨 ‘홀로코스트의 실무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입니다.

    
아이히만은 1945년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하자 미국 포로수용소에서 신분을 세탁하고 숨어지내다가 탈출, 이탈리아를 거쳐 아르헨티나로 도망갑니다. 그는 10여 년 요령껏 살았지만, 1957년 맏아들이 여자 친구에게 아버지의 무용담을 떠벌리는 바람에 덜미가 잡혔습니다. 여자 친구 실비아가 홀로코스트의 희생양이었던 유대인이었던 겁니다.
    
실비아는 이스라엘 외무부에 신고했고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2년 동안 추적해서 체포합니다. 모사드 요원들은 ‘특수작전’을 통해 아르헨티나 공항을 통과, 아이히만을 예루살렘 법정에 세웁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과 아르헨티나의 외교 분쟁이 일어났지만, 이스라엘이 배상금을 주는 선에서 매듭을 짓습니다.
    
아이히만은 재판에서 자신은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말한 ‘정언명령’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항변합니다. 자신에게 내려진 국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을 뿐이며 자신이 아니더라도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임무를 수행했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죠. 심지어 “상부의 명령을 잘 지키지 않았다면 오히려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도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 만세, 오스트리아 만세! 나는 나와 관련 있는 이 세 나라를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준비됐습니다. 여러분, 또 만납시다. 나는 지금까지 신을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나는 전쟁의 법칙과 내 깃발에 복종했을 따름입니다.”
    
미국의 독일 출신 유대계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시사주간지 《뉴요커》의 특별취재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으로 가서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지켜보면서 성찰합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시인 김수영의 시구(詩句)에서처럼 ‘커크 더글라스나 리차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납지도 않고,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라는 데’ 주목합니다. 그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중년 남성이었습니다. 그의 정신 상태를 감정한 의사 6명은 끔찍할 정도로 ‘정상적’이라고 결론 내립니다.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이라고 규정합니다.
    
“악한 일은 스스로 하는 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못한 데에서 나온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커다란 악을 저지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아이히만은 아주 부지런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는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다. 나치즘의 광기로든 뭐든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생각하는 것뿐이다.”
    
요즘 사방에서 ‘악의 평범함’을 봅니다. ‘미투 현상’에서 가해자들과 동조자들은 ‘그들만의 좁은 세상’에서 ‘사람의 소중함’을 생각하지 않고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성폭력 의심자나 피해자 등을 향한 집단의 반응에도 이에 못지않은 ‘악의 평범함’을 봅니다. 그 무사유와 동계올림픽 때 킴 부탱, 김보람 등 사냥감을 찾아서 집단 린치를 가하던 그 무사유가 겹칩니다. 반성 없는 사유가 정의로 포장돼 누군가를 해치고 있습니다. 경박한 언론과 포털 사이트가 이런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유(思惟)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자신을 겸허하게 돌아보는 데에서 시작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뒤집어보고 따지는 어렵고 때로 고통스러운 작업입니다. 허나, 지금 꼭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가 ‘사람이 행복한 사회’로 가는 진통을 겪고 있다면, 정의와 행동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유 없는 정의는 파괴와 폐허를 남기기 쉽습니다. 아이히만의 사고도 나치 집단 내에서는 정의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은 무엇에 대해 사유해야 할까요? 우선, 누군가를 향한 분노에 대해서 반대편에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니면, 사유를 향한 포석으로 서점에 가서 인문학 책 한 권을 사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의 건강] 봄비 내리는 날, 건강법은?

전국에서 보슬보슬 이슬비, 가랑비 내리다가 낮부터 갭니다. 카펜터스의 노래 ‘Rainy Days and Mondays’처럼 비 내리는 월요일은 왠지 울가망해지기 십상. 이럴 때 무엇을 해야 건강에 좋을까요?    

오늘의 음악

봄비와 어울리는 노래 두 곡 준비했습니다. 첫 곡은 에픽 하이와 윤하가 부르는 ‘우산’입니다. 에픽 하이의 타블로 역시 ‘집단 린치’의 희생양이었죠? “어느새 빗물이 내 발목에 고이고 / 참았던 눈물이 내 눈가에 고이고…” 가사가 멋진 노래입니다. 둘째 곡은 박인수의 절창으로 듣는 신촌블루스의 ‘봄비’입니다.

♫ 우산 [에픽 하이 & 윤하] [듣기]
♫ 봄비 [신촌블루스] [듣기]

댓글을 달아주세요.

귀하의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