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뿐 아니다, 노인도 학대받고 있다

[허윤정의 의료세상] 고령화 사회와 노인인권 감수성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6개월 입양아 정인이 학대 사망사건을 비롯해, 잇따라 터지는 극단적 아동학대 사건들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잔인함이 확인되는 아동학대 사건들 탓에 처벌 강화와 예방을 위한 논의가 한창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관심은 적지만, ‘반대편에 있는 약자’인 노인에 대한 학대도 증가 추세이고 실상을 들여다보면 가슴 아픈 사연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내 노인 학대 사례는 모두 6259건으로 전년보다 19.4%,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재학대 사례는 22.8%가 증가했다. 드러나지 않은 사례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전히 노인학대는 우리 사회에서 주요 의제가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과 빈곤율 1위이다. 문제는 노인 가족에서부터 노인 돌봄을 담당하는 시설까지 ‘노인 인권감수성’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에 대한 대책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한국 사회의 중대한 사회문제를 진단할 때 대개 급속한 인구절벽과 고령화를 언급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노인의 인권감수성은 고려 대상에서 늘 제외되고 있다.고령층 비율이 급속히 늘고 있어 노인 인권 문제는 곧 나의 문제, 우리의 문제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65세 이상 고령층 인구는 지난해 처음으로 800만 명을 넘어 서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통계청의 ‘2020년 인구 주택 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전년보다 46만 명이 증가한 820만 6000명 이다. 전체 인구 대비 16.4%까지 높아졌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로 분류된다.

유소년 100명당 고령층 인구 비율을 뜻하는 노령화지수는 2000년엔 35.0 이다. 2010년 69.7을 기록하고 10년 만에 132.9로 또다시 두 배 가까이 증가하며 최고치를 경신했다. 노년부양비도 2000년 10.2에서 2020년 23.0으로 두 배 이상 높아졌다. 이는 생산연령인구 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는 의미다. 고령화 문제를 다룰 때 지역별 노령화지수와 노년부양비 등 지역별 편차에 가장 먼저 주목하는 것을 고려하면, 노인 문제는 더 이상 눈감을 수 없는 아찔한 문제임을 절감하게 된다.

다른 수치를 봐도 걱정스럽다. 2018년 건강보험 진료비 77.6조원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의 진료비는 31.6조로 40.8% 이다.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 중 65세 이상 노인의 진료비 증가가 가장 높다. 급속한 고령화의 진행은 노인장기요양보험에도 영향을 미쳤다. 2020년 대상 노인이 전년 대비 11.1% 증가했고, 급여비도 전년 대비 14.7% 증가해 9조 원을 넘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2008년 7월 도입 됐다. 65세 이상의 노인 등 노인성 질병으로 6개월 이상 스스로 생활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목욕, 간호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 대상자 확대로 인력과 시설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지난 해 장기요양기관 인력은 전년보다 2.4% 증가한 50만 명이었다.

노인 문제는 이같이 노령화지수, 노년부양비 등과 함께 노인 진료비, 노인장기요양 급여비 등의 객관화된 지표로 분석된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이 통계에 기준하여 ‘노인의 삶’ 측면에서 노인 문제를 제대로 접근하고 다루고 있는가?

어린 시절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고, 시간이 지나 할아버지 할머니가 거동이 불편해지고 아픈 모습을 함께 생활하며 경험한 세대는 사람의 생로병사를 특별하게 배우지 않아도 알게 된다. 그런데 아이 1명 또는 2명을 낳아 키우는 가정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따로 살다가 그들이 아프면 병원, 요양병원, 요양원에서 치료 또는 케어를 받게 되면서부터 거동이 불편하고 아픈 노인의 모습을 보고, 익히고, 경험한 세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들은 거동이 불편하거나 아픈 노인을 이해하기 어렵고 불편하게 여길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TV와 영화에서나 나오는 ‘남’으로 분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세대를 반복하게 되면 노인 문제는 객체화된 분석의 의제로 냉각돼 버릴 수 있고, 지금 우리가 그 흐름의 본류에 도달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노인의 삶을 우리 자신의 삶으로 보고 있지 않는 배경에는 노인 문제 해결을 대부분 제도적 틀에 맡기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사회복지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면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에게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제공한다. 질병을 앓고 있는 분은 간병서비스, 치매를 앓고 계신 분에게는 치매 국가책임제 등에 위임하고 있다. 다양한 노인 문제를 어떻게 예방하고 해결할지 고민하고 논의하기보다는, 국가가 마련한 제도적 틀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모래 속에 머리를 묻는 타조’처럼 우리 모두는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노인 문제는 대부분 제도의 틀에서 대책을 제공한다. 그러나 초기 단계며, 인프라도 부족하고 인력도 넉넉하지 않다. 당연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더욱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고령화 속도에 비해 인프라와 인력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노인 인권감수성 부족을 따질 형편이 못된다. 가정뿐 아니라 노인 돌봄을 담당하고 있는 복지시설에서 조차 노인 학대가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치매 환자에 대한 시설이나 가정에서의 인권 문제는 언제 터질지 조마조마할 정도다. 지난달 30일 미국 덴버에서 국제 알츠하이머협회 콘퍼런스(AAIC 2021)가 열렸다. 2019년 5740만 명이던 전 세계 치매 환자가 2050년에는 1억5280만 명으로 급증할 것이라는 연구 통계가 발표됐다. 고령 인구가 급증하는 한국도 치매 환자 증가로 노인 치매 환자로 인한 사회문제의 무게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사회는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고령화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따뜻한 감성을 가진 ‘사람의 눈’으로 대응하기 까지는 갈 길이 멀다. 제도가 갖는 탄력성도 미흡하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더 취약한 노인의 인권감수성은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가치다. 지금부터라도 법적 그리고 윤리적으로 노인의 인권감수성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문화적 기반을 만들어야 할 당위성이 더 없이 크고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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