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뒤 처음 듣는 감염증으로 숨졌다면, 설명의무 위반?

[서상수의 의료&법]④진료행위 설명의무위반의 범위

사진=Gettyimagesbank

25년가량 당뇨병을 앓아 거의 실명 상태였던 A씨는 말기신부전증이 악화돼 B병원에서 배우자의 신장을 이식받는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수술 2개월 뒤 소변의 양이 줄어들고 핏속 크레아티닌 수치가 증가하는 등 급성 이식거부반응이 의심되는 증상이 나타났다. 검사결과 신장엔 소변이 차 있으며 주위엔 고름이 고여 있었고, 신장에서 소변을 내보내면서 여과작용을 하는 세관(細管)이 썩어 있는데다가 빈혈 증상까지 나타나 항생제 처방을 받았다. 체액과 혈액에서 대장균이 검출됐지만 염증이 조절되지 않았고 소변에서 킨디다 균이 나왔다. 검사결과 ‘거대세포바이러스혈증’으로 진단됐다.

B병원 의료진은 거대세포바이러스혈증를 치료하기 위해 항바이러스제를 처방했고, 환자의 핏속에서 백혈구·적혈구·혈소판이 모두 줄어드는 ‘범혈구감소증’을 보이자 우선 대사대항물질 계열 면역억제제를 줄였다가 결국 중단했다. 골수 조직검사결과 범혈구감소증의 원인이 재생불량성빈혈로 진단됐다.

A씨는 신장기능이 더 악화돼 혈액투석을 비롯한 보존적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이식수술을 받은지 약 10개월 뒤 패혈성 쇼크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A씨의 유족들은 B병원이 거대세포바이러스혈증의 발생가능성을 미리 예상하고 이를 예방해야 했으며, 거대세포바이러스혈증에 대해 항바이러스제를 사용했다면 항바이러스제의 부작용을 면밀히 관찰하고 적절히 대처해야 했지만, 이러한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하면서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또, 병원이 신장이식수술을 할 때 부작용으로 거대세포바이러스혈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과 거대세포바이러스혈증을 치료하기 위해 항바이러스제를 사용할 때 항바이러스제의 부작용에 대하여 설명하지 않은 점이 설명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진료기록감정 등 증거조사결과 B병원에게 진료상 과실을 인정할 만한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문제는 병원 의료진의 설명의무위반이 인정되는지 여부인데 이 사안에서 과연 인정됐을까?

법원은 B병원이 신장이식수술 전 A씨 측에게 신장이식수술에 따른 면역억제제의 사용으로 면역력이 약화돼 감염에 취약해지고 기존에 숨어있는 감염병증이 재발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기 때문에 거대세포바이러스혈증의 발생가능성에 대한 설명의무를 이행했다고 판단했다. 비록 B병원이 구체적으로 거대세포바이러스혈증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어도 신장이식수술을 받으면 이식거부반응을 막기 위해 면역억제제로 환자의 면역력을 극한까지 낮추므로 온갖 전염성질병에 감염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판단이었다.

또, 모든 전염성 질병을 개별적으로 명시해 감염위험을 설명할 수는 없다는 점과 거대세포바이러스혈증은 거대세포바이러스가 환자의 면역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잠복하고 있다가 면역력이 약화되면 활성화돼 병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잦은 점을 비춰 B병원이 위와 같이 포괄적인 설명을 한 것만으로도 설명의무를 다 이행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병원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법원은 마찬가지로 병원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의료진이 거대세포바이러스혈증에 대해 항바이러스제로 발간사이크로비어를 처방한 것은 거대세포바이러스혈증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항바이러스제이고, 발간사이크로비어의 처방을 비롯한 일련의 진료과정에서 진료상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 점, 장기이식 환자와 같이 면역력이 억제된 환자에게 거대세포바이러스혈증이 발생하면 이에 대한 치료가 불가피한 것인 점 등에 비춰 이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문제되지 않는 사항으로 아예 설명의무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와 같이 다소 이례적으로 설명의무위반 주장마저 모두 배척한 판결이 나온 것은 B병원 측에서는 설명의무에 관한 제반 법리에 따라 병원에게 유리한 법리와 사정들을 꼼꼼하게 주장·입증한 반면, A씨의 유족은 뒤늦게 설명의무위반 주장을 추가하면서 어떠한 설명의무에 위반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은 측면이 크다. 게다가 A씨는 신장이식수술 당시 이미 당뇨병으로 두 눈을 실명했고 말기신부전증으로 암 환자보다도 생존율이 낮은 매우 위중한 상태였지만, 유족 측은 건강이 위독하지 않았고 단지 투석을 받는 불편함 때문에 신장이식을 받게 되었다는 등 과학적 사실에 어긋나는 억지 주장을 남발했다.

유족으로서는 힘든 결정 끝에 장기를 공여했는데, 허무하게 가족을 잃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심정이 들 수 있다. 뜻하지 않게 최악의 상황에 이르면 의료진이 왜 무리한 수술을 감행해서, 환자와 가족을 더 힘들게 했는지 원망하는 마음도 들 것이고, 치료에 실패했는데 의료비를 내야 하는 것이 비합리적으로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병원이나 의사도 어떻게 해서라도 환자를 낫게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비슷하고, 의사 주관이 아니라 원칙에 따라서 치료를 하면 문제를 삼기가 힘들다. 게다가 요즘 병원은 의료소송에 대해서 많은 대비를 하고 있어서 결정적 잘못을 찾는 게 쉽지 않다.

특히 민사소송은 원고나 피고가 변론한 것을 중심으로 법원이 판단하기 때문에, 법원이 원고의 처지에 서서 피고를 심문해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 진료상 설명의무위반이 문제가 되는 듯해도, 병원이나 의료진의 잘못이 명확하지 않으면 패소할 가능성이 있다. 또, 여러 가지 주장을 하면 법원이 알아서 판단하겠지 하고, 근거가 약한 주장을 하면 전체 변론의 신뢰성에도 영향을 미치기 쉽다. 민사소송에서 패소하면 상대편 변호사 수임료까지 물어야 하므로, 그렇지 않아도 힘든 물적, 심적 상황에 더 깊은 타격이 올 수도 있다. 특히 위와 같이 설명의무위반이 문제가 돼 보여도 과연 우리 주장이 상식선에서 타당한지 면밀하고 엄정하게 검토해야 하고, 소송을 제기한 뒤에도 냉철하고 객관적인 주장으로 법관의 가슴이 아니라 뇌를 설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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