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부대 집단감염, 전문가 경고 무시한 결과?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신속진단키트 경고와 카산드라 콤플렉스

20일 오후 성남 서울공항을 빠져나오는 버스에서 청해부대 장병들이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뉴스1]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는 박제한 고전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소설, 영화, 만화 같은 다양한 영역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살아있는 작품’이다. 아가멤논이 이끄는 그리스군과 프리아모스가 이끄는 트로이군이 부딪히는 전쟁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하여 사랑, 우정, 질투, 탐욕, 용기, 자만, 허영을 그려내는 이야기라 시대의 변화에도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서도 카산드라는 아주 독특하고 비극적인 인물이다. 프리아모스의 딸, 그러니까 트로이의 공주이며 아폴론(태양을 다스리며 동시에 예언하는 능력을 지닌 신)이 사랑해 예언하는 능력을 선물로 받는다. 그러나 카산드라는 아폴론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욕을 느낀 아폴론은 카산드라를 벌한다. 카산드라는 여전히 미래를 정확하게 예언할 수 있지만, 누구도 그 예언을 믿지 않는 저주가 바로 아폴론이 내린 벌이다.

그래서 그리스군이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를 남겨두고 퇴각했을 때, 카산드라는 ‘목마를 성으로 가져오면 트로이가 멸망한다’고 예언하며 목마를 태워버리라고 주장하지만 아버지인 프리아모스부터 평범한 백성까지 누구도 카산드라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트로이인은 목마를 성으로 가져오고 그날 밤 목마에 숨어있던 그리스군 결사대가 성문을 열어 트로이는 멸망한다.

이런 재미있는 신화 덕분에 ‘카산드라 콤플렉스’란 단어가 탄생했다. ‘카산드라 콤플렉스’는 지식인 혹은 전문가가 지속적으로 다가올 재앙을 경고하지만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배척하는 상황을 뜻하는 말로 1930년대 중반 히틀러가 독일 주변을 침략할 때, 윈스턴 처칠이 나치독일의 위험한 야망을 경고했으나 2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는 대부분이 그의 경고를 ‘주정뱅이 전쟁광의 망상’으로 치부한 것이 좋은 사례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 대유행을 맞이한 우리 사회에도 그런 ‘카산드라 콤플렉스’에 해당하는 사건이 적지 않다. 최근 청해부대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도 거기에 해당한다. 301명의 전체 부대원 가운데 80% 이상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오랫동안 좁은 함선에서 함께 생활하는 특성을 간과하고 백신도 접종하지 않은 상태로 파견을 감행한 것이지만 ‘신속진단키트’의 사용도 한몫했다.

신속항원검사와 신속항체검사로 나누어지는 신속진단키트는 최소한 3~4시간이 걸리는 PCR검사와 비교하여 15~30분 만에 결과를 알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정확도가 떨어지고 특히 민감도가 현저히 낮아 예전부터 진단검사의학회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가 사용을 반대했다. 민감도가 낮은 검사는 환자가 아닌 사람을 환자라 오진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환자를 환자가 아니라고 판단해서 방역을 무너뜨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와 정치권에서 신속진단키트의 사용을 말할 때마다 적지 않은 전문가가 나서서 ‘방역을 무너뜨리고 집단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며 경고했다. 필자도 4월 17일 칼럼에서 이를 경고했다가 일부 누리꾼들로부터 격렬한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그렇지만 청해부대는 처음 환자가 발생했을 때 문제의 신속진단키트 가운데 신속항체검사를 사용했고 모두 음성으로 확인되자 섣불리 ‘코로나19가 아닌 감기’라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적절한 방역조치를 취할 시기를 놓치면서 전체 부대원의 80% 이상이 감염되고 몇몇은 폐렴 증상을 보이는 재앙을 맞이했다.

특히 청해부대가 사용한 신속항체검사는 신속진단키트로 일반에 유통하는 신속항원검사보다도 민감도가 낮아서 국내에서는 아예 의료인이 아닌 사람은 구입할 수도 없는 제품이었다. 신속진단키트의 문제를 지적하는 전문가의 경고에 귀를 기울였다면 청해부대에서 코로나19 감염이 발생하는 것 자체를 방지하지는 못해도 80% 넘는 부대원이 감염되는 사태는 막았을 것이다.

하지만 신속진단키트를 찬양하며 많은 전문가의 경고를 무시하던 정부 고위층과 정치인 가운데 진지하게 반성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금도 약국에서는 여전히 신속진단키트를 일반에 판매한다. 물론 꼭 겉으로 그런 반성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 다만 이번 청해부대 집단감염을 통해 드러난 신속진단키트의 문제를 교훈삼아 앞으로는 정부 고위층과 정치인이 ‘카산드라 콤플렉스’에 해당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아울러 일반에 신속진단키트를 판매하는 정책을 재고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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