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 부르는 대한민국 언론들

[허윤정의 의료세상]

1774년 발표된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괴테를 전 유럽에 알리고 18세기 당시 5개 국어로 번역될 만큼 크게 인기를 끌었다. 당시 유럽의 젊은이들에게 소설주인공 베르테르의 복장이 대유행이었고, 곳곳에서 베르테르를 모방한 자살이 유행처럼 번져 전 세계 2000여 명이 모방 자살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6월 21일 A 고등학생의 실종 소식에 온 국민이 안타까움으로 무사 귀환을 기원했다. 그러나 6월 28일 언론에는 “오전에 야산 산책로 인근에서 시신을 발견하고, 극단적 선택을 추정하고 있다”는 기사로 가득했다. 실종 전단 사진이 계속 올라와 안타까움이 배가 되고 있고, 국민들이 큰 충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극단적 선택을 보도하는 일부 언론의 무분별한 대응 행태를 되짚어 보아야 할 것 같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8년 7월 31일 자극적인 자살 보도로 인한 모방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한국기자협회, 중앙자살예방센터와 공동으로 「자살 보도 권고기준 3.0」을 개정하여 발표했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살 보도에는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 둘째, 잘못된 자살 보도는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다. 끝으로 자살 보도 방식을 바꾸면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살 보도 권고기준은 5가지 원칙이 있다. 먼저 기사 제목에 자살이나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 대신 사망, 숨지다 등의 표현을 사용한다. 둘째, 구체적인 자살 방법, 도구, 장소, 동기 등을 보도하지 않는다. 셋째, 자살과 관련된 사진이나 동영상은 모방 자살을 부추길 수 있으므로 유의해서 사용한다. 넷째, 자살을 미화하거나 합리화하지 말고, 자살로 발생하는 부정적인 결과와 자살 예방 정보를 제공한다. 다섯째, 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에는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한다.

자살 보도 권고기준의 원칙을 모두 기억하지 못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자살을 예방하려면 자살 사건을 되도록 보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살 사건을 보도하지 않는 나라들에서는 실제로 자살이 감소한 사례가 보고되고 있고, 가급적 자살 사건은 보도하지 않는 것이 자살 예방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우리의 언론은 어떠한가?

A 고등학생의 경우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어떤 상태로 발견되었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여 보도하면서 두 번째 권고기준을 어기며 보도하는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기사 제목도 자살을 암시할 수 있는 ‘극단적 선택’이라는 단어를 포함하는 보도가 다수이다.

같은 날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여성에게 소변을 본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던 20대 남성 B가 자택 인근 화단에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이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할 것이라 보도되었다. 극단적 선택 역시 자살에 대한 암시가 포함된 보도에 해당한다.
또 의무경찰 아들을 자신이 지휘하는 함정으로 인사발령을 냈다는 의혹을 받은 현직 해경 C 함장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는데, 그는 ‘해경의 명예를 실추해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유서 또한 자살을 예상할 수 있는 보도에 포함된다.

결국 A 고등학생의 사건 이외에도 B, C 등 여러 건의 사망 사고에 대해 자살을 인지할 수 있는 내용의 보도가 쏟아졌다. 무분별한 자살 관련기사 보도가 기사를 읽는 사람들의 자살 관련 인식과 정보탐색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천대 교수 연구에서 자살 보도의 위해성이 확인된 것이다.

미국의 자살 연구학자 필립스가 1948년부터 1968년까지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자살 기사를 분석한 외국 연구도 있다. 이 연구에서 ‘자살 보도량과 자살 뉴스의 1면 보도 여부가 실제 자살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하며 이를 ‘베르테르 효과’라 불렀다. 이에 반대 개념이 ‘파파게노 효과’인데 자살에 대한 언론 보도를 자제함으로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효과를 말한다.

자살 예방을 강조하는 이유는 한국이 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자살률은 26.9명이었고, 최근 OECD 자살률 평균이 11.2명인데 한국은 23.0명으로 두 배 이상 높았다. 따라서 한국에서 자살 예방을 위한 언론 보도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하다. 물론 2004년 권고기준이 처음 생긴 뒤에 2013년과 2018년 두 차례 개정을 거쳐 지금까지 언론의 보도 태도는 과거보다 개선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A 고등학생 경우는 처음에 실종 사건으로 수색을 위해 사진이 보도되었다. 그러나 사망 확인으로 자살을 인식할 수 있는 내용이 보도될 때는 보다 세심한 검토가 필요했지만, 역설적으로 더 심각한 보도 경쟁으로 이어진 경향이 나타나 안타깝다.

세계보건기구는 1968년 자살을 ‘스스로 품은 의지를 통해 자기 생명을 해쳐서 죽음이라는 결과에 이르는 자멸 행위’로 정의했다. 자살한 사람의 주변인들은 심각한 정신적 손상을 입게 된다. 가족 중에 자살 사망자가 발생하면 가족이 마음의 병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결국 자살 시도와 자살 사망은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친지, 이웃,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의 정신 건강을 심각하게 훼손하게 되는 행위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1인 미디어나 SNS 영향력의 증가 등 공중파를 비롯한 다양한 언론의 역할이 자살 보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살률 1위의 오명과 함께 코로나 블루의 위험성이 경고되는 대한민국의 언론이 더 신중하고 더 세심하게 관련 보도의 감수성을 갖추어야 할 때다.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247년 전 25살의 나이에 첫 소설을 출간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자살률 1위의 대한민국에서 언론을 통해 재소환되는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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