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수상 소식이 기쁘지만 않은 이유

한편으로는 뿌듯하면서도, 왠지 모를 허전함이 밀려오는 것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마음 깊숙한 곳에 똬리 튼 반골기질이 축제에 딴죽을 걸려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에게 몇 번씩 묻습니다.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 부커 인터내셔널 상(The Man Booker International Awards)을 받은 것이 신문 1면과 특집 면을 장식하고, 며칠 동안 방송과 인터넷에서도 야단법석인데 왜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가?”
    
200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르 클레지오가 이미 한강과 김애란 등 젊은 작가들의 뛰어난 작품성에 대해서 격찬했는데, 왜 우리는 그동안 이들의 문학성에 눈을 감고 있다가 외국의 큰 상을 받고나서야 이렇게 축제 분위기가 될까요?
    
맨 부커 상의 권위는 알겠지만, 왜 우리 언론은 외국에서는 잘 붙이지 않는 ‘세계 3대 문학상’ 따위의 수식어를 붙여서 더 권위를 찾으려고 하는 걸까요? 우리 언론은 이 소설이 《이상 문학상》 대상을 받았을 때에도 조용하다가, 맨 부커 상을 받자 이토록 흥분할까요? 우리 언론과 비평계는 스스로 권위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걸까요?
    
《채식주의자》는 9년 동안 검색포털에서 “재미없다”는 평가에 7점대의 평점을 받으며 2만 권이 팔리다가, 3일 만에 25만 부가 팔렸다고 합니다. 댓글도 호평 일색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 소설 자체가 한 동안 소설의 주인공처럼 다중의 폭력에 올가미 쓰인 운명이었다고 하면 너무 나간 것일까요?
    
왜 우리는 소설이나 시의 문장 한 줄에 감동하지 않고 수상사실에 환호하는 걸까요? 《채식주의자》의 훌륭한 점은 우리 모두의 폭력성을 이토록 시적으로 다룬 작품성에 있지, 영국의 상을 받은 것에 있지 않을 텐데…. 왜 우리는 소설의 묵직한 메시지에는 침묵하고 있는 걸까요?

왜 우리는 책 속에서 길을 찾고, 문장에 연필로 밑줄 그으며 가슴 뛰기보다는 남들, 그것도 외국의 누군가의 평가에 감동도 옭아매야 할까요? 왜 나만의 소설, 나만의 시를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요? 연애하듯이 감탄하며 책장을 넘기고, 책갈피를 꽂지 못하는 걸까요? 책을 덮고, 문학의 메시지를 음미하며 며칠 동안 고민하는 그런 삶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면서, 뒤늦게 책의 표지에 환호하는 걸까요?

[속삭] 사소 아키라의 《오케스트라》외

속삭닷컴의 속삭툰에서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일본 음악 만화 《오케스트라》와 《하얀 간호사》, 《앤틱 로맨틱》, 《호텔에서 안아줘》와 우리나라 인기작가 악어인간의 《비뇨기과 남자들》, 에센티의 《대폭발이론》 《나비효과》 등의 명작들을 무료로 볼 수가 있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만화 중에서 좋아하시는 것, 골라서 즐기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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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음악

1804년 오늘은 러시아 작곡가 미하일 글린카가 태어난 날이지요. 글린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을 마린스키 극단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준비했습니다. 내일 ‘부부의 날’을 앞두고 정태춘, 박은옥의 ‘사랑하는 이에게’가 이어집니다.

♫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듣기]
♫ 사랑하는 이에게 [정태춘 박은옥]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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