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의 신화 아르헤리치

[이성주의 건강편지]피아노의 활화산

피아니스트의 신화 아르헤리치


기어이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아르헨티나의 활화산(活火山),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공연 티켓을 구입하고야 말았습니다. 5월 7일 정명훈과 함께 방한공연을 갖는다는 소식에 인터넷 예매 창구를 찾았더니 A, B, C석은 매진되고 R석과 S석만 남았더군요(우리나라 공연료 너무 비싸죠?). 그나마 좋은 자리는 다 팔리고. 매달 펑크 나는 통장이 눈앞에 어른거려 아내에게 전화로 “우리 가계에 이 비싼 공연에 같이 갈 수 있겠느냐”고 허락받고도 한참 망설였습니다. 간이 작아서인가요?

아르헤리치는 외교관의 딸로 태어나 의사를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유치원 때 그녀를 지분댔던 남자아이가 “너 피아노 못 치지”라고 놀리자, 선생님이 즐겨 연주하던 곡을 단번에 연주했습니다. 놀란 교사가 부모와 상담해 본격적으로 피아노의 길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아르헤리치는 훗날 그 순간을 “내 생애 최대의 실수”로 회고합니다.

그녀는 피아노 레슨에 진절머리를 쳤다고 합니다. 일부러 감기에 걸리려고 구두에 물휴지를 넣은 적도 있었고 음악행사가 있으면 테이블 아래로 숨기도 했습니다. 베네데티 미켈란젤리를 사사할 때에는 피아노를 치기 싫어 대신 인생 상담을 받았다고 합니다. 극심한 우울증에 걸려 뉴욕의 아파트에서 3년 동안 TV만 봤다고도 하지요. 1964년 브뤼셀 콩쿠르에서 연습 부족으로 예선 탈락했는데 전날 “나는 피아니스트에는 맞지 않고 여러 외국어를 하니 비서로 취직해야지”하고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늘은 그의 천재성을 놔두지 않았습니다. 이듬해 24세의 나이에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쇼핑 콩쿠르에 우승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습니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화산처럼 강렬한 열정이 분출하는 듯하다” “용암이 타고 흐르는듯 하다” 고 평했습니다.

그는 컨디션이 나쁘거나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로 예정된 연주를 취소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마에스트로 레너드 번스타인을 세 번이나 바람맞힌 일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언론과의 인터뷰를 꺼리는 것도 유명합니다. 그의 음악 친구인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는 “그녀는 명성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스타덤이니 해서 호들갑 떠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르헤리치는 “피아노를 지극히 사랑하지만 피아니스트는 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여러 후배의 길을 열어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1980년 쇼팽 콩쿠르 심사위원이었을 때 이보 포코렐리치가 본선에서 탈락하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송 카메라 앞에서 “저 사람은 천재란 말이요”라고 외치고 위원직을 사퇴했습니다. 2002년 부조니 콩쿠르에서 임동혁이 탈락하자 심사의 부당함을 공개지적하고 음반 출시를 주선했습니다. 이윤수가 아르헤리치 콩쿠르에서 중간에 포기하려고 하자 끝까지 하라고 설득한 것도 우리 음악팬에게 유명합니다. 당시 이윤수는 마지막 과제곡을 연주하지 않고도 2위에 입상했었죠.

피아노의 여제, 아르헤리치는 1994년 내한 공연 때 강력한 타건(打鍵)으로 국내 팬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는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와 협연하며 30t의 장력을 견디는 스타인웨이 피아노 줄을 끊어버리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피아노를 바꿔 연주를 계속했습니다.

아르헤리치는 지금 67세여서 지금이 아니면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티켓을 구입했습니다. 대학시절 한 교수님이 하신 “매끼 라면을 먹더라도 교양인으로서의 경험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는 말이 떠올라 눈 딱 감고 예매 버튼을 눌렀습니다. 저질러놓고는 차라리 코메디닷컴의 고객에게 경품으로 내놓아야하는 것은 아닐까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약간 오른쪽 좌석이어서 연주 모습이 보일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안 보이면 젊었을 때 검은 드레스, 긴 머리의 그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리며 눈을 감고 피아노 소리에 빠지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그녀가 20대에 피아니스트의 길을 접었다면 인류에 얼마나 손실일까 생각합니다. 요즘 조금만 힘들다고, 어쩌면 하늘이 내려주셨을지 모를 재능과 기회를 너무나 쉽게 팽개치는 젊은이들에게 아르헤리치의 얘기, 그녀의 음악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그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지금은 60대가 됐을 유치원 때 그 꼬마에게마저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피아노 여제의 연주 듣기

아르헤리치의 명곡 세 곡을 준비했습니다. 

스칼라티,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예프의 곡입니다. 이 가운데 마지막 프로코피예프의 곡은 이번에 정명훈 지휘, 서울시립교양악단 협연으로 연주하는 곡입니다.

이밖에 《코메디닷컴》의 〈엔돌핀발전소〉에서는 《밤의 가스파르》《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 3악장》《쇼팽 피아노협주곡 1번 1악장》등의 명연주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앞의 두 곡은 제가 특히 좋아하는 곡이지만, 지난번에 소개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아래의 세 곡을 우선 소개합니다.


▶스칼라티 소나타 K 141
http://test2.kormedi.com/cmnt/Scrap/View.aspx?seq=10855&page=1&searchField=Subject&searchKeyword=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1악장
http://test2.kormedi.com/cmnt/Scrap/View.aspx?seq=10853&page=1&searchField=Subject&searchKeyword=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 3악장
http://test2.kormedi.com/cmnt/scrap/View.aspx?seq=10856&page=1&searchField=Subject&searchKeyword=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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