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라고 자살면역력이 강할 순 없었다

[이성주의 건강편지]대통령의 우울

대통령이라고 자살면역력이 강할 순 없었다

‘바보 대통령’이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고 말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분이 저렇게 떠나선 안 되는데 안타까워하고, 또 어떤 사람은 누가 저 분을 저렇게 떠나가게 했나 분노하지만, 그는 더 이상 이 목소리들을 들을 수 없습니다.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사람이 강한 것이라는 한 의사의 말이 떠올랐지만, 사람은 자신을 100% 통제할 수 없는 동물이라는 생각이 앞의 생각을 잠재우더군요.

특히 우울증이 있으면 자신이 자신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노 대통령의 유서를 보면 영락없는 우울증 증세가 나타납니다. 다만 전형적인 우울증이라기보다는 단기간의 스트레스에 따른 ‘반응성 우울증’일 가능성이 큽니다.

여러 요인이 겹쳤을 겁니다. 원래 노 전 대통령은 다른 대통령에 비해 ‘기분파’였지요. 그리고 CEO나 어떤 단체의 리더가 자리에서 물러나서 평범한 자리에 가게 되면 공허해지는 ‘퇴임 후 증후군’을 겪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고인은 평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뚜벅뚜벅 고독한 길을 걸어간 분입니다.

게다가 최근 언론에서 자살 보도가 홍수를 이뤘습니다. 자살 방법을 가르쳐주고 자살을 정당화하는 그런 보도가 난무하면 자살에 대한 문턱값이 낮아져 사회 구성원은 자살을 도피기제로 삼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대통령이라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사람은 무의식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이런 배경에서 검찰 수사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가 반응성 우울증을 유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당신의 가족과 지인들이 검찰 수사의 표적이 되는 것이 마음의 상처를 가져왔겠지요.

어떤 사람은 일국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어떻게 자살을 하느냐고 말하지만, 전직 대통령이라고 우울증과 자살에 대한 면역력이 더 강할 수는 없습니다. 사회 전체가 이 무서운 우울증과 자살에 대해 더 잘 알고 예방에 신경 쓰는 계기로 삼아야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언론의 보도도 지나치게 선정적입니다. 사회 전체의 자살에 대한 문턱값을 낮추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두렵습니다.

개인적으로 1995년 노 전대통령이 ‘꼬마 민주당’ 후보로 정치1번지 종로구에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다가 떨어지고나서 함께 저녁식사를 했을 때의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첫 마디가 ‘마누라가 정치 포기하라고 하겠네요’였습니다. 그때 헤어지고 혼자서 터벅터벅 걸어가던 그 모습이 생생히 살아나는군요. 한없이 외로워보이던 그 뒷모습이.

고인의 명복(冥福)을 빕니다.

자살의 11가지 징후와 6가지 대책

‘미국 응급의학협회(American College of Emergency Physicians)’의 린다 로렌스 박사팀이 제시한 ‘자살로 이어질 수 있는 11가지 징후’와 ‘타인의 자살충동이 느껴질 때 지켜야할 6가지 수칙’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어야겠습니다. 봉하마을의 참모들이 이것을 알고 있었다면 이런 비극은 없을텐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자살로 이어질 수 있는 11가지 징후

① 이유 없이 우울하거나 슬퍼질 때
② 삶의 의욕이 사라져 무엇을 해도 기쁨이나 성취감을 느끼지 못할 때
③ 부쩍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할 때
④ 자살에 쓰이는 약에 대한 정보를 궁금해 할 때
⑤ 어떤 날은 기분이 매우 좋고 어떤 날은 심하게 우울해지는 등 감정의 기복이 클 때
⑥ 사소한 복수에 연연하는 등 화를 주체하지 못할 때
⑦ 식습관, 수면습관, 표정, 행동 등이 이전과는 달라졌을 때
⑧ 운전을 험악하게 하거나 불법적인 약을 복용하는 등 위험하고 파괴적인 행동을 할 때
⑨ 갑자기 침착해질 때 (자살을 결정하면 차분해진다)
⑩ 학교생활, 인간관계, 직장생활, 이혼, 재정적 문제 등 삶의 위기를 느낄 때
⑪ 자살과 관련된 책에 흥미를 느낄 때

타인의 자살충동이 느껴질 때 지켜야할 6가지 수칙

① 혼자 두지 마라. 주변에 총, 칼, 약처럼 자살에 사용될 수 있는 물건들이 방치돼 있을 땐 더욱 위험하다.
②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마라. 911(한국은 국번 없이 119)이나, 지역응급센터, 의사, 경찰, 다른 사람에게 전화해 도움을 요청한다.
③ 도움을 요청하고 기다리는 동안엔 차분하게 대화를 하라. 시선을 마주하고 손을 잡고 대화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④ 자살방법 등의 자살계획을 면밀하게 세워뒀는지 대화를 통해 알아둬라.
⑤ 주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상기시켜라.
⑥ 자살을 시도했을 땐, 즉시 앰뷸런스를 부르고 응급처치를 시도한다.

오늘의 음악

오늘은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준비했습니다. 존 엘리어트 가디너가 지휘하는 ‘입당송’과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입니다. 오토 클렘페러가 지휘하는 바그너의 ‘지그프리드 장송곡’과 그저께 들려드렸던 그리그의 ‘오제의 죽음’이 뒤를 잇습니다.

♫ 레퀴엠 [모차르트] [듣기]
♫ 지그프리드 장송곡 [바그너] [듣기]
♫ 오제의 죽음 [그리그] [듣기]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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