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안내서 쭉 읽고 동의 받으면 설명의무 OK?

[서상수의 의료&법]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환자가 병원에서 수술, 약물 등을 통한 치료를 받았는데 오히려 환자의 상태가 악화돼 숨지거나 영구장애와 같은 심각한 결과가 초래됐다면 환자 측에서 병원의 진료 상 과실을 의심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환자나 유족들은 적지 않은 비용과 긴 시간, 그리고 불행한 사건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회상해야 하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소송을 제기한다.

의학적 전문지식과 경험이 없는 일반인이 의료 상 과실과 인과관계를 찾아내고 입증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의료인이나 의료전문 법조인 또는 각종 구제 기관과 단체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의료과실을 입증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의료행위는 본질적으로 진료방법이 딱 한 가지로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대체 불가능한 가장 중요한 증거자료가 진료기록인데 진료기록을 작성·보관하는 것이 바로 해당 의료행위를 행한 의료기관인 것이고, 재판에서 진료기록감정을 실시하는 감정인 역시 의료인이기에 다른 의료인이 행한 의료행위가 잘못됐다고 판정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의료소송에서 의료 상 과실 또는 손해발생과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었다고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환자 또는 가족이 대분의 의료소송에서 패소해 전혀 배상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일까?

여기서 부수적으로나마 환자 측이 배상을 받을 수 있는 중요한 가능성이 남아있다. 바로 설명의무위반의 문제다.

의료법 제24조의2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는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 수혈, 전신마취를 하는 경우 환자에게 발생하였거나 발생 가능한 진단명, 수술 등의 필요성과 방법 및 내용, 설명을 하는 의료진과 참여하는 의사진의 성명, 수술 등에 따라 전형적으로 발생이 예상되는 후유증 또는 부작용, 수술 등 전후 환자가 준수할 사항 등을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다만, 설명 및 동의 절차로 인하여 수술 등이 지체되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하여지거나 심신상의 중대한 장애를 가져오는 경우에는 설명의무가 면제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우리 의료계 실정이 설명의무이행이 완벽하게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다수의 의료사고에서 의료 상 과실을 따지다 보면 진료 자체의 과실은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설명의무위반이 인정받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우선, 설명의무의 주체는 의사다. 따라서 간호사가 설명한 것은 아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법한 것이다.

다음으로 설명의 상대방은 원칙적으로 환자 본인이기 때문에 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때와 같이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환자의 보호자 등이 환자를 대신하여 동의를 하여도 효력이 없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설명의 대상과 설명과 동의의 방법이다.

설명의 대상은 위 법 규정을 확대해 검사, 진단, 치료 등 진료의 모든 단계에서 침습적 행위를 수반하거나 나쁜 결과 또는 중대한 결과 발생이 예측되는 경우에도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문제되므로 설명의 대상이 된다고 보며, 중대한 결과의 발생가능성이 있다면 비록 그 가능성이 희박해도 설명의무의 대상이 된다고 보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이다. 이에 따라 소송실무상 비교적 간단한 시술 또는 각종 약물의 투약과 처방에 있어서도 거의 모든 경우에 설명의무가 인정된다고 판단 받고 있다.

설명과 동의의 방법은 치료 내용이 인쇄된 설명서를 교부하거나 읽어주기만 하고 동의 서명을 받는 것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반드시 수기로 밑줄, 동그라미, 글자기재 등을 하여 실제로 직접 설명한 기록을 남겨야 하며, 많은 설명내용들 가운데 문제가 된 설명사항에 대하여 그러한 수기의 표시가 없이 부동문자로 인쇄만 되어있다면 그 부분은 설명한 것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례도 있다.

다만, 설명의무란 것이 어떠한 진료를 받을 것인지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이미 환자가 잘 알고 있거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항인 경우와 같이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될 여지가 없다면 설명이나 동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하였다고 하여도 위법하다고 보지 않는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설명의무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의 범위는 자기결정권 침해로 인한 위자료에 한하는 것이지, 해당 의료행위로 발생한 악결과로 인한 손해 전체가 아니다. 다만, 설명의무에 위반하지 아니하였다면 환자가 해당 진료를 받지 않고 다른 방법을 선택하여 악결과가 발생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라는 점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해당 의료행위로 인한 전체 손해의 배상이 인정된다.

법원은 대체로 의학적 전문성과 증거에 대한 접근성 등을 고려해 의료기관에 비하여 환자가 상대적 약자라고 보아 진료행위 자체의 과실이나 인과관계가 입증이 되지 않더라도 환자에게 중한 악결과가 발생한 경우에는 설명의무위반으로 인한 위자료 배상의무를 비교적 폭넓게 인정해주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환자 측은 의료사고를 당하면 진료행위 자체의 과실과 인과관계뿐만 아니라 설명의무에 위반되는 점이 없는지도 꼼꼼히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의료기관은 아직 우리 임상 현실에 비해 매우 엄격한 설명의무라고 할지라도 이를 온전히 이행할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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