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가 반드시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이성주의 건강편지]아람브라 궁전의 추억

양보가 반드시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아람브라 궁전. 타레가가 작곡한 ‘아람브라의 추억’으로 유명하지요? 아랍어로 ‘붉은 성’이란 뜻의 이 궁전은 한 번 가보면 잊을 수 없는, 화려함을 자연미 속에 숨긴, 탄성이 절로 나오는 궁전입니다.

아람브라 궁전은 이베리아반도의 끝자락 그라나다를 지배하고 있던 이슬람 나스리드 왕조의 궁이었지요. 스페인의 이슬람교도들은 8세기 초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왔고 한때 이베리아반도의 대부분을 점령했다가 13세기에 그라나다를 본거지로 왕국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14세기 이베리아 반도에서 큰 변혁이 일어납니다. 이복 오빠가 왕이 되자 왕궁에서 쫓겨나서 평민처럼 살던, 카스티야의 이사벨 공주가 아라곤의 페르난도 왕자와 결혼해서 왕좌에 오른 뒤 스페인의 통일작업을 펼친 것입니다.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은 가톨릭 국가를 완성하기 위해 그라나다를 침공합니다. 나스리드 왕조는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스페인 군이 ‘최첨단 요새’를 짓고 나자리 왕조의 보급로를 차단하며 압박하자 두려움에 싸입니다. 이때 스페인 군의 요새 이름이 ‘성스러운 믿음’이라는 뜻의 산타페입니다. 산타페는 현대자동차의 SUV 이름이기도 하지만, 이사벨여왕이 콜럼버스가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도록 지원하는 ‘산타페 협약’을 맺은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1492년 나스리드 왕조의 술탄 무하마드 12세(보압딜)는 이 산타페에서 항복 문서에 서명합니다. 백성이 이슬람 교를 계속 믿도록 보호해줄 것을 요청하며 궁전과 막대한 금화를 바칩니다.

보압딜은 모로코로 떠나기 전 ‘한탄의 언덕’에서 궁전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이 장면은 드오당크의 명화로도 유명합니다. 이때 보압딜의 어머니는 “사나이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여자처럼 눈물을 흘리는구나. 울음을 멈춰라”고 꾸짖었다고 합니다.

스페인 군이 아람브라를 점령하자, 이슬람 문화를 존중하겠다는 계약은 헌신짝처럼 버려집니다. 이슬람 교도들은 보압딜을 원망하며 숨졌습니다. 1504년 오늘(11월 26일) 이사벨 여왕이 숨진 뒤 아람브라 궁전도 서서히 폐허가 됩니다. 19세기 미국의 스페인 공사였던 워싱턴 어빙이 ‘아람브라 이야기’를 쓰면서 세상에 다시 알려지기 전까지 잡초더미 속에서 방치됐다고 합니다.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지만 보압딜이 지혜를 발휘해서 전력을 다해 이슬람 원군들을 불러 끝까지 그라나다를 지켰다면 세계사가 바뀌었을 겁니다. 1492년 콜럼부스의 항해도, 서구의 아메리카 점령도 없었을 터이고 심지어 임진왜란도 없었겠지요. 이사벨이 나약한 공주로 머물렀어도 지구는 지금의 모습이 아닐 겁니다.

이사벨의 예와 같이 삶에서 인내와 기다림이 중요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보압딜을 본다면 때에 따라서는 양보가 미덕이 될 수도, 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난 23일 안철수 후보의 양보는 역사에서 어떻게 기록될까요? 아람브라 이야기와는 큰 상관이 없겠지만….

직장 성희롱 예방법

2002년 오늘은 롯데호텔의 여직원 성희롱에 대해 회사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의미 있는 판결이 나온 날입니다. 다음은 직장 내 성희롱 예방법.

①이성 직장동료를 인격과 존엄성을 가진 존재, 함께 일하는 동료로 인정하고 평소 예의를 갖춘다.
②공적 업무와 사적인 일을 명확히 구분한다.
③이성 동료에게 음담패설을 삼간다.
④성희롱 때문에 불쾌하다면 분명히 표현한다. 불분명한 대응은 상대의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⑤상대가 자신의 성적 언동에 적극 찬동하지 않거나 불쾌한 표정을 짓거나 자리를 피하는 등의 행동을 하면 이를 거부의사로 받아들이고 즉각 행동을 중지한다.
⑥상대가 의사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긍정적인 의사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⑦동료의 신체에 대해 성적인 평가나 비유를 하지 않는다.
⑧불필요한 신체접촉을 삼간다.
⑨회식 때 술시중이나 춤을 강요하지 않는다. 또 술을 억지로 권하지 않는다.
⑩직장에서 인터넷 음란사이트를 보지 않는다.

아래는 1970년대 미국에서 만든 ‘성희롱 예방법’ 코믹 동영상. 이 동영상도 성희롱 소송 대상일까요?

오늘의 음악

나르시소 예페스가 연주하는 ‘아람브라의 추억’ 먼저 준비했습니다. 둘째 곡은 호세 카레라스가 스페인 민요 ‘그라나다’를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피렌체 대극장 오케스트라와 협연합니다. 저는 ‘그라나다’하면 스페인 듀엣 ‘바카라’의 것이 먼저 떠오르는데, 바카라의 ‘Yes Sir I Can Boogie’와 ‘Sorry I’m a Lady’ 이어집니다. 코메디닷컴 ‘음악감상실’에서는 바카라의 ‘그라나다’도 들을 수 있습니다.

♫ 아람브라의 추억 [나르시소 예페스] [듣기]
♫ 그라나다 [호세 카레라스] [듣기]
♫ Yes Sir, I Can Boogie [바카라] [듣기]
♫ Sorry I’m a Lady [바카라] [듣기]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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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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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22-01-14 15:32:55 삭제

      2022년. 이 글 을 쓰신지 20년이 지나서 읽어보니 가버린 세월도 야속하고, 보압딜을 원망하면서 죽어갔던 이슬람 교도들도 이해가 갑니다. 아름다운 양보가 몇번 더해 지더니, 역사와 다르게 양보 받은 사람들 조차도 죽어나갑니다. 양보는 그래도 역사속에 아름다웠지만, 양보받은 분들의 마지막은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이제 마지막 기회라도 있으니, 후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한탄의 언덕위에서 아람브라궁전을 찾으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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