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리는, 놀랍고 아름다운 키메라는?

[김명신의 유전자이야기] 유전자와 키메라

‘유전자 검사’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먼저 드는지 설문으로 조사한 적이 있다. 그동안 방영된 많은 한국 드라마 덕분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친자감별’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지금도 인터넷 검색을 하면 친자검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친자감별에 이용되는 DNA 부위도 대중들에게 많이 소개되었다.

친자감별에 이용되는 DNA 부위는 STR(Short tandem repeat)인데 이 부위의 염기서열 반복 수가 개인별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여러 STR의 결과를 조합하면 각 사람을 구별해 낼 수 있다. 그러면 STR이 똑같은 사람은 없을까? 있다. 일란성 쌍둥이는 하나의 수정란이 분열하는 과정에서 둘로 나뉘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똑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서 STR도 동일하다.

그러면 정반대로 한 사람에게 두 명 이상의 유전자가 섞여 있을 수 있을까? 한 사람에게 두 명 이상의 유전자가 혼재되어 있는 경우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지만 실제로는 존재한다. 생물학과 유전학에서는 이를 ‘키메라’라고 부른다.

원래 키메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로 머리와 몸은 불을 뿜는 사자의 모습을, 등에는 염소의 머리가 달려있고 뱀의 머리가 붙은 꼬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자의 입에서 나오는 화염과 포효는 천둥 번개 같고, 단도 같은 발톱들로 희생자들을 무자비하게 베며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는 것도 가능했다니 꽤 무서운 동물이겠다.

이렇게 여러 동물이 하나로 뭉쳐 있다는 특징 때문에 하나의 개체에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진 세포가 섞여 있는 현상을 ‘키메라’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난 20년 동안 우연히 발견돼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 세 가지 유명한 ‘키메라’ 관련 언론 보도가 있다.

모두 친자감별 결과가 의외로 나와서 면밀히 조사하게 된 경우였는데, 첫 번째는 신장 기증자를 찾기 위해 가족의 DNA 검사를 시행한 카렌(Karen)이라는 여성으로, 세 아들 중 두 명이 친자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은 사건이다. 두 번째는 미국 워싱턴 주에서 리디아(Lydia)라는 여성의 아이들이 DNA 검사 결과 자녀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기 혐의로 기소된 것이고, 세 번째는 부모가 모두 A형인 부부의 자녀가 AB 혈액형으로 나왔고 친자 확인 검사 결과도 친자가 아닌 것으로 나온 경우였다. 결과적으로는 세 명 모두 키메라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고 신체의 다양한 부위에서 유전자를 추출하여 시행한 추가 분석을 통하여 모두 친자임이 확인됐다.

이런 현상은 생물학과 유전학에서 오랫동안 연구됐다. 이렇게 한 사람에게 두 사람 이상의 유전자가 발견되는 키메라가 생기는 과정은 다음의 세 가지 메커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둘은 임신 기간에 세포 이동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태아 세포와 모체 세포는 태반 장벽을 넘어 이동할 수 있다. 따라서 모체에게서는 태아의 유전자가, 태아에게서는 모체의 유전자가 관찰될 수 있는데, 이를 미세 키메라(Microchimeras)라고 한다. 이렇게 모체로 이동한 태아의 세포가 출산 후 27년 뒤까지 남아있었다는 보고가 있다. 또한 태반이 융합된 이란성 쌍둥이 간에 혈액 세포가 태반을 통해 이동할 수 있는데 이러한 현상에 의해 생기는 것을 쌍둥이 키메라(Twin chimera)라고 한다. 세 번째는 두 개의 접합체가 초기 배아 단계에서 융합하여 융합 키메라(Fusion chimera)를 형성하는 것으로 이는 매우 드문 경우에 해당된다. 자료를 찾다보니 2017년에 MBC 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그남자의 정체>편에 나왔다고 한다.

키메라의 증후는 신체 비대칭이나 고르지 못한 피부 패턴, 서로 다른 색의 눈 같은 것이 있는데 대부분의 키메라는 일상적으로는 구별되지 않으며 특히 두 접합체가 같은 성별인 경우는 정상적인 표현형을 갖기 때문에 알 수 없다. 두 접합체의 성별이 다를 때는 좀 특별해서 여성 표현형을 나타내는 XX와 남성 표현형을 나타내는 XY의 비율에 따라 여성, 남성 또는 자웅동체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사례를 정리한 보고에 따르면 46,XX/46,XY 핵형을 가진 50명 중 17명은 건강한 사람이었고, 4명은 선천적 이상, 1명은 고르지 못한 피부를 보였으며 28명은 자웅동체 또는 성 발달의 이상이 있었다고 한다.

키메라는 처음 발견된 이후 70년 동안 꾸준히 연구되었고 그 개념도 점차 확실해지고 있다. 유전학자들 중 일부는 키메라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것보다 더 많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기존에 알고 있는 개인 식별 유전자 분석의 의미와 그 영향이 앞으로 조금씩 변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말한 키메라 외에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키메라가 있다. 혹자는 1980년대에 유럽에서 활동한 한국의 팝페라 가수 키메라를 떠올릴 수도 있다. 잊을 수 없는 멋진 시그니쳐 화장과 독창적인 창법으로 록 리듬으로 편곡된 오페라를 불렀었던 기억이 난다. 필자도 ‘더 로스트 오페라’ 앨범을 호기심에 접하게 되고 이후 많이 듣기도 하였는데 그 키메라는 이 키메라는 아니고 가수의 성씨인 ‘김’과 ‘오페라’를 합쳐서 만든 단어라고 한다.

이야기가 곁길로 갔는데, 필자가 좋아하는 키메라는 조혈모세포이식 후 공여자의 세포가 환자에게 얼마나 잘 생착됐는지를 보는 ‘키메리즘 검사’이다. 조혈모세포이식은 가족 또는 타인으로부터 세포를 기증받아 환자에 주입하는 것으로 백혈병을 포함한 다양한 질환에 매우 유용한 완치법이다. 형제, 부모 또는 타인으로부터 받은 조혈모세포가 환자 골수에 자리를 잡고 정상적인 혈액세포를 만들어내는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할 때 우리는 환자의 혈액 내에서 기증 공여자의 유전자를 검출하는 멋진 키메라를 만날 수 있다.

이 키메리즘 검사도 개인식별 지표인 STR을 분석하여 이루어지는데, 판독 후 공여자의 유전자 비율이 95% 이상인 완전 키메리즘(Complete chimerism)으로 결과를 낼 때는 치료가 잘 되었음을 의미하기에 무척 만족스럽고, 반대로 공여자 유전자 비율이 낮아질 때는 빨리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분주한 마음이 돼 주치의에게 결과를 알려주곤 한다.

이렇게 생명을 살리는 아름다운 ‘키메라’를 만드는 치료를 개발한 의학자들과 우리나라에서 이를 처음 성공시킨 김춘추 명예교수님, 그리고 꾸준히 이식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최근 9000례를 달성한 가톨릭혈액병원에 축하와 감사를 드린다.

에디터 kormedimd@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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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 댓글
  1. 재미있고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다음 연재가 기대됩니다 ♡

  2. ljw

    재밌게 읽었습니다 ^^

  3. ABCDEFG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이식 9000례! 진단검사의학과의 노력이 뒷받침 되어 이뤄진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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