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양인 안경환보다 야한 마광수가 좋다

[이성주의 건강편지]마광수와 안경환

나는 교양인 안경환보다 야한 마광수가 좋다

신촌에 ‘장미여관’이 진짜 있는지 찾느라, 수많은 젊은이들을 헤매게 만들었던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소설가 김도언은 페이스 북에 ‘사회적 타살’이라고 썼습니다. 우리 사회의 위선과 이중성을 대놓고 문제 삼다가 감옥에 갇히고 학계와 동료교수들로부터 ‘왕따’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마 교수는 ‘시대의 천재’였지요. 국문과생으론 드물게도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연세대에 입학했고, 4년 내내 올A를 받았습니다. 박두진 선생의 추천으로 26세 때 《현대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고 28세 때 홍익대 교수, 33세 때 모교의 교수가 됐습니다.
 
마 교수는 홍익대 교수 때부터 ‘신촌의 아이콘’이었던 것 같습니다. 중독치료 분야의 대가인 남궁기 연세대 의대 교수가 “의대 수업 대신 홍대 마 교수의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마 교수는 윤동주의 시에 생기를 불어넣었고 동아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기형도, 안도현 등의 시인을 발굴하기도 했습니다.
 
마 교수는 《가자 장미여관으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에 이어 《즐거운 사라》로 시대를 뒤덮고 있던 엄숙주의와 도덕주의의 허위성에 도전장을 던졌다가, 학계나 문학계를 넘어 사법부의 심판을 받습니다. 강의 도중 제자들 앞에서 체포돼 1심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형을 받았습니다.
 
항소심에서 검찰 측 감정인 민용태 고려대 교수와 변호인 측 감정인 하일지 작가가 모두 《즐거운 사라》가 음란하지 않다는 감정서를 내자, 법원은 2차 감정을 실시합니다. 검찰 측의 서강대 영문학과 이태동 교수는 “음란하다,” 변호인 측 신승철 연세대 의대 정신과 교수(현 인천 블레스병원장)은 “그렇지 않다”고 맞섭니다. 판사는 서울대 법대 안경환 교수에게 최종 감정을 의뢰합니다. 안 교수는 “음란성과 예술성은 배척되는 개념”이라고 단정하고 마 교수의 작품을 단순한 음란물로 감정합니다. 이 때문에 항소가 기각되고,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습니다.
 
안 교수는 서울대 법대의 교양인으로 유명합니다. 문학과 예술에 달통한 ‘신사 교수’였습니다. 수많은 제자들이 그를 존경했고 법무부 장관으로 추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20대 중반에 사랑하는 여성 몰래 혼인신고를 했다가 무효판결을 받은 것이 드러나 결국 중도하차했지요. 안 교수는 처음엔 “끝가지 가겠다”고 했다가, 갑자기 손을 들었습니다. 언론이 그 여성을 찾는 취재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나돌자 그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저는 20대 중반의 치기가 장관 탈락의 결정적 사유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누구에게나 사랑은 맹목이고, 사람은 이성으로 통제될 수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
 
문학도, 현실도 고운 그림만으로 채울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름다운 것, 교훈적인 것, 도덕적인 것만 보기를 원합니다. 본능적인 것, 솔직한 마음은 숨겨야 합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위선적, 이중적이 되지요. 마 교수는 우리의 이런 문화를 경고한 선각자였습니다.
 
마 교수는 법정에서 위선과 싸울 때 “지금 우리나라의 성문제는 마치 쓰레기통에 뚜껑만 덮어놓고 있는 양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또 “높으신 분들, 하느님 찾는 분들, 엘리트님들이 낮에는 근엄한 목소리로 마광수 죽여라 해놓고 밤에는 룸살롱에 간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다른가요? 세계에서 이슬람 문화권 외에는 가장 규제가 심하지만 성적 일탈은 세계 최고 수준일 겁니다. 성매매를 막으니 간통죄 폐지와 맞물려 ‘스폰서 문화’가 급속히 번지고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성 파트너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돈과 외모 중 하나만 갖추고, 뻔뻔함만 얹으면 언제든 욕망을 채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해서든 ‘뚜껑’으로 덮을 생각만 합니다.
 
성적 문제뿐 아닙니다. 대중이 원하는 그림에 어긋나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주장을 내놓으면 법망이 다가옵니다. 인문학, 자연과학에 대해서도 학계가 아니라 판사가 전지전능하게 판결하려고 합니다. 우중은 인민재판식 야유로 ‘왕따’를 시킵니다. 고교 때 친구의 어머니인 교사를 사랑해 결혼까지 갔던,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 같은 사람이 있다면 씨를 말려 죽였을 겁니다.
 
마 교수가 꿈꾼 세상은 성폭력이나 성적 불평등이 난무하는 성이 혼미한 세상이 아닙니다. 본능을 인정하고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 체면 가식 위선이 지배하지 않는 세상일 겁니다. 과연 우리가 그런 세상으로 가고 있나요?

마광수 교수의 논란이 될 만한 시 두 편

나도 못생겼지만
 
못생긴 여자가 여권(女權)운동하는 것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그 여자가 남자에 대해 적개심을 표시할 땐
더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못생긴 남자가 윤리-도덕을 부르짖으며 퇴폐문화 척결운동 하는 것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그 남자가 성(性) 자체에 대해 적개심을 표시할 땐
더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못생긴 여자들과 못생긴 남자들을 한데 모아
자기네들끼리 남녀평등하고 도덕 재무장하고
고상한 정신적 사랑만 하고 퇴폐문화 없애고
야한 여자-야한 남자에 대해 실컷 성토하게 하면
 
그것 참 가관일 거야
그것 참 재미있을 거야
그것 참 슬픈 풍경일 거야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꼭 금이나 다이아몬드가 아니더라도
양철로 된 귀걸이, 반지, 팔찌를
주렁주렁 늘어뜨린 여자는 아름답다
화장을 많이 한 여자는 더욱더 아름답다
덕지덕지 바른 한 파운드의 분(粉) 아래서
순수한 얼굴은 보석처럼 빛난다
아무 것도 치장하지 않거나 화장기가 없는 여인은
훨씬 덜 순수해 보인다 거짓 같다
감추려 하는 표정이 없이 너무 적나라하게 자신에 넘쳐
나를 압도한다 뻔뻔스런 독재자처럼
적(敵)처럼 속물주의적 애국자처럼
화장한 여인의 얼굴에선 여인의 본능이 빛처럼 흐르고
더 호소적이다 모든 외로운 남성들에게
한층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가끔씩 눈물이 화장 위에 얼룩져 흐를 때
나는 더욱 감상적으로 슬퍼져서 여인이 사랑스럽다
현실적, 현실적으로 되어 나도 화장을 하고 싶다
분으로 덕지덕지 얼굴을 가리고 싶다
귀걸이, 목걸이, 팔찌라도 하여
내 몸을 주렁주렁 감싸 안고 싶다
현실적으로
진짜 현실적으로

마광수 교수를 기리는 글들

〇마광수 교수님은 훌륭한 우리나라의 성 선각자 중의 한분이셨습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도 성의 최대후진국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원회 부산대 의대 명예교수
 
〇이미 더없이 음란한 사회의 ‘음란 강박증’에 발목 잡혀 조롱 속에 갇힌 채 생각할 자유, 가르칠 자유, 쓸 자유…, 모든 삶의 자유를 잃고 끝까지 외로웠던 한 남자의 소년 같은 웃음 앞에 하얀 국화꽃 바치고 애도 하였습니다. -배정원 행복한성연구소 소장
 
〇위선과 가식으로 뒤덮인 한국 사회가 열정과 재능이 넘쳤던,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억압과 금기를 부수는 전선에 섰던 한 지식인에게 처참한 모욕을 안겨주고 결국은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다. -김도언 소설가
 
〇윤동주 문학회 회장으로 있으며 스승을 비판한 제자에게 누구처럼 옹졸하게 대응하지 않으셨고 창작물 그대로 A+를 주셨고, 제자의 진로 고민에 대해 누구보다 진지하게 상담해주신 은사님이셨습니다. 교수님 제자여서 행복했고 가신 세상에서는 영원히 자유롭고 행복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변호사 문종탁
 
〇사법당국이 마광수 교수를 구속한 것은 과도하고 미개한 법집행이었다. 법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게다가 당국의 이 처사는 문단에서 그의 일련의 글들을 정당하게 비판할 수 있는 기회를 봉쇄해버렸다. 마 교수의 죽음을 애도한다. -황현산 문학평론가
 
〇고인을 추모하면서 아직도 판금 중인 《즐거운 사라》의 해금을 추진하자 –다수의 누리꾼

오늘의 음악

얼마 전 우리를 떠났던 조동진의 노래 두 곡 준비했습니다. ‘나뭇잎 사이로’와 ‘제비꽃’ 이어집니다. 왠지 오늘 같은 날 어울릴 것 같은, Blind Faith의 ‘Sea of Joy’ 이어집니다.

♫ 나뭇잎 사이로 [조동진] [듣기]
♫ 제비꽃 [조동진] [듣기]
♫ Sea of Joy [블라인드 페이스] [듣기]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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