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 심리학이 허무맹랑한 까닭?

[이성주의 건강편지]혈액형의 마음

혈액형 심리학이 허무맹랑한 까닭?


가뭄 때문에 농민의 마음도 논바닥처럼 바싹 바싹 타고 있습니다. 피가 마르는 느낌일 겁니다.

정말 인체에서 피가 마르면 어떻게 될까요? 피는 몸 구석구석의 세포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기 때문에 세포들이 몰사하게 됩니다. ‘인체의 강물’ 피는 지구 둘레(약 4만㎞)의 3배 정도인 혈관을 돌면서 세포들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합니다. 혈관세포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는 혈관도 있는데 ‘혈관의 혈관(Vessel of Vessel)’이라고 부른답니다.

1868년 오늘은 이 소중한 피도 종류가 있어서 함부로 수혈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밝힌 ‘혈액형의 아버지’ 카를 란트슈타이너 박사가 태어난 날입니다. 란트슈타이너는 1901년 어떤 피는 섞으면 곧 굳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ABO형 혈액형 이론을 세웠습니다. 이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RH 인자도 발견했습니다. 이런 성과에 따라 안전한 수술이 가능해졌고 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혈액형이 이상한 곳에 쓰이고 있습니다. 남녀가 처음 만나면 혈액형부터 묻습니다. 혈액형에 따라 자기 장래의 꿈도 결정한다고 합니다. ‘혈액형 성격론’ 때문이지요.

이것은 전형적인 ‘일본 상품’입니다. 1971년 일본의 방송작가 노미 마사히코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미신을 좋아하는 일본인 사이에 급속도로 번져갔습니다. 몇 차례 부침을 겪다가 21세기 들어 다시 폭발적으로 유행했지요. 혈액형에 따라 짝을 연결해주는 회사가 등장했고 취업 면접 때 혈액형을 묻는 것이 ‘필수 코스’가 됐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여자 소프트볼 종목에서 혈액형 별 훈련을 시킨 것이 화제가 됐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수입된 것이지요.

그러나 과학적으로는 허무맹랑할 따름입니다. 사람의 혈액형은 ABO형만 있지 않습니다. 혈액형은 혈액의 표시장치인 항원에 따라 결정되는데, 사람의 혈액을 나누는 방법은 ABO형 외에 MNSs형, Lewis형, Duffy형, Kidd형 등 20 여 가지이고 이에 따른 혈액형은 500가지 나 됩니다. 개, 소, 돼지, 양과 같은 동물도 혈액형이 있는데 개는 13가지입니다. 사람이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다르다면 개는 성격이 13가지인가요?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이런 미신에 빠지는 것일까요?

우선, 이 이론이 단순명쾌하기 때문이겠지요. 사람이 겉을 통해 속을 보는 것을 ‘겉볼안’이라고 하는데, 겉볼안은 수양과 경험이 쌓여야 가능합니다. 그런 것 없이 혈액형만 알면 사람을 평가할 수 있다는데 솔깃해지는 것이지요.

또 대부분의 사람의 정신은 혈액형 심리학이 규정한 각 혈액형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A형의 소심함, B형의 이기적 성향, O형의 고집, AB형의 예측불가성은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정신의 파편이지요. 이를 자신의 성격으로 묘사하면 사람들은 ‘아하’하고 믿는 경향이 있는데 심리학에서는 이를 ‘바넘 효과’라고 부릅니다.

혈액형 심리학에 맹목적으로 따르기 보다는 수양과 공부를 통해 겉볼안을 키우는 것이 삶에 훨씬 도움이 되겠지요? 과학적 논리를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러나 그것은 어렵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피에 얽힌 재미 있는 상식


○‘혈액형 심리학’의 원뿌리는 독일의 우생학. 게르만 민족은 A, O형이 많고 아시아인과 유대인은 B형이 많다. 따라서 독일의 사이비 과학자들은 A, O형이 B형보다 뛰어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를 유럽에서 유학한 일본 학자들이 수입해갔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혈액형 다이어트’가 유행한 적이 있다. A형은 채식 식단을 따라야 살이 빠지고 O형은 고기를 먹고 유제품과 밀가루를 피해야 한다는 식. 이 역시 과학적 근거가 약하다.
○혈액형과 질병에 대한 수많은 연구가 과학의 테두리 안에서 진행되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연구결과 O형은 심장발작 확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미국 다나-파버 암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췌장암 발병은 B형, AB형, A형, O형 순인 것으로 조사됐다. 스웨덴 카롤린 연구소에 따르면 A형은 다른 혈액형에 비해 위암에 걸리기 쉬운 것으로 나타났다.
○AB형과 O형이 만나면 AB형이 태어나지 않아야 하지만, 간혹 A형과 B형 인자와 붙어 다니는 ‘시스―AB형’도 있어 O형과 합쳐지면 자녀가 AB형이 태어날 수도 있다.
○A형과 B형의 혈액을 동시에 갖고 있는 ‘혈액키메라’도 있다. 쌍둥이나 수혈 받은 사람 중 극히 드물게 나타난다.
○걷기, 달리기, 자전거타기 등 유산소운동을 많이 하면 ‘건강한 적혈구’가 많아진다.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도 ‘혈액 건강’에 좋다.
○헌혈이나 골수 공여는 건강에 무해하다.

오늘의 음악

덥지요? 에프게니 키신이 연주하는 쇼팽의 ‘강아지 왈츠’ 들으면서 시원한 기분 느끼시기 바랍니다. 1994년 오늘은 작곡가 헨리 맨시니가 세상을 떠난 날. 그의 대표곡 ‘Moon River’를 앤디 윌리엄스의 음성으로 듣겠습니다. 그의 밴드가 연주하는 ‘핑크 팬더’ OST가 이어집니다.

♫ 강아지 왈츠 [에프게니 키신] [듣기]
♫ Moon River [앤디 윌리엄스] [듣기]
♫ Pink Panther [헨리 맨시니 밴드] [듣기]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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