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닥터] 암환자 수술 뒤 삶 걱정하는 ‘로봇손’

⑪서울성모병원 비뇨의학과 홍성후 교수

“개복수술을 받느니, 병원 치료를 포기하겠습니다.”

2016년 12월 부산에서 온 60세 신장암 환자는 단호했다. 커진 암의 부작용으로 대정맥에 혈전이 생긴 환자였다. 이 상태는 그냥 놔두면 30%가 1년 내 떨어져나간 혈전이 혈관을 막아 생명을 잃는다. 비뇨의학과, 혈관외과, 흉부외과 의사가 함께 참여하는 개복수술로 암과 대정맥 혈전을 함께 제거해야 하지만, 수술 중에도 혈전이 떨어져 환자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그런데도 환자는 복강경 수술이나 로봇수술이라야 수술대에 눕겠다고 했다.

“이론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고, 내가 대정맥에 연결된 신장정맥의 혈전을 제거하는 수술은 숱하게 했는데…. 환자를 죽게 놔둘 수는 없지 않은가?”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홍성후 교수(50)는 관련 논문과 영상을 검색하고 머릿속으로 수술설계를 하느라 3주 동안 밤잠을 거의 못 잤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관련 의사들에게 대기해달라고 부탁한 다음 수술실에 들어갔고, 가슴 졸이며 암과 혈전을 떼어내는데 성공했다. 개복수술을 받으면 최소 10일을 입원해야 하지만, 환자는 수술 하루 뒤 걸어 다녔고 나흘 만에 퇴원했다. 홍 교수는 대정맥에 혈전이 생긴 신장암 환자 15명을 이처럼 복강경 또는 로봇으로 수술해서 모두 성공했다.

홍 교수는 2017년 대한비뇨기학회 학술대회에서 이 수술에 대한 논문으로 학술상을 받았다. 수술 영상을 발표한 확회장에서는 경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 의사는 “심장이 떨려서 저 수술을 어떻게 햬?”라고 말했다. 홍 교수가 그해 미국 UCLA 병원에 전립선암 국소치료를 연구하러 갔을 때에는 그곳 의사들이 처음에는 ‘동양인 의사가 우리에게 배우러 왔겠지’하는 태도를 보이다가, 홍 교수의 수술 동영상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하더니, 자신들의 수술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뛰어와서 자문을 요청했다.

홍 교수는 이처럼 신장암 전립선암 등 비뇨기암을 복강경 또는 로봇으로 수술하는 분야에서 새 치료법을 잇따라 개발하고, SCI급 국제학술지에 18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해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의사다. 특히 신장의 기능을 살리기 위한 부분절제술과 난치성 비뇨기암의 수술 실력은 국내외 비뇨의학계에 정평이 나있다.

홍 교수는 가톨릭 의대 본과 3학년 실습 때 온갖 수술도구를 이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수술하는 비뇨의학에 마음을 빼앗겼다. 특히 우리나라 비뇨기 복강경 수술의 선구자였던 황태곤 교수의 카리스마에 반했고 인턴 때 신장, 방광, 요관, 전립선, 음경, 고환 등 온갖 장기를 치료하는 선배들의 모습에 이끌려 비뇨의학을 평생의 전공으로 삼았다. 전공의 때 황태곤 교수가 비뇨기 복강경을 도입해 시술하는 것을 보다가 군의관 근무를 마치고 병원에 전임의로 복귀했더니, 스승은 복강경으로 전국에서 몰려오는 환자들을 치료하며 다른 병원의 의사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홍 교수는 스승의 수술을 보조하면서 매일 밤, 4~6시간 걸린 복강경 수술을 10~20분 영상으로 편집하며 수술 전체 과정과 중요 포인트를 외우다시피 하게 됐다.

홍 교수는 각종 학회에서 복강경 수술을 소개하며 장점을 발표했다. 상당수 원로, 중견의사들은 “암 수술은 최대한 조직을 잘라내 사람의 생명을 살려야 하지, 흉터나 회복시간 단축이 뭐가 중요하냐?”고 질책했지만, 환자의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암도 더 잘 극복된다고 믿고 복강경 수술 분야를 개척해 나갔다.

홍 교수는 2008년 신장암 수술시간을 20여 분에서 15분 이내로 줄이는 ‘집게를 이용한 연속 봉합술’을 개발, 국내외 학회와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신장암 수술 때 혈관덩어리인 신장의 암 부위를 잘라내면 피가 분수처럼 쏟아난다. 수술을 30분 내에 끝내지 않으면 신장에 혈액이 통하지 않아 신장 조직이 괴사하고 기능에 손상이 온다. 몇 분이라도 더 빨리 수술하는 것이 절대적이라는 뜻이다. 홍 교수는 신장동맥을 집게로 짚어 신장으로 가는 피 흐름을 막아놓고 암 부위를 잘라낸 다음, 긴 실로 한꺼번에 꿰매고 봉합 부분을 최소화하는 수술법으로 최소 시간에 신장의 최대 부분을 남기도록 했다.

홍 교수는 2008년 UCLA병원으로 연수를 떠나 전립선암 전이의 기초연구를 하다가 강남성모병원이 서울성모병원으로 이름을 바꿔 증축개원을 하자 급히 귀국해야만 했다. 지상 22층, 지하 6층의 최첨단 병원에 로봇수술실이 들어선 것을 보고, 화색이 돌았던 얼굴은 스승 황태곤 교수의 말을 듣고 곧바로 사색이 됐다.

“홍 교수도 앞으로 로봇수술을 해야 하는데, 다른 교수들은 3개월 전에 수술교육을 다 받았네. 홍 교수만을 위해 연수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없고…”

복강경 수술과 원리가 비슷하니, 혼자 로봇수술법을 배워 수술하라는 뜻이었다. 당혹스러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홍 교수는 낮엔 환자를 보면서 밤마다 인터넷을 통해서 로봇구조와 수술과정을 익히고는 로봇수술을 하고 있던 의사들을 일일이 찾아가 부탁했다. “뒤늦게 연습을 해야 하니까, 수술 끝나고 나가실 때 전원 끄지 마세요.”

로봇수술은 조종실에서 의사가 10배로 확대된 입체 영상을 보면서 핸들을 작동하면, 수술실의 로봇 팔이 움직여 환부를 수술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핸들과 로봇팔의 일치감이 극대화해야 자연스런 수술이 가능하다. 홍 교수는 한 달 남짓 매일 다른 의사가 수술을 끝내면 30분~1시간 로봇으로 고리를 옮기는 연습, 매듭을 만드는 연습을 했고 손과 핸들, 로봇팔이 함께 자연스레 움직이자 ‘극한과제’에 도전했다. 종이를 엄지손톱 크기로 잘라 로봇팔 앞에 두고, 조종실로 뛰어가 핸들을 작동해 종이학을 접었다. 처음에는 20분, 다음에는 15분이 걸렸다. 손톱 크기의 종이를 자유자재로 접어 실제 좁쌀 크기인 종이학을 만드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홍 교수는 이렇게 독학으로 로봇수술을 배워 개복수술의 대상이 아니면서, 암이 신장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가까이에 혈관이 있어 복강경 수술은 위험한, 50대 신장암 환자를 로봇으로 수술했다. 당시 다른 의사들이 3~4시간 걸리는 수술을 2시간 만에 끝내자, 병원에서는 “역시!”라는 말이 퍼져갔다. 로봇수술 전에도 ‘로봇 손’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수술이 정교했는데, 로봇손에 로봇 팔이 더해진 것이었다.

홍 교수는 복강경 수술에서는 선도(先導) 주자였지만, 로봇수술에서는 후발주자였다. 로봇수술은 2005년 세브란스병원 나군호 교수(현 네이버 헬스케어연구소장)가 국내 첫 도입했고 강남세브란스병원, 고려대 안암병원,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서울아산병원 등에서 전립선암을 중심으로 번져나갔다.

홍 교수는 로봇수술을 하면서도 한동안은 복강경수술을 더 많이 했다. 비용 측면에서 로봇수술이 환자에게 훨씬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자신의 복강경 수술이 다른 의사의 로봇수술보다 더 세밀하고 정확하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복강경 수술을 아무리 잘해도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로봇이 처리할 수 있다는 걸 하나둘씩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한 해 500여 명 수술 가운데 350명 안팎을 로봇으로 수술한다.

홍 교수의 좌우명은 ‘독수리의 눈, 사자의 마음, 여자의 손’이다.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환자 상태를 알아내서, 사자의 결단력으로 판단을 내리고, 실제로 수술은 여인의 손 같은 부드러움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암만 도려내고 주변의 정상 조직은 최대한 살려야 생존기간이 길어지고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최상의 판단력과 결단력을 위해 수술 전 환자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시뮬레이션을 하느라 밤늦게까지 연구실을 지키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수술실에 들어가려고 애쓴다.

홍 교수는 “남성에게서 생기는 10대 암 가운데 3개가 비뇨기암이고 발병률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면서 “조기에 발견하면 대부분 완치될 수 있지만, 전이된 상태에서 발견되면 생존율이 뚝 떨어지므로 40대 이후엔 복부 초음파검사와 전립선항원(PSA) 검사를 통해서 조기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수술법이 발전하고 좋은 약들이 계속 나와서 예전에 비해서 치료율이 올라가고 있으므로, 암이 진행됐다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홍 교수는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김미소 교수와 함께 미국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의 로버트 모처 교수가 주관한 표적치료제와 면역항암제의 병용요법에 대한 글로벌 국제임상시험에 참여하고 있다.

홍 교수는 또 환자의 재발을 예방하고 대처하기 위해서 AI 관련 연구도 이끌고 있다.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고성제 정승원 교수, 은평성모병원 최문혁 교수 등과 신장암 환자의 영상 5만장을 AI 학습용 데이터 세트로 구축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정부 과제로 ‘AI 진단 예후 예측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신장암 수술 후 재발 확률 예축 프로그램’을 개발, 《JMIR MEDICAL INFORMATICS》에 발표하기도 했다.

홍 교수는 매주 10명을 수술하고, 250명 가까이 진료한다.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가급적 최선을 다해 궁금증을 풀어주려고 하지만, 조금만 오래 설명하면 진료실 밖 환자 대기시간이 길어져서 그럴 수 없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조안 데스몬드와 래니 코플랜드가 지은 《진료시간 3분 30분처럼 쓰기》를 밑줄 그어가며 읽고, 환자 상황별로 시간을 조절해서 설명하려고 애쓰지만, 그래도 만족하지 못할 환자가 있을 것이기에…. 그러나 인터넷에서 환자의 평가를 검색하면 세심하고 친절하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홍 교수에게는 환자의 목소리가 가장 큰 기쁨이다. “노랗던 하늘이 파랗게 보여요,” “하나 남은 신장을 남겨줘 투석 없이 살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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