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환자 돕다 숨진 의사.. ‘의사자’의 기준은?

[김용의 헬스앤]

[사진=고 이영곤 원장]

빗속에서 교통사고를 목격했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그 것도 수많은 차량들이 무섭게 달리는 위험한 고속도로에서… 그는 사고차량 운전자의 안위를 먼저 걱정했다. 주저없이 자신의 차에서 내려 빗길을 뚫고 다가가 부상 정도를 살폈다. 큰 부상이 아닌 것을 확인한 그는 응급처치 후 다시 자신의 승용차로 발길을 옮겼다. 그 짧은 순간, 그는 빗길에 미끄러진 또 다른 차량에 치이면서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끝내 숨졌다.

내과의사 고 이영곤(61) 원장의 이야기다. 교통사고 부상자를 돕다가 숨진 고인을 ‘의사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각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산대 의대를 졸업한 고인은 경상남도 진주 중앙시장 인근에서 ‘이영곤 내과의원’을 30년간 운영하며 경제력이 없는 환자들에게 무료 진료를 해주고 청소년 장학금 지원을 해온 ‘참 의사’였다. 그의 사망 소식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왜 이렇게 착한 사람에게 세상은 가혹할까…”라는 탄식이 터져나왔다.

경남 진주시는 고 이영곤 원장의 의사자 인정 여부 결정을 보건복지부에 직권으로 청구했다.  의사자(義死者)는 다른 사람을 구하려다 사망한 사람을 말한다. 자신의 일(직무)과 관계없이 구조행위를 한 사람에 한정해 국가가 지정한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사상자 심사위원회의 심사·의결 등을 거쳐 의사자 인정 여부를 결정한다. 의사자로 인정되면 보상금과 함께 의사자 유족에 대한 국가적 예우와 지원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고인은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22일 경남 사천시 정동면 선친의 묘소를 찾은 뒤 귀가하던 오전 11시 53분쯤 진주시 정촌면 남해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목격했다. 차량이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가드레일을 들이받자 곧바로 자신의 승용차를 갓길에 세운 뒤 사고 차량 운전자의 부상 여부를 살핀 후 돌아오다 변을 당했다.

고인은 위험한 빗길 고속도로에서 다른 사람의 교통사고를 외면하지 않고 주저없이 구조에 나섰다. 다행히 운전자가 중상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 응급처치까지 해줬다.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데도 사고 현장에 뛰어들어 끝내 목숨까지 바쳤다. ‘의사자’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의로운 행동이다. 진주시는 고인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의사자 인정을 직권으로 청구하기로 했다. 대한의사협회와 경상남도의사회도 의사자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의사자 인정은 보건복지부 ‘의사상자 심사위원회’의 복잡한 심사·의결 절차를 거쳐야 한다. 지난해 흉기를 든 조현병 환자로부터 간호사들을 보호하려다 흉기에 찔려 사망한 고 임세원 교수는 법정 다툼 끝에 의사자 인정을 받았다.

고 임세원 교수는 지난 2018년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중 환자가 갑자기 흉기를 꺼내 간호사, 다른 환자에게 접근하자 ‘피하라’는 손짓을 하며 멈춰서다 흉기에 찔려 숨졌다. 이후 유족은 고인을 의사자로 지정해달라고 보건복지부에 신청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적극적·직접적 행위’를 했다고 볼 근거가 없다”며 불인정 결정을 내려 소송으로 이어졌다.

유족 측은 “고인은 쉽게 피할 수 있는 다른 통로로 갈 수 있었는데도, 간호사들과 다른 환자들에게 위험을 알리기 위한 과정에서 범인에게 추격당해 결국 사망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판결을 통해 고 임세원 교수가 ‘적극적·직접적 행위’로 간호사를 구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유족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요즘 예전처럼 ‘존경받는’ 의사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말을 한다. 의사가 돈을 벌기 위해 홈쇼핑에서 물건을 팔고,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야 하는 불신의 시대다. 고 이영곤 원장은 자신에게 위험이 닥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의사의 본능’을 숨기지 않았다. 부상자를 살피고 비를 맞으며 응급처치를 했다. 쉬운 길을 갈 수 있었는데도 ‘의사의 길’을 선택했다. 이런 분이 ‘의사자’가 아니면 누가 의사자일까?  고 이영곤 원장은 추석 때  자신이 찾았던 선친의 묘소 옆에 안장됐다.

김용 기자 ecok@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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