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혐주의자 드가의 그림이 명화인 까닭

[이성주의 건강편지]

제 1482호 (2021-07-19일자)

우리는 왜 누군가의 장점에 눈감고, 오점만 보는가?

 

‘벨레리 가족’이란 제목의 위 그림을 조금만 유심히 봐도 부부관계가 어떤지, 누가 주도권을 가졌는지, 두 딸 중 누가 엄마의 성격을 닮았고, 누가 아빠를 좀 더 신경 쓰는지 금세 알 수가 있죠?

1834년 오늘(7월 19일), 사실적 구도에 ‘숨은 사실’까지 그렸던 화가 에드가 드가가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드가는 ‘인상파 화가’로 분류되지만, 자신은 사실주의 화가로 불리기를 더 원했다고 합니다. 사실, 드가는 한때 ‘절친’이었던  마네를 비롯한 다른 인상파 화가와는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화가들이 야외에서 풍경화를 그리는 것을 경멸해서 “내가 정부라면 야외에서 풍경화를 그리는 사람들을 감시할 특수부대를 조직할 것”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미술은 스포츠가 아니다(그러기에 화가가 바깥에서만 있어선 안된다)”는 말도….

드가는 아름다운 발레리나를 그린 ‘무희의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발레리나를 통해서 프랑스 근대사회의 모순을 표현했습니다.

파스텔 질감이 생생한, 드가의 대표작 ‘스타(L’Étoile)’는 그림의 각도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는데, 카메라 사진을 참고해서 그림을 그렸다죠? 이 그림을 찬찬히 보면, 왼쪽 커튼 뒤에서 발레리나를 바라보는 신사가 보이죠? 당시 노동자 가정 출신의 10대 발레리나와 후원자의 ‘원조 교제’가 횡행했는데, 이를 담았다고 합니다. 그날 밤을 생각한다면 아름답기보다는, 무섭도록 슬픈 그림이라고 해야 할까요?

드가는 많은 여성을 그렸지만, 여성혐오자로 분류됩니다. 그는 “여자의 수다를 들어주느니, 차라리 울어대는 양떼들과 함께 있는 게 낫다”고 했고, 누드모델이 그림의 코가 자신과 닮지 않았다고 하자, 발가벗은 모델을 그대로 바깥으로 쫓아버렸습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는데, “도대체 아내가 왜 필요한가? 아침에 부스스한 모습으로 깨어서 밤새 작업한 내 그림을 보고 ‘정말 잘 그렸네요!’라는 입에 발린 소리나 하는 것 말고 달리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미술사가들은 드가가 어렸을 때 혼혈 미인인 어머니의 근친상간 장면을 목격했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 이를 묵인한 아버지의 무력감을 본 과거 탓에 여성을 혐오했을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드가는 인종차별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독일에 정보를 팔았던 에스테라지 소령이 유대인 장교 드레퓌스에게 누명을 씌우고, 프랑스인들이 곳곳에서 유대인들을 살해한 ‘드레퓌스 사건’  때 반유대주의의 선봉에 선 탓에 많은 양심적 예술가들과 결별하기도 했지요.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역사를 거스른, 악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의 교양인 대부분은 역사를 모르지도 않는 데도, 드가를 여성혐오주의자나 인종주의자로 경멸하면서 그의 그림을 사장시키지 않습니다. 시대와 미술조류의 아웃사이더로서 근대인의 생활을 냉철하게 화폭에 담은 ‘사회적 명암법’의 화가, 빠른 붓질과 파스텔 기법 등을 통해 인상파와 사실주의를 하나의 그림에 담은 예술가로 기억합니다.

해외의 수많은 예술가, 스포츠선수, 대중스타 등이 만약 우리나라에서 있었다면 윤리적 이유로 사장됐을 겁니다. ‘윤리적 역사주의자’들에게는 매를 맞을 소리이겠지만, 우리는 왜 누군가의 장점이 아무리 크더라도, 오점을 발견하면 꼭 매장을 시켜야 직성이 풀릴까요? 우리가 모든 면에서 윤리적이어서일까요, 아니면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며, 남 눈의 티끌을 비난하고 있는 걸까요, 또는 분석심리학에서 얘기하듯, 우리의 무의식에 억압한 그림자를  타인에게 투사하면서 비난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혹시 남에게 “나의 장점도 봐 달라”고 내심 원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공인이거나, 아니면 영향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장점을 보기를 거부하는 것은 아닐까요? 어리석은 사람들은 남의 장점보다 오점을 먼저 보고, 현자는 남의 장점을 먼저 본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오늘의 음악]

영국의 엘튼 존도 한국에서라면 일찌감치 사장됐을 가수일 겁니다. 괴팍한 성격에 걸핏하면 언론이나 주위 사람들과 싸웠으니까요. 엘튼 존과 키키 디의 유쾌한 노래 ‘Don’t Go Breaking My Heart’입니다. 매니저와의 계약 위반으로 3년 동안 음반을 낼 수 없을 때 공연을 통해서 오히려 음악성을 높이고 대중성을 획득한, 미국 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허무하고도 슬픈 노래 ‘The River’ 공연실황 이어집니다.

  • Don’t Go Breaking My Heart – 엘튼 존 [듣기]
  • The River- 브루스 스프링스틴 [듣기]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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