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희귀병 치료제 찾았다

ADNP 증후군이라는 희귀질환이 있다.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헬스무르텔-반데르아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23쌍의 인간염색체 중 20번 염색체 상에 위치한 ‘활동-의존 신경보호 호메오박스(activity-dependent neuroprotector homeobox)’라는 유전자 부위에 돌연변이가 발생해 신경발달장애를 일으키는 경우를 뜻한다. 수면, 시력, 심장 건강, 소화 장애 외에도 지적 장애, 언어 및 운동 지체, 자폐증상, 안면변화 등 다양한 증상을 발생시킨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 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세계적으로도 수백 명 수준에 머물 정도의 희귀하다. 우리나라에서도 2019년 국가지정 희귀관리질환으로 삼아서 국가가 해당 환자의 치료를 지원해주고 있다.

이런 ADNP 신드롬 치료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됐다. 지난달 미국에서 이 선천적 질환에 걸린 5~12세 아동 10명에게 보통 성인용 마취제나 항우울증 치료제로 쓰이는 케타민을 투약하는 임상실험에 대해 안정성과 효용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연구결과는 아직 학술지에 제출되거나 발표되지 않아 동료검토를 거치지 못했다. 하지만 심각한 부작용에 대한 보고는 없었고, 부모 및 임상의의 평가에 대한 예비 분석 결과 주입 후 1주일 만에 과잉활동장애와 의사소통장애에 대한 뚜렷한 개선이 보고됐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ADNP 신드롬 극복에 청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놀라운 점은 케타민이 이 신드롬 치료에 효과가 있음을 발견한 것이 과학자나 제약회사가 아니라 ‘메디칸렌(mediKanren)’이라는 낯선 이름의 인공지능(AI)이란 데 있다. 메디칸렌은 미국 앨러배마대학교 버밍햄캠퍼스(UAB)의 휴 카울 정밀의학연구소의 맷 마이트 소장이 개발 중인 의학전문 AI이다.

마이트 소장은 원래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으나 아들이 선천적 운동장애증세를 보이자 그 병명을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해 의학 분야로까지 전공을 넓혔다. 이를 통해 아들의 병이 400만 명에 한 명 정도 발생하는 ‘N-글리카나아제1(NGLY1) 결핍증’이라는 희귀질환임을 밝혀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UAB에서 컴퓨터공학과 의학·생물학 연구를 접목하는 정교수까지 됐다. 그는 2019년 다양한 출처의 생물의학 데이터를 수집하고 구조화해 그동안 과학자들인 간과한 것이 없는지를 찾아내도록 하기 위해 메디칸렌을 구축 중이었다.

이때 방문연구원으로 매트 데이비스라는 신경외과의사가 UAB를 찾게 된다. 그의 아들은 ADNP 증후군 환자였다. 희귀 유전질환을 가진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 동병상련을 지닌 두 아버지는 의기투합했고 실험삼아 메디칸렌에게 ADNP 증후군의 치료제 후보를 추천하게 했다. 메디칸렌은 기존 화합물과 질병에 관여하는 유전자 사이의 관계를 찾기 위해 수백만 개의 데이터베이스를 돌린 끝에 유력 후보로 저선량의 케타민을 추천했다. 저선량의 케타민을 투여하면 생쥐 암세포에서 ADNP 발현이 유발됐다는 2017년 논문과 쥐의 뉴런에서도 같은 효과를 보였다는 2015년 논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데이비스 박사는 실제 시간은 겨우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그 결과를 전달받은 순간 “머리 속에 백열전구가 들켜지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신경발달장애 치료에 쓰이는 대부분의 약물은 신경전달물질 촉진에만 초점을 맞춰져 있지만 케타민은 병의 근원인 ADNP 유전자에 직접 작용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를 토대로 2020년 임상실험이 결정됐고 올해 ADNP신드롬에 걸린 10명의 아동에 대한 임상실험 결과 최소한 안정성 문제는 해결됐으며 케타민이 ADNP 발현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점까진 확인됐다. 하지만 효용성이나 지속성에 대한 추가 연구를 기다려 봐야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작은 안전 연구결과만 갖고 케타민 효과가 있다는 증거로 볼 순 없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AI를 통해 환자 수가 적기 때문에 치료제 개발비용을 뽑기 어렵다는 이유로 외면되어왔던 수많은 희귀질환 치료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문은 열렸다. 마이트 소장은 “AI를 통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unknown knowns)’을 발견할 수 있으며 동시에 의미 있는 제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큰 승리”라고 말했다. 이 내용은 미국 건강의학 매체 스탯뉴스가 6일 상세히 보도했다.

한건필 기자 hanguru@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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