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고치는 치료, 왜 국내에서 힘 얻나?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동성애와 전환요법

고대로부터 정보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했다. 아무리 막강한 군대도 적에 대한 정보가 정확하지 않거나 충분하지 못하면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정확한 정보가 있으면 어려운 상황을 손쉽게 반전할 수 있다. 그래서 아군의 정보를 적으로부터 보호하고 동시에 적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를 확보하는 것에 군대는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2차대전 때도 마찬가지여서 영국, 미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국과 독일, 이탈리아를 주축으로 한 추축국 모두 살벌한 정보전을 펼쳤다. 그런데 이런 정보전에서 연합국의 우세를 이끈 사람은 할리우드영화에 등장하는 멋진 첩보원이 아니라 모범생 같은 인상의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이다.

1939년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로 독일의 암호를 해독하는 업무를 맡은 튜링은 독일이 ‘절대 깨어지지 않는다’고 자신한 ‘이니그마(Enigma) 암호체계’를 완벽하게 풀어내서 연합군의 승리에 크게 공헌한다(독일은 전쟁 끄트머리에 이를 때까지 영국이 이니그마를 해독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물론 튜링의 업적은 단순히 독일 암호를 해독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위대한 수학자였던 튜링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의 개발을 이끌었고 인공지능의 발전에도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앨런 튜링은 자신의 업적에 어울리는 삶을 누리지 못했다. 2차대전의 승리에 크게 공헌한 영웅이며 ’20세기 최고의 수학자’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었으나 영국에서 그는 저열한 범죄자이며 기껏해야 치료가 필요한 미치광이에 지나지 않았다. 앨런 튜링이 동성애자였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20세기 후반까지 영국에서 동성애는 범죄에 해당했다. 특히 1950~60년대에는 처벌이 엄격했다. 그리하여 1952년 앨런 튜링은 동성애로 체포당한다. 곧 유죄가 인정되어 실제로는 화학적 거세에 해당하는 12개월의 ‘호르몬 요법’을 선고받는다. 그 사건으로 모든 지위를 잃은 튜링은 우울증에 걸리고 1954년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애플의 ‘베어먹은 사과’ 로고는 여기에서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동성애를 처벌해야 할 범죄 또는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으로 간주하는 입장은 영국과 미국에서 2000년대까지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동성애를 범죄로 처벌하는 법은 20세기 후반에 폐지됐지만 미국의 복음주의 기독교를 중심으로 동성애를 치료하는 이른바 ‘전환요법(Conversion therapy)’이 널리 퍼졌다.

동성애를 질병으로 규정하여 치료하는 ‘전환요법’은 동성애의 원인을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혹은 동성애자 자신의 인격적 결함 같은 후천적 요인에서 찾아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고 노력하면 동성애를 뿌리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정통 정신의학계 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유사의학’에 불과하지만 보수적인 복음주의 교회의 지원 아래 세를 불렸다. 그리하여 ‘엑소도스 인터네셔널(Exodus International)’같은 거대한 단체가 출범하여 동성애자를 치료해서 이성애자로 만드는 활동을 광범위하게 벌였다.

그러나 애초에 유사의학인 전환요법이 실제로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웠다. 특히 동성애를 질병으로 규정하고 그 원인을 개인의 문제에서 찾아 교정하는 방식은 해당 치료를 받는 사람의 정신을 황폐화해서 전환요법을 받은 동성애자의 자살확률은 전환요법을 받지 않은 동성애자의 2배에 육박한다. 그리고 전환요법으로 치료하여 이성과 결혼했던 동성애자 대부분도 시간이 흐르자 동성애자로 돌아왔다. 그러니 전환요법은 이룰 수 없는 목표에 막대한 자원을 소모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동성애자의 삶을 파괴하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영국과 미국에서 이미 유사의학으로 밝혀지고, 사회문제를 일으켜 힘을 잃고 있는 ‘전환요법’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힘을 얻고 있다. 심지어 유사의학을 경계하고, 대중에게 그 위험을 알릴 의무가 있는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HIV와 관련한 온갖 음모론을 악용하여 대중의 공포를 자극하면서 그런 운동에 앞장서는 것은 정말 개탄스럽다. 이제 우리도 선진국에 진입했으니 동성애에 대한 접근도 선진국에 어울리는 한층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태도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에디터 kormedimd@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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