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블록버스터급 신약’ 탄생할 수 있을까?

[사진=OlgaMiltsova/gettyimagesbank]
국내에서 생산되는 의약품의 99%는 제네릭(카피약)이다. 국내 제약사들이 선진 시장에 진입해 글로벌 빅파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블록버스터급 혁신신약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 같은 국내 혁신신약이 지금까지 탄생하지 못한 배경은 무엇일까? 또한, 글로벌 시장에 내놓은 신약이 큰 수익으로 이어지려면 어떠한 전략이 필요할까?

지난 2003년 국내 신약으로는 처음으로 LG화학의 항생제 ‘팩티브’가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시판 허가를 받았다. 이는 우리나라가 제약 분야의 선진 대열에 합류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란 기대감을 모았으나, 그 실적은 저조했다. 또한,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에야 두 번째로 FDA의 허가를 받은 국내 신약이 탄생했다. 2014년에는 동아ST의 항생제인 ‘시벡스트로’, 2016년에는 SK케미칼의 혈우병치료제인 ‘앱스틸라’, 2019년에는 SK바이오팜의 수면장애치료제인 ‘수노시’가 국내 신약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다행히 글로벌 제약 시장의 최근 분위기가 나쁘지 않아, 국내 제약기업들은 앞으로 더 많은 진출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처방약 시장 규모는 2026년 16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처방약 시장의 42%는 로슈, 존슨&존스, 노바티스 등 상위 10개 글로벌 제약사들이 점유하고 있지만 오는 2026년에는 이들의 점유율이 36%로 하락하고, 그 자리를 혁신 중소기업들이 차지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난 2020년 한 해 동안 FDA가 허가한 약물은 52개다. 이 중 26개(52%)는 중소기업이 신청한 신약이며, 이 중 19개는 최초 등단기업이 탄생시켰다. 국내 제약사들은 글로벌 빅파마들과 비교하면 아직 중소기업의 위상을 갖는다는 점에서 이러한 제약 시장의 변화는 국내 제약사들의 진출 기회가 많아질 것이란 점을 시사한다.

정부 지원, 초기 연구개발에 집중…후기 임상 지원 필요

그런데 블록버스터급 혁신신약을 만들려면 우선 정부의 지원과 시장 현실 사이의 괴리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연매출 1조 원 이상의 글로벌 신약개발을 목표로, 국가신약개발사업단을 발족했다. 그리고 올해부터 오는 2030년까지 10년간 국비 1조 4747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해당 지원금은 후보물질 발굴과 전임상, 초기임상 등에 집중된다.

문제는 신약개발의 핵심이 ‘후기 임상’에 있다는 점이다.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KIMCo) 허경화 대표는 26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프레스 웨비나를 통해 “후기 개발로 갈수록 대규모 자본과 긴 개발 기간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후기 임상 개발에 대한 국가정책 자금 투입이 제한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임상시험은 10년이 넘는 기간과 큰 자본을 필요로 한다”며 “1상에서 2상, 2상에서 3상으로 갈수록 성공 확률이 떨어지는 죽음의 계곡을 넘어야 하며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기 때문에 더 많은 자금과 더 좋은 파이프라인을 발굴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9년 미국 블룸버그가 발표한 바이오산업 분야 글로벌 혁신지표에서 우리나라는 ‘개발효율성’에서 15위, 생산성에서 18위로 해당 지표들이 낮은 순위를 보였다. 개발 효율성이 낮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허경화 대표는 “우리나라는 기초 연구개발과 초기단계 기술수출이 강점으로 꼽히나, 논문이나 특허 등의 중간 산출물에서 임상시험 승인, 신약 허가 등의 최종 산출물로 이어지는 단계는 약하다”며 “개발효율성 1~3위를 차지한 아일랜드, 미국, 스위스 등은 ‘비지니스를 위한 과학(science for business)’, 즉 사업화를 기반으로 한 연구를 진행한다는 차이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개발 효율성은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현재 정부의 R&D 지원은 기초연구와 초기개발 단계에 집중돼 있고, 3상 임상 등에 대한 투자가 거의 없다. 투자 규모도 제한적이다. 제약바이오산업계가 국내 상장기업 113곳의 R&D에 투자하는 금액은 2조 7000억 원이다. 스위스 제약기업인 로슈 한 곳에 투자되는 비용만 1조 6000억 원에 달한다는 것을 보면, 투자 규모가 매우 작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후기 임상에 적극 투자하는 패러다임으로 변화가 일어나려면, 초대형 펀드인 ‘메가펀드’가 필요하다는 게 허경화 대표의 설명이다. 정부가 대규모 자본을 조달해 마중물 역할을 하고, 공공투자 비율을 높여 민간 투자를 유도해 메가펀드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 미국의 경우 블랙스톤(Blackstone) 민간펀드를 통해 제약사 파이프라인 임상 3상에 50% 이상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각자도생으론 한계…컨소시엄 지원 방식 구축해야

블록버스터급 혁신신약을 만들기 위해 투자금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혁신신약 파이프라인에서 국가대표 후보를 선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초기 연구개발단계에 집중지원이 이뤄진 덕분에 혁신신약 파이프라인이 지난 3월 기준 919개에 도달하는 양적 증가를 보였다. 여기에 질적 성장까지 이루려면 국가대표 후보군을 선정해야 한다.

그러려면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이 필요하다. 유럽연합(EU)이 유럽제약산업협회(EFPIA)와 공동출자한 IMI 모델처럼 민관협력 파트너십(PPP)을 맺어 정부가 현금 펀딩을 제공하는 동안, 제약사들은 R&D 인력과 장비 등 현물을 출자하고, 병원, 대학교, 연구기관 등은 컨소시엄을 형성해 R&D 효율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자도생을 하기엔 국내 제약사들의 역량이 글로벌 제약사 대비 아직 부족하다.

허경화 대표는 혁신신약의 탄생을 흥행영화의 탄생과 비교했다. 영화도 제작기간이 길고 자금조달 어려우며, 흥행을 장담할 수 없는 리스크가 있다. 하지만 프로젝트 기반의 전문가 그룹이 집합해 리스트를 분산하고 효율성과 성공률을 높인다. 신약 개발도 이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전문가와 투자자들이 협업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운영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리스크를 분산하고 개발 효율성은 높일 수 있다.

한국 영화 ‘기생충’이 지난해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듯, 제약바이오업계도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선발하고 이를 집중 지원하면 블록버스터급 혁신신약이 탄생하는 순간까지 완주할 수 있을 것이다.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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