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당했는데, 소송은 부담스럽다면…

[박창범의 닥터To닥터] 대체적 분쟁해결절차

최근 의료기술이 급격히 발전함에 따라 이전에는 치료할 엄두도 못하던 병들도 완치하거나 생명연장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료기술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급격한 의료사고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1999년 미국에선 매년 환자 약 4만4000~9만8000여명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의료과실로 목숨을 잃는다고 추산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약 4000~2만7000여명이 의료사고로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의료 민사소송건수도 1989년 69건이었던 것이 2012년 1008건, 2017년 1885건(1심기준) 등 해마다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의료에 대한 국민의 의식수준이 높아지고 점점 더 어렵고 복잡한 의료기술이 의료현장에 속속 도입됨에 따라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의료사고의 대부분이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료사고가 의료소송까지 가면 소송과정에서 환자와 의사 모두 변호사고용비용, 의무기록감정비용, 법원 재판비용 등 많은 비용이 들 뿐 아니라 1심 재판에만 평균 2.6년, 2심판결에는 평균 1.3년이 걸리는 등 매우 긴 소송기간으로 2차적인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1심의 판결에 불복하여 고등법원항소, 대법원상고까지 이루어지면 많은 비용과 시간경과에 양측 모두 고통을 받게된다. 특히 의료소송에서 원인과 결과에 고도의 개연성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고, 환자측 과실상계 비율을 높이고 있기 때문에 이기더라도 적은 위자료밖에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한 의료사고의 특수성이 피해자의 가슴을 태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의료사고를 적은 비용으로 신속히 해결하는 방법으로 대체적 분쟁해결절차(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ADR)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대체적 분쟁해결기관이 바로 한국소비자원과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하 의료중재원)이다.

한국소비자원은 흔히 공산품이나 일반서비스에 대한 민원상담 및 피해규제, 보상만을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의료사고 중재도 한다.

의료사고를 당한 소비자(피해자, 환자)가 소비자원에 인터넷, 전화 및 우편으로 피해구제를 신청하면 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서 분쟁조정결정을 내리고 이를 당사자에게 통지한다. 당사자는 통지를 받은 날부터 15일 이내 분쟁조정결정내용에 대하여 수락여부를 통보하여야 하며, 조정결정을 수락하면 조정위원회는 조정조서를 작성한다. 이때 작성된 조정조서는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 주의할 것은 한국소비자원 조정위원회의 조정조서에 대하여 ‘의사표시가 없는 경우’ ‘수락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만약 조정결정을 수락하지 않으면 의료소송과 같은 다른 절차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의료중재원은 의료분쟁이 발생하였을 때 중립적으로 신속, 공정하게 판정하고 적정한 배상이 이루어질 수 있게 2012년 설립된 국가기관이다. 사고와 관련된 분쟁당사자는 중재원을 방문하거나 전화 또는 인터넷을 통해 상담을 받은 후 조정 또는 중재신청을 하게 된다. 분쟁 당사자(환자측)가 조정신청을 하면 피신청인(병원측)에게 조정신청서를 송달하여 피신청인이 조정에 응하고자 하는 의사를 통지하면 조정절차가 시작된다.

주의할 것은 소비자원과 달리 피신청인이 조정신청서를 송달받고 14일 이내 ‘의사통지를 하지 않으면’ ‘조정신청이 각하’된다. 이런 경우 의료소송이나 한국소비자원 의료분쟁절차 등의 다른 절차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2016년부터는 조정신청대상 의료사고가 사망 또는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그리고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장애인 중 장애 정도가 중증에 대항하는 경우 ‘지체없이’ 조정절차를 개시하도록 하였다.

만약 양측 모두 조정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알리면, 조정부에서는 90일 이내 조정결정을 하고, 조정결정서를 양측에 송달한다.

만약 조정절차 중 쌍방이 합의해 조정조서가 작성되었거나 조정결정서에 대하여 쌍방이 동의한 경우나 동의한 것으로 간주되는 경우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가지고 그렇지 않으면 조정이 불성립한다.

만약 조정결정을 수락하지 않으면 의료소송과 같은 다른 절차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만약 양측에서 의료중재원의 결정에 따르기로, 즉 ‘중재절차’에 들어가기로 서면으로 합의하면 의료중재원은 의료감정을 통해 중재판정을 내린다. 이러한 중재판정은 재판상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며 단심으로 종결되고 불복할 수 없다. 하지만 신청인(환자, 보호자)은 조정절차 진행 중에도 피신청인(의료인)과 합의할 수 있고 만약 합의한 경우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을 지닌다.

대체적 분쟁해결절차는 심각한 피해를 입은 환자들과 의료진이 의료소송으로 갔을 때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고 의료사고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 정부에서 마련한 방법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대체적 분쟁해결절차에 들어서도 의료진에 대한 형사적 책임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은 남아 있고, 의료중재원의 강제 조정절차 자동개시 결정에 대하여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이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더 필요해 보인다.

    박창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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