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떼어줄 수 있는 사람 있나요?

[김용의 헬스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배우 양택조(82세)는 아들이 간 이식을 해준 얘기를 방송에서 자주 한다. 목소리와 얼굴에선 지금도 미안하고 애틋한 마음이 진하게 배어 나온다. 벌써 16년이 지났으니 그 당시는 간 이식 수술이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선뜻 자신의 간을 떼어준 아들이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건강한 사람이 수술대에 올라 무려 18시간을 견디어 냈다.

양택조는 C형 간염을 초기에 발견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술을 더 마셨다고 한다. 위 혈관이 터져서 피를 토하고 여러 차례 입원했다. 간염이 악화돼 간경화(간경변증) 3기로 진행됐고 급기야 3개월 시한부라는 말도 들었다. 살 수 있는 방법은 간 이식뿐이었다. 16년 전 간 이식 수술은 매우 위험했다. 그는 “이만큼 살았으면 됐지..”라고 체념하고 있었는데, 아들이 간 이식 얘기를 꺼냈다. 하지만 차마 아들에게 이식받을 수 없었다. 아내 볼 낯이 없었다.

그는 결국 아들 덕분에 살았다. 양택조는 “죽을 각오를 하고 들어갔는데 살아나오니 아들이 먼저 생각났다. 옆방에 아들이 코에 줄을 낀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나 때문에 건강한 아들이…” 그는 “내 와이프는 속이 얼마나 상했겠나. 둘이 수술실에 들어갔으니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18시간 동안이나 수술을 했다. 사랑하는 가족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 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간 이식은 지금도 고난도의 수술이다. 최근 여동생에게 간을 떼어 준 어느 유명인의 아내가 이식 후유증으로 숨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간 이식은 간경변증이 악화되어 기대수명이 1년 미만일 경우 선택한다. 간경변증은 말랑말랑했던 간이 돌덩이처럼 딱딱해져 간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질병이다. 현재 간 이식 후 5년 생존률은 80%정도다. 우리나라의 간 이식 성적은 매우 우수한 편이다.

하지만 간 기증자를 찾는 게 너무 어렵다. 우리나라는 뇌사 기증자가 많지 않아 가족의 간 일부를 떼어 내 이식하는 ‘생체 간 이식’ 비중이 높다. 간 일부를 절제하는 만큼 ‘뇌사자 간 이식’에 비해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생체 간 이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 또 안전’이다. 먼저 기증자의 건강부터 살펴야 한다. 간 일부를 떼어 내도 2주 정도면 원래 기능이 회복하지만, 절제 후 담즙(쓸개즙) 누출, 담관 협착, 간문맥혈전증 같은 합병증을 최소화하려면 건강한 사람만 간을 기증할 수 있다. 생체 간 이식은 기증자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기증자가 100% 안전하다는 확신이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수술하는 경우가 많다.

간 기증자의 배에 남을 수 있는 큰 수술 자국도 부담이 될 수 있다. 배에 구멍 몇 개만 뚫고 시행하는 복강경 수술이 좋지만, 모든 기증자가 이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간 절제 후 지속적인 추적 관찰도 중요하다. 기증할 간을 절제하기 전 항응고제인 헤파린이 주입돼 수술 직후 출혈 가능성이 있다. 간을 떼어내고 다시 혈관을 잇는 혈관 문합에 문제가 생기면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의료진은 간 기증을 놓고 벌어진 어려운 과정을 잘 안다. 가족 간 갈등도 있을 수 있다. 가족을 위해 어려운 결정을 한 간 기증자가 합병증이 생기지 않도록 더욱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간 기증자는 수술 후에도 약 복용·식사 조절·금주 등 생활습관을 조심해야 한다.

간경변증은 간세포에 손상을 주는 바이러스, 음주, 비만, 약물 등에 의해 상처가 생긴 후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B형 간염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 가장 많고, 알코올성 간경변증, C형 간염 바이러스에 의한 경우가 뒤를 잇고 있다. 과도한 음주도 간경변증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술을 절제하고 정기적으로 바이러스를 체크하면 간경변증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내가 건강해야 진정한 가족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내 몸을 살피지 못해 이식 수술까지 가면 가족이 힘들 수밖에 없다. 더욱이 간염 진단을 받고서도 과음을 일삼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건강한 사람이 자신의 간을 떼어주느라 10시간이 넘는 수술을 견디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건강한 내가 왜 배를 갈라야 하는가…”  간 이식을 결정할 때의 고민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간경변증 뿐 아니라 암 등 다른 병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프면 가족이 고생한다. 간병 문제는 오히려 사치다. 증세에 따라 큰돈이 들고 심리적 고통도 엄청나다. 건강보험이 안 되는 비싼 신약 항암제를 투여하느라 집까지 파는 사람도 많다. 내가 살아도 가족들은 거리로 나 앉아 있다. 지금 폭음, 흡연 등 나쁜 생활습관이 있다면 당장 바꿔야 한다. 유전성이 있으면 정기 검진을 꼭 해야 한다. 내 몸 뿐 아니라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다. 내가 건강해야 가족이 편안하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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