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고가장비와 의료인 중 뭐가 중요할까?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보건의료노조 파업 사태를 보며

걸음마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은 뒤뚱뒤뚱 걸음이 어색한 아이가 자그마한 손으로 반대편 손목을 꼭 잡고 응급실을 찾는 사례가 종종 있다. 아이를 데려온 부모의 얼굴에는 당연히 걱정스런 표정이 떠오르고 ‘아이가 팔을 사용하지 않고 손목을 만지면 자지러지게 운다’고 말한다. 그러나 부모의 예상과 달리 그런 자세를 취하는 아이의 대부분은 손목이 아니라 팔꿈치에 문제가 있다. 소아에 흔한 ‘팔꿈치 부분탈구(Radial head subluxation)’가 발생했을 때, 환아가 전형적으로 취하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영어로 ‘Nursemaid’s elbow’라 부르는 소아의 팔꿈치 부분탈구는 상완(Forearm)을 구성하는 요골(Radius)의 머리 부분이 팔꿈치 관절에서 빠진 상태로 학령기 이전에 많이 발생한다.

원인을 봐도 심한 외상은 드물고 소아가 불안정한 자세에서 손으로 바닥을 짚거나 어른 또는 나이 든 아이가 장난으로 소아의 팔을 잡아당겨 발생할 때가 많다. 숙련한 임상의사라면 손쉽게 정복할 수 있으며 정복 후 통증을 호소하지 않고 팔꿈치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을 확인하면 굳이 엑스레이(X-ray) 같은 ‘방사선 검사’를 시행할 필요가 없다(물론 소아는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만큼, 조금이라도 골절 같은 다른 문제의 가능성이 있으면 엑스레이를 촬영해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응급실에서 소아의 팔꿈치 부분탈구를 정복한 후에는 대부분 X-ray를 촬영한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했더니 보따리를 찾는다’는 속담처럼 ‘혹시나 해서 응급실을 찾았을 뿐, 원래는 아프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황당한 사례를 아주 드물게 마주치기 때문이다. 덧붙여 엑스레이를 촬영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아이의 팔만 몇 번 접었다 폈는데 왜 진료비가 발생하느냐?’고 따지는 사례도 빈번하다. 그러니까 엑스레이 촬영도 없고 주사를 맞지도 않았으며 경구약도 처방하지 않았는데 고작 의사가 진찰하고 ‘팔꿈치가 빠졌으니 정복하겠다’며 아이의 팔을 몇 번 접었다 폈다한 것으로는 진료비를 지불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런 주장은 소아의 팔꿈치 부분탈구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목구멍(Pharynx)에서 생선가시 같은 이물질을 제거하거나 이경(Otoscope)을 사용하여 귀에서 부러진 면봉 같은 이물질을 제거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왜 돈을 받느냐?’, ‘이 정도는 공짜로 해도 될 텐데 왜 야박하게 구느냐?’란 불만을 종종 접한다.

물론 의료인이 아닌 입장에서는 오해할 수 있다. 또 그런 불만에는 개인의 성격보다 한국사회가 지닌 독특한 특징이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한국사회는 전문가가 지닌 무형의 기술과 경험을 경시하고 눈으로 보이는 장비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조금 넓게 바라보면 한국사회는 비싼 장비와 기계만 소중히 여길 뿐, 숙련한 인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의료계는 장비와 기계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숙련한 인력이 아주 중요한 업종이라 한국사회의 이런 뒤틀린 특징이 한층 도드라진다. 심지어 정부와 건강보험공단조차 그런 분위기에 편승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정부와 건강보험공단이 그런 분위기를 한층 조장한다. 실제로 보험수가만 살펴봐도 엑스레이, 초음파,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촬영(MRI) 같은 ‘비싼 장비와 기계’를 사용하여 검사를 시행하는 것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돈을 지급하지만 의사와 간호사 같은 숙련한 인력이 시행하는 술기에는 매우 인색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은 비슷한 경제 수준의 다른 국가와 비교하여 CT와 MRI 같은 ‘비싼 장비와 기계’가 훨씬 많고 그런 기계를 사용한 검사를 처방하는 횟수도 매우 많다. 나아가 비싼 장비와 기계를 소중하게 여기고 숙련한 인력을 경시하는 분위기는 인간을 소모품처럼 간주하는 정책을 부르고 시쳇말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인력을 갈아 넣는 사회구조’를 만든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맞서는 ‘K-방역’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지금까지 코로나19 대유행에 맞서는 방역에서 세계의 어느 국가와 비교해도 자랑스러운 결과를 얻었지만 그 이면에는 공무원과 의료인을 갈아 넣는 구조가 도사린다. 신속하고 정확한 검사를 대량으로 시행하는 것을 바탕으로 확진자를 찾아내고 동선을 파악하여 잠재적인 감염자를 추적하고 확진자 대부분을 전담병원과 생활치료센터에 수용하여 치료하는 방역체계는 훌륭한 실적을 거두었지만 그런 체계는 많은 인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지금껏 정부는 인력 확충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K-방역’이 거둔 눈부신 성과를 몇몇 정치인의 프로파간다에 남용했을 뿐, 정작 일선에서 열정을 바친 인력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인력을 확충하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지금껏 늘 그랬듯, ‘사람은 많으니 최대한 갈아 넣고 언제든 소모품처럼 교체한다’는 생각이 책임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다행히 9월 2일 새벽의 극적인 타결로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을 가까스로 피했지만 ‘장비와 기계만 중시하고 인력을 경시하는 분위기’를 개선하지 않는 이상, ‘숙련한 인력을 소모품처럼 갈아 넣어 유지하는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이상, 그저 파국을 연기한 것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복지부가 관련 법률안 개정, 예산 확보 등을 관계 부처, 국회 등과 성실히 논의하겠다”고 했고, 나순자 보건의료노조위원장은 “완전한 해결은 아니지만 합의문이 공공의료 및 보건의료 인력 확충의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정부와 정치권 전체가 의료인 전체에 대한 소중함을 인식하지 않고는 파국의 불씨가 꺼졌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의료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에디터 kormedimd@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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