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꺼풀만 움직여 책을 쓸 수 있을까?

[이성주의 건강편지]잠금증후군

눈꺼풀만 움직여 책을 쓸 수 있을까?

인간 정신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요? 1997년 오늘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기자 장 도미니크 보비는 사람의 정신과 몸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그는 세계 최고의 패션잡지 《엘르》의 편집장으로 자신만만하게 활약하던 43세 때 뇌졸중으로 쓰러집니다. 20일 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깨어나지만, 왼쪽 눈꺼풀만 움직일 수가 있었습니다. 의사는 ‘잠금증후군(Locked-in Syndrom)’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정신은 있지만 육신에 갇혀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단 하나 왼쪽 눈꺼풀을 껌뻑거리는 것 외에는.
    
보비는 건강할 때 아내와 아들딸에게 정성을 쏟지 못한 것을 후회했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그는 아름답고 착한 아내를 배신했지만, 애인 대신 그를 지킨 것은 역시 ‘조강지처’였습니다. 아내와 자녀들, 아버지, 간병인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과거를 돌아본 그는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기자로서 책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보비는 대화상대와 프랑스어의 자모를 눈 깜빡거리는 횟수로 표시하기로 했습니다. e나 s 같이 자주 사용하는 문자는 가능하면 눈을 적게 깜빡거리도록 순서를 재배열했고 마침표는 ‘아예 눈을 감아버리는 것’으로 약속했습니다. 그는 하루 종일 반 쪽 정도를 써서 1년3개월 동안 20여만 번 눈을 깜박거려 책을 완성했습니다.
    
마침내 책이 출간됐지만, 보비는 출간 이틀 만에 급성 폐렴 때문에 왼쪽 눈마저 감습니다. 한 편의 영화 같은 그의 이야기는 10년 뒤 줄리앙 슈나벨이 감독하고 마티유 아말릭이 주연한 영화 《잠수종(Diving Bell)과 나비》로 옮겨져 세계 영화팬들의 콧잔등을 시큰하게 만듭니다.
    
보비는 “고이다 못해 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며 행복과 절망을 오가다가 관조의 희망을 찾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마비가 된 아들에게 “나는 내 아파트에 갇혔고, 넌 네 몸에 갇혔다. 우린 같은 신세다”고 말한 것도 가슴에 진하게 다가옵니다. 보비는 “요즘 사람들은 모두 늙고 쇠약해졌거나 나처럼 굳었고 말이 없다”며 다른 사람도 같은 신세라고 봤습니다.
    
꼭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정신은 어떠한 한계라도 극복할 수가 있는 것일까요? 호모 사피엔스는 막다른 골목에 몰리기 전까지는 삶의 의미와 행복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는 ‘현명하지 못한 존재’인가요? 끈질긴 정신이 멈춘 날, 자꾸 묻게 됩니다. 파르르~, 마지막으로 떨렸던 그의 눈꺼풀을 떠올리며….
 

[속삭] 배꼽 아래 입술의 세계

‘이성주의 생식기 탐험’이 오랜만에 여러분을 찾습니다. 5편이 끝나고 오랫동안 미뤄지다 6편을 선보입니다. 제때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번 편은 예고한 대로 ‘음순’에 대한 탐험입니다. 여성의 배꼽 아래 입술도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게 진화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의 음악

1945년 오늘 태어난 기타리스트 로빈 트라워가 속한 그룹 프로콜 하럼의 노래 ‘A Whiter Shade of Pale’ 준비했습니다. 이 영상에서 로빈은 없지만, 언제 들어도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이어서 1910년 오늘 태어난 사무엘 바버가 작곡한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도버 사중주단의 연주로 준비했습니다.

♫ A Whiter Shade of Pale [프로콜 하럼] [듣기]
♫ 현을 위한 아다지오 [도버 4중주단] [듣기]

    이성주 기자

    저작권ⓒ 건강을 위한 정직한 지식. 코메디닷컴 kormedi.com / 무단전재-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댓글 0
    댓글 쓰기

    함께 볼 만한 콘텐츠

    관련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