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열병은 희귀병이 아니다

[이성주의 건강편지]Beautiful Mind

정신분열병은 희귀병이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걸 나도 생각한다고 그가 생각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려운가요? 1928년 오늘 태어난 미국의 수학천재 존 내쉬가 22세의 나이에 쓴 28쪽 짜리, 프린스턴 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비협력 게임’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이듬해 수학연보에 실렸을 때만해도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훗날 정치학, 군사학, 마케팅이론, 진화생물학, 인공지능과학 등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됐지요. 게임 상황에서 상대방의 현재 전략에 따라 자신의 최적전략을 도출하고 그 상태를 유지하려는 ‘내쉬 균형’ 이론이지요.

    
내쉬는 자신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44년 뒤에야 노벨경제학상을 받습니다. 그동안 정신의 암흑 속에서 힘든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는 정신분열병으로 수 십 년을 헤매다 증세가 완화되고 나서인 1994년 노벨상을 수상합니다.
    
내쉬의 이야기는 2001년 러셀 크로우가 감동적으로 연기한 《뷰티풀 마인드》를 통해 세계에 알려집니다. 당시 의학계에서는 이 영화가 정신분열병에 대해서 가장 정확하게 다루었다는 평가가 주류였습니다.
    
정신분열병(Schizophrenia)은 완치가 안 되는 병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약을 복용하면 75%가 호전되거나 완치됩니다. 극소수에서 치료받지 않아도 회복되는 경우가 있지만 치료를 받지 않는 환자의 일부가 자살을 시도하는 등 치명적인 상태가 되므로 병원에 가는 것이 좋습니다. 조기에 치료받을수록 치료율이 높다고 합니다.
    
상당수 환자는 10대, 20대에 발병했다가 50대 이후에 증세가 개선되는데 이는 환자가 치료를 받으면서 주위 상황을 조절하는 능력이 생기고 한편으로는 정신분열병 때 과다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이 40대 중반 이후에 덜 분비되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열병 증세는 환청, 망상 등을 경험하면서 ‘정보기관이 뇌 속에 도청장치를 달았다’ ‘우주인이 나를 죽이려 한다’ 등의 주장을 하는 양성증세와 남을 만나기 싫어하고 말이 없어지며 감정이 메마르는 음성 증세로 구분되는데 양성증세가 음성증세보다 치유가 더 쉽다고 합니다.

존 내쉬도 결국 정신분열병을 극복하고 현재 프린스턴 대학교 명예교수로 있습니다. 영화에서 동료 교수들이 줄이어 존경의 표시로 만년필을 선물하는 모습에 코끝이 찡했는데, 결국 내쉬를 지극히 보살핀 부인 엘리샤의 승리이기도 하지요.

    
정신분열병은 100명 중 1명이 걸리는 흔한 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정신분열병 환자와 가족이 병을 이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이들이 가장 힘든 것은 주위의 편견입니다. 말 한 마디가 환자와 가족에게 비수가 되기도 하고 양약이 되기도 하다는 점, 함께 가슴에 담는 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존 내쉬가 태어난 뜻 깊은 날에!

정신분열병의 대표적 초기 증세

정신분열병은 아주 드문 병이 아닙니다. 초기에 치료하면 완치의 길이 가깝습니다. 본인이나 가족, 주위 사람이 아래 사항으로 고생하면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을 받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밤에 잠들기가 힘들다.
·주의집중이 힘들다. TV를 보는 것조차 힘들다.
·갑자기 건망증이 심해진다.
·종일 신경이 날카롭거나 걱정거리가 떠나지 않는다.
·환청이나 환상이 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는 내쉬가 환상에 시달리지만 실제로는 환청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전에는 편안하게 느껴지던 사람 장소 사물이 낯설거나 두렵다.
·누군가가 나에 대해 얘기하거나 비웃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에게 소외돼 주로 방에서 혼자 지낸다.

오늘의 음악

오늘은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두 곡을 준비했습니다. 킹 크림슨의 ‘Epitaph’와 바클레이 제임스 하비스트의 ‘Poor Man’s Moody Blues‘가 이어집니다. 셋째 곡은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연주로 준비했습니다.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 3악장입니다.

♫ Epitaph [킹 크림슨] [듣기]
♫ Poor Man’s Moody Blues [바클레이 제임스 하비스트] [듣기]
♫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 1-3 [마르타 아르헤리치] [듣기]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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