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의 삶을 되돌아보며

“무슨 제왕이라고 세상 떠들썩하게 장례식을 치르고, 또 사리를 줍는다고 재를 뒤적이는가.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말라. 수의도 만들 필요 없다. 내가 입던 승복 그대로 입혀서, 내가 즐겨 눕던 작은 대나무 침상에 뉘여 그대로 화장해 달라. 나 죽은 다음에 시줏돈 걷어서 거창한 탑 같은 것 세우지 말라.”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내가 금생(今生)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

‘무소유’의 수행자 법정(法頂) 스님이 어제 입적(入寂)했습니다. 우리나이로 79세, 스님나이인 법랍(法臘) 55세로 열반(涅槃)에 들었습니다.

스님은 한국전쟁 후 생사(生死)와 애증(愛憎)에 대해 고뇌하다가 출가해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우리나라 불교의 삼보사찰인 통도사(佛寶), 해인사(法寶), 송광사(僧寶) 모든 곳에서 수행했습니다. 해인사에서 수행할 때 한 할머니가 팔만대장경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서 “지금 내려오신 쪽에 있다”고 대답하자, 할머니가 “아, 그 빨래판 같은 거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때 대중을 위해 불경의 말씀을 전하고자 마음먹고, 수많은 책을 펴냈습니다.

1975년 송광사 뒤편의 작은 암자 불일암에서 본격 수행을 시작했지만 76년 발간한 ‘무소유’를 읽고 자신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강원 산골의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1996년 월북시인 백석의 연인으로 유명한 김영한 씨로부터 요정 대원각을 기증받아 길상사를 창건했지만 한동안 회주(법회를 주관하는 스님)를 맡았을 뿐,  오두막에서 지내며 담백한 삶을 살았습니다.

스님의 무소유에는 아집(我執)에서의 탈피가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도 열린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법정 스님은 어머니의 49재를 맞아 가족, 친지가 모인 자리에서 종교를 일일이 묻고 제각각이라는 것을 알고는 “절대 상대방의 종교를 비방하지 말고 존중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또 길상사 개원법회에 김수한 추기경을 초청했고,  평화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라는 마태복음 5장 구절을 인용하면서 끝에 ‘아멘’이라고 썼습니다. 스님은 길상사의 관음보살상 제작을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최종태 전 서울대 교수에게 맡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의 관음보살상은 마리아를 닮았다나요?  그런 의미에서  며칠 전 조계종이 대한축구협회에 “국가대표팀 경기 중 기독교인 선수들의 기도 세레머니를 막아달라”는 공문을 보낸 것은 참 안타깝습니다.  

법정 스님의 입적 소식을 듣고 불교 정신을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스님의 글은 청명하고 소담합니다. 스님이 기거했던 오두막 암자 앞 개울물처럼 맑습니다.  그 하늘의 새소리처럼 깨끗합니다. 삶이 그대로 투영돼 있는 듯합니다. 이번 주말에는 아무리 바빠도 법정 스님의 책들을 찾아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제 삶이 과연 아집과 미망에서 벗어나 있는지,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것에 얽매여 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겠습니다.

법정 스님이 남긴 말과 글

○“나에게는 맑은 복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책이 있습니다. 마음의 양식이 나를 받쳐주고 있습니다. 둘째, 차(茶)가 있습니다. 출출할 때 마시는 차는 제 삶의 맑은 여백입니다. 셋째, 음악이 있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건전지로 듣습니다만 음악이 삶에 탄력을 주고 있습니다. 넷째, 채소밭이 있습니다. 채소밭은 제 일손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내 삶을 녹슬지 않게 늘 받쳐주고 있습니다. 누구나 한적한 삶을 누리고픈 꿈이 있습니다. 밭을 일구면서 살고자 하는 꿈, 이러한 꿈은 우리의 본능입니다. 언제 현실적으로 이어질지 모르지만 일상에 찌들지 않는 꿈을 가집시다.” -2008년 10월19일, 길상사 법회에서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 <산방한담> 중에서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중에서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 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이때이지 시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중에서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이다.”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은 어떤 절이나 교회를 물을 것 없이 신앙인의 분수를 망각한 채 호사스럽게 치장하고 흥청거리는 것이 이 시대의 유행처럼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병들기 쉽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이루게 하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합니다. 이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면서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었으면 합니다. 불자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부담없이 드나들면서 마음의 평안과 삶의 지혜를 나눌 수 있있으면 합니다.” -1997년12월14일 길상사 창건 법문 중

○“삶의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며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나간 모든 순간들과 기꺼이 작별하고 아직 오지 않은 순간들에 대해서는 미지 그대로 열어둔 채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 없이 떨쳐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도 함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조차 벗어나라.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일에 묶여있지 말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지나가라.” <일기일회> 중에서

오늘의 음악

1999년 오늘 세상을 떠난 천상의 바이올리니스트 예휴디 메뉴인의 연주곡 몇 곡을 준비했습니다. 아돌프 발러의 피아노 연주로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 모리스 장드롱(첼로)과 헵지바 메뉴인(피아노) 협연으로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 1번 1악장을 연주합니다. 이어서 1948년 오늘 태어난 미국의 포크 가수 제임스 테일러의 ‘Handy Man’과 ‘You’ve Got a Friend’를 준비했습니다.

♫ 아베마리아 [슈베르트] [듣기]
♫ 헝가리무곡 5번 [브람스] [듣기]
♫ 피아노 트리오 1번 1악장 [슈베르트] [듣기]
♫ Handy Man [제임스 테일러] [듣기]
♫ You’ve Got a friend [제임스 테일러 캐롤 킹]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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