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천재들이 가수가 되지 않았더라면?

쎄시봉(C’est Si Bong)! “멋져!”라는 뜻이지요. 샹송의 제목인데, 루이 암스트롱의 재즈 곡으로도 유명하죠?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선 쎄시봉이 ‘7080 대중음악’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 쎄시봉은 6.25 전쟁 직후에 서울 충무로에서 문을 연 음악다방입니다. 명동, 종로2가를 거쳐 현재 교보빌딩 건너편 SK 서린동 사옥 자리로 이사하면서 수많은 대중가수를 배출했지요.

1968년 오늘(2월 1일)은 쎄시봉에서 ‘대입 포기생’ 송창식과 연세대 의예과 2학년 윤형주가 듀엣 ‘트윈 폴리오’를 결성한 날입니다. 송창식은 서울예고를 졸업한 성악가 지망생이었지만, 돈 없이 대가가 되기 힘든 현실에 방황합니다. 그는 고교 친구들이 많은 홍익대 쪽으로 ‘출몰’하다가 만난 벗, 홍대 산업디자인학과 이상벽의 손에 이끌려 쎄시봉으로 발길을 향하지요. 이상벽은 당시 쎄시봉에서 ‘대학생의 밤’이란 코너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송창식은 그곳에서 아름다운 목소리의 윤형주를 만나 ‘포크 트리오’ 결성을 제안합니다. 윤형주는 포크음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촌놈’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송창식의 재능을 알게 된 뒤 친구 이익균을 끌어들여 ‘쎄시봉 트리오’를 결성합니다. 몇 달 뒤 이익균이 군대에 입대하는 바람에 트리오가 해체돼 결성한 듀오가 바로 트윈 폴리오지요. 그 이름은 운치 그윽하게도, ‘악보(樂譜)의 마주 보는 두 면’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트윈폴리오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얀 손수건,’ ‘웨딩 케이크,’ ‘축제의 노래’ 등이 히트를 치면서 ‘한국의 사이먼 앤 가펑클’로 불리면서 유명세를 탔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 도쿄 주재 기자가 우연히 ‘쎄시봉’에 들렀다가 두 사람의 환상적인 화음에 감동받고 이를 소개하는 기사를 송고했다는 일화도 있지요.

그러나 둘은 1년 10개월 만에 헤어집니다. 윤형주가 연세대 의대에서 수업을 못따라가 경희대 의대로 편입하면서 아버지의 원을 풀어주려고 결단을 내린 것이지요. 결국 2년 뒤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가수의 길을 걷게 되지만…. 아시다시피 송창식은 ‘왜 불러,’ ‘한번쯤,’ ‘맨 처음 고백,’ ‘고래사냥,’ ‘상아의 노래,’ ‘가나다라’ 등 숱한 히트곡을 쏟아내며 대중문화를 이끌었고 윤형주는 가수뿐 아니라 DJ, MC 등으로 활약했지요.

쎄시봉을 드나든 천재들이 사회통념에 따르거나 부모가 원하는 길을 갔다면, 우리의 70년대는 얼마나 삭막했을까요? 무식하고 용감한 기성세대의 권력층은 쎄시봉 가수들의 노래를 마뜩치 않아했고 무더기로 금지가요로 묶었지만, 결국 이 노래들은 ‘권력’을 이기고 살아남았습니다.
20세기 초에 철학자들이 예언한 대로 요즘은 대중가요도 공장이 된 듯한 느낌입니다. 가수라는 직업이 쇼와 드라마 출연을 위한 징검다리 직종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는 많지만, 가슴이 울리는 노래는 적습니다. 트윈폴리오는 번안곡 만으로도 젊은이들의 가슴을 울렸는데…. 무엇 때문일까요? 많은 사람이 예술적 저항이나 혼, 낭만 같은 것을 거들떠보지 않는 시대가 와버린 것일까요? 무엇 때문일까요?

송창식의 멋진 노래 5곡 감상하기

천재가수 송창식은 수 십 곡의 명곡이 있지요. 몇 가지만 추려보았습니다. 이 가운데 좋아하는 노래 들으며 마음을 씻으면서 2월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음악

첫 곡은 트윈폴리오의 ‘하얀 손수건’의 원곡인 나나 무스쿠리의 ‘Me T’aspro Mou Mantili’를 준비했습니다. 둘째 곡은 트윈폴리오의 목소리로 ‘웨딩케이크’ 들어보겠습니다. 코메디닷컴 엔돌핀발전소에서는 코니 프란시스의 원곡도 들을 수 있습니다. 루이 암스트롱, 이브 몽땅, 딘 마틴이 차례로 ‘C’est Si Bon’을 부릅니다.

♫ 내 하얀 손수건으로 [나나 무스쿠리] [듣기]
♫ 웨딩케이크 [트윈폴리오] [듣기]
♫ 세시봉 [루이 암스트롱 외]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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