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태움’은 사라졌을까?

[김용의 헬스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공군의 여군 중령(40대)이 하급자인 30대 남성 군무원을 성희롱한 혐의로 최근 공군 중앙수사대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군 중령은 헬스가 취미인 군무원의 가슴 근육이 발달한 모습을 보고 “요즘 모유 수유하냐. 가슴이 왜 그렇게 크냐”고 말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여군 중령은 “완전히 날조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남성 군무원은 이 여군의 다른 발언으로 인해 모욕감을 느꼈다고 진술해 군 당국은 ‘직장 내 괴롭힘’ 여부도 살펴보고 있다. 그러나 여군 중령은 군무원이 주장하는 내용은 모두 사실이 아니고, 상관으로서 업무상 질책은 했지만 직장 내 괴롭힘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조사 중이라 아직 정확한 진실은 알 수 없다.

엄중한 군기가 생명인 군에서도 최근 언어폭력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상급자라도 말 한 마디 잘 못하면 수사까지 받을 수 있는 시대다. 과거에는 구타가 당연시됐고 욕설은 예사였다. 확 바뀐 시대의 흐름을 군도 따라가는 형국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부터 ‘갑질, 폭언 논란’이 부각되면서 상사가 부하직원을 질책할 때도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간호사 사회에는 ‘태움’이라는 독특한 용어가 있다. 태움은 “재가 될 때까지 태움”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간호사 간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일반화된 용어다. 2년 전 쯤에는 태움으로 인한 간호사들의 극단적 선택이 잇따라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기도 했다. 태움에서 가장 빈번한 것은 언어폭력이다.

대한간호협회가 회원들을 대상으로 실태조사(2018년 1월)한 결과, 응답 간호사의 41%가 태움을 경험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신고사건 중 욕설, 외모 비하, 인격 모독적 발언 등 폭언이 가장 많았다. 다른 조사에선 간호사들은 언어폭력이 부모로 향할 때 가장 괴롭다고 했다. “널 낳고 어머님이 미역국은 드셨다니?”  “엄마, 아빠가 어떻게 키웠길래..” 모두 가슴을 짓누르는 심각한 언어폭력이다. 하지만 이는 3~4년 전 조사결과다. 이제 태움은 사라졌을까?

코로나19 대유행이 길어지면서 간호사 인력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달 말 총파업을 예고했던 보건의료노조는 2일 정부와 마라톤협상 끝에 최대 쟁점인 코로나19 대응 인력 투입 기준 마련, 공공병원 확충, 간호사 처우 개선, 교육전담간호사 제도 확대, 야간간호료 지원 확대 등에 대해 합의했다. 특히 간호사 1인당 환자를 줄이고 예측 가능한 교대근무제를 확립하겠다는 항목에는 많은 국민도 공감했다.

간호사는 불규칙한 교대 근무가 일상화되어 있고 밤을 꼬박 새우는 야간근무가 유난히 많다. 체력 소모와 스트레스가 심한 직종이다. 여기에 태움까지 그들을 괴롭혔다. 태움은 근무 경력이 짧거나 연령이 낮은 간호사들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한 때 생명을 다루는 분야이기 때문에 일정 부분 태움을 용인한 문화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태움의 근본 원인은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많았다. 병원 마다 간호사가 부족하다보니 업무미숙에 과도하게 대응하게 되고, 이는 다시 이직을 불러오는 악순환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이제는 간호사 사회도 변해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한 개정 근로기준법이 2019년 7월 16일부터 적용 중이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나 사용자의 조치 의무 등을 강화한 개정안이 오는 10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앞의 글에서 태움 관련 사례를 모두 ‘과거형’으로 쓴 것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행동하는 간호사회’가 간호사 회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태움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에도 ‘직장 내 부당대우가 줄었냐’는 질문에 ‘전혀 변화없다’ 11%, ‘거의 변화없다’ 33%로, 절반가량이 실제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직장 내 부당대우 심각성을 묻는 질문에 ‘심각한 편’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45%나 됐다. 부당대우 유형 중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사례는 폭언과 무시였다.

병원 내 간호파트 최고위층의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과거처럼 암묵적으로 태움을 용인하던 선배들의 ‘옛날 리더십’은 사라져야 할 구태 중의 구태다. 경력 간호사들이 앞장서서 태움 예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군대는 더욱 엄중하게 생명을 다루는 조직이다. 사격장 군기는 매우 엄격하다. 그런 군도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는 진통을 요즘 겪고 있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악습이 없어져야 진정한 간호사 근무 여건 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

김용 기자 ecok@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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