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서 겪는 공무원 갑질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119 이송 미담 Vs 특권의식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19 구급차가 어지러운 불빛과 함께 응급실 입구에 도착하면 응급실의 공기는 순식간에 변한다. 물처럼 천천히 뜨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화학약품을 섞은 것처럼 격렬하게 끓어오른다. 그러다가 구급차에서 내린 환자가 다행히 중증질환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 분위기는 빠르게 평온을 찾는다.

그런데 그날, 119 구급대가 이송한 환자는 특이했다. 물론 발목골절 자체는 심각하지 않았다. 개방성 골절이 아니어서 당장 응급수술이 필요하지는 않았고 신경손상 같은, 동반한 문제도 없었다. 환자가 고령이며 심장질환을 앓고 있어 주의가 필요한 정도였다.

다만 환자의 이송을 시작한 지역이 낯설었다. 차량으로 2시간가량 걸리며 광역자치단체가 3번이나 바뀌는 거리여서 119 구급대가 거기서부터 우리 응급실까지 환자를 이송한 것이 신기했다. ‘환자를 적절히 치료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응급실’에 이송하는 것이 119 구급대의 통상적인 방침이다. 광역자치단체의 경계를 넘어 이송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니 3곳의 119 구급대가 서로 연계하여 광역자치단체의 경계에서 환자를 인계하는 방식으로 우리 응급실까지 이송한 것이 매우 생경했다.

다만 환자의 상황을 확인하자 119 구급대가 내린 예외적인 결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고령의 환자는 의료보호에 해당했을 뿐만 아니라 매우 가난했다. 배우자와 자녀는 없고 그나마 가장 가까운 친척도 우리 지역에 거주했다. 또, 친척 역시 경제적으로 곤궁했다. 그러니 환자를 단순히 ‘적절히 치료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응급실’에 이송하면 결국에는 사설 구급차를 이용하여 우리 지역까지 올 수밖에 없었다(119 구급대는 병원과 병원 사이의 이송을 담당하지 않는다. 환자는 간병인을 구할 형편이 아니며 친척도 거주지를 떠날 수 없어 현실적으로 우리 지역에서 수술 받아야 했다). 그래서 환자의 그런 개인적 사정을 감안해서 3곳의 119 구급대가 협력해 환자를 우리 응급실까지 이송한 듯했다.

이런 119 구급대의 결정에 아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문제를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의료보호에 해당하는 고령의 가난한 환자임을 감안하면 119 구급대의 결정을 ‘편법’이라 비난할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오히려 많은 사람이 ‘사람 냄새가 나는 미담’으로 칭찬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환자가 직계가족이 없는 노인, 의료보호여서 진료비는 그럭저럭 해결할 수 있지만 10만원을 훌쩍 넘는 사설 구급차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가난한 계층이 아니었다면 어떨까? ‘평범한 시민’이 아니라 고위공직자의 가족이라면, 심지어 고위공직자가 편의를 봐주도록 지시했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당연히 대부분은 심각한 문제라고 판단하여 분노할 것이 틀림없다. 다시 말해 어렵지 않게 ‘정당하지 않은 행위’라고 판별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 전북지역에서 소방에 소속한 고위공무원이 전북 익산의 병원에 입원한 자신의 친척을 서울의 병원으로 119 구급차를 이용해 이송한 사건이 발생했다. 앞서 말했듯, 병원 간 이송은 119 구급대의 업무가 아니며 심지어 익산에서 서울까지 광역자치단체의 경계를 넘어 이송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또, 익산에서 서울까지 사설 구급차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수십만 원의 비용이 발생하지만 119 구급차는 무상인 것을 고려하면 ‘고위공무원의 갑질’ 혹은 ‘지위를 이용한 일탈’이 틀림없다. 그러니 글의 첫 머리에 언급한 ‘가난한 노인의 이송’과 달리 ‘칭찬받을 미담’이 아니라 ‘처벌받을 범죄’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갑질은 소방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지방의 사립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다보면 해당지역의 지방자치단체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소속의 공무원이 응급실에서 ‘특별대우’를 요구할 때가 종종 있다. 중증환자로 응급실이 붐벼도 자신부터 진료하라며 윽박지르고 경증질환에도 소생실 같은 조용한 공간에서 진료하라며 병원 행정부에 압력을 넣을 때가 가끔 있다. 심지어 선거로 뽑은 선출직 공무원이 그런 특권의식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 전북지역 소방공무원의 ‘갑질’은 우연히 발생한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반을 반영하는 모습일 가능성이 크다. ‘응급의료체계의 발전,’ ‘공공의료의 확충’ 같은 거창한 제도적 개선도 중요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벌어지는 갑질과 관행을 해결하지 못하면 그 모든 거창한 노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에디터 kormedimd@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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