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 엘비스 프레슬리

[이성주의 건강편지]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


시련을 이긴 왕좌는 흔들리지 않는다

‘Love Me Tender’, ‘Can’t Help Falling in Love’, ‘Anything That’s Part of you’(키보이스의 보컬 차중락이 부른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의 원곡), ‘Welcome to My World’(대한항공 광고 배경음악으로 유명한 노래), ‘Burning Love’….

예, 오늘(8월16일)은 이들 노래의 주인공인 ‘제왕’(the King) 엘비스 프레슬리의 30주기입니다. 그가 1977년 약물과다복용으로 숨지기까지 20년 동안 살았던 멤피스의 저택 ‘그레이스 랜드’에서는 600여개의 팬클럽이 모여 다양한 행사를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스타’로서의 엘비스만 기억하고 있지만 그는 흑인음악을 백인의 영역에 끌어온 ‘혁명적 가수’였으며 로큰롤, 로커빌리(록과 컨트리 음악이 섞인 음악), 컨트리, 가스펠 네 분야의 ‘명예의 전당’에 오른 유일무이한 가수입니다.

엘비스는 8달러 어음을 위조해 교도소 생활을 할 정도로 ‘변변치 않았던’ 아버지와 재봉틀 일을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쌍둥이를 임신했지만 형은 출산 중 숨졌습니다. 엘비스는 초등학교에서 조용하고 말을 더듬는데다 ‘마마보이’라는 이유로 또래로부터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찢어질 듯한 가난이 그를 억눌렀지만 그에게는 음악이 있었습니다.

엘비스는 10세 때 동네의 노래대회에서 2등을 했고, 11세 생일 때 어머니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권총 대신 기타를 선물 받고 음악에 빠집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트럭을 몰며 생계를 유지하다가 어머니의 생일 기념으로 자신의 음악을 녹음해 선물하면서 ‘음반업계’에 들어섭니다. 몇 번의 오디션에 낙방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도전해 마침내 ‘왕’의 자리에 오릅니다.

그는 온갖 시련을 뚫고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가 인기를 얻자 백인들은 “부끄러운 줄 모르고 깜둥이 노래를 부른다”고 비아냥댔고, 흑인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훔쳐갔다고 비난합니다. 승용차가 권총 세례를 받기도 합니다.
그에게 ‘골반’(Pelvis)이라는 또 다른 별명을 안겨준 ‘엉덩이춤’도 공격거리였습니다. 1956년 플로리다 법원은 엘비스는 야만인이며 공연 중 엉덩이춤을 추면 즉시 체포하겠다고 판결했습니다. 이 때문에 엘비스는 공연 중 몸은 꼼짝하지 않고 ‘손가락 춤’만 춰야 했습니다.
그는 1957년 징집영장이 나오자 영화 촬영 중인데도 흔쾌히 입대합니다. 연예활동을 계속 할 수 있는 특별부대에 배속하겠다는 제안도 물리치고 서독에서 보병으로 근무합니다. 엘비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어머니는 아들의 군 복무 중 간염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엘비스는 어렸을 때부터 시련을 극복하고, 비록 힘들지만 바른 길을 또박또박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그 영향이 오래 가는 줄도 모르겠습니다. 쉽게 오른 높은 자리는 추락하게끔 돼 있습니다. 오늘 엘비스의 기일에 정상의 자리 뿐 아니라 정상으로 오르는 과정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Can’t Help Falling in Love’ 동영상 보기
http://www.youtube.com/watch?v=fpz8CCocA3w

▶‘My Way’ 동영상 보기
http://www.youtube.com/watch?v=ut_K4oeM4SM



엘비스 밑줄 긋기

●진실은 태양과 같다. 한 동안 가릴 수는 있지만 어디론가 떠나지 않는다.
●모든 어린이는 희망과 소속감을 필요로 한다. 내가 만약 아이들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게 말하거나 행동한다면 세상에 무언가 기여한 것이다.
●어렸을 적에 나는 몽상가였다. 만화책을 보면 만화책 주인공이 됐고 영화를 모면 영화의 영웅이 됐다. 수 백 가지 꿈이 (상상 속에서) 이뤄졌다. 그래서 어릴 적에 알게 됐다. 노래가 없다면 세상의 목적이 없을 것이며 노래가 없었다면 친구도 사귀지 못했을 것이다. 노래가 없으면 나의 길이 굽이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 노래를 한다.
●야망은 V8 엔진을 장착한 꿈이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을 비난하지 말라. 그 사람의 처지에 서지 않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나는 무대공포를 극복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매번 공연 때 걱정이다. 늘 공연에 대해 생각하고 절대 편안한 적이 없다. 나는 관중이 내 공연을 편안하게 보게 만들지도 않는다. (그때부터 발전이 멈춘다) 나는 공연장 밖에 새로운 관중이 있고 그들은 나를 본 적도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고 믿는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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