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닥터] 닥터쇼핑 환자에도 정성…귀수술 ‘젊은 대가’

⑩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귀질환 문일준 교수

지난 4월말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의 이비인후과 진료실. 문일준 교수(44)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민준(가명)의 고사리 손에 학용품 세트를 쥐어줬다. 민준은 삼성서울병원이 삼성전자의 후원을 받아 저소득 청각장애 아이에게 ‘소리의 세계’를 선물하는 ‘삼성인공달팽이관지원사업’의 수혜를 받은 아이였다.

코로나19 거리두기 탓에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 20명에게 택배로 학용품을 선물해야했지만, 민준에겐 직접 선물을 전했다. 문 교수는 밝게 웃으며 또르르 감사의 말을 전하는 민준의 얼굴을 보면서 6년 4개월 전 수술실을 떠올렸다. 민준은 문 교수가 혼자서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한 첫 환자였다.

2015년 12월 말 문 교수가 한 돌배기 민준의 수술을 마무리할 무렵, 스승 홍성화 교수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어? 벌써 거의 다 했네. 좀 더 일찍 왔어야 했나?”

홍 교수는 당시 귀 질환의 국내 최고 명의로 전국에서 몰려오는 난청 환자에게 인공달팽이관 이식 수술을 해왔지만, 삼성창원병원 원장으로 발령받아 떠나야만 했다. 그는 6개월 동안 애제자인 문 교수와 함께 수술하며 환자의 온갖 경우별 수술노하우를 전수했다. 그리고 그날, 문 교수가 수술을 집도한 첫날, 스승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쯤 수술을 본격 시작할 줄 알고 왔는데, 놀라워, 이제 내가 없어도 되겠군.” 스승은 스마트 폰으로 제자의 수술 장면을 촬영하더니, 필름을 인화해서 액자에 담아서 선물했다.

문일준 교수의 인공달팽이 수술 장면. 스승 홍성화 교수가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인화해 액자에 담아 선물했다.

스승은 이듬해 2월 창원으로 떠나며 제자에게 진짜 해골을 선물했다. 귀의 해부학적 지식을 외우다시피 마음에 담으라는 뜻이 담겼다. “문 교수도 나중에 애제자에게 이 해골을 물려줬으면 좋겠네.”

문 교수는 스승의 바람대로 귀 분야 국내 최고를 넘어 세계적 의사로 성장하고 있다. 그는 인공달팽이관 수술에서도 명성을 얻고 있지만, 환자의 귓구멍으로 내시경 장비를 넣어서 귓병을 치료하는 분야에서 독보적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무엇보다 192㎝의 훤칠한 키에 어울리지 않게, 세심하고 따뜻하게 환자의 손을 잡아주는 ‘마음도 잘생긴 의사’로 환자 보호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있다.

문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할 무렵 정형외과를 희망 1순위로 삼았지만, 인턴 시작지인 정형외과에서 군기 잡는 분위기에 질렸다가, 다음 달 부드러운 전공의 선배들이 유혹하는 이비인후과로 진로를 결정했다. 그러나 이비인후과는 전공의들이 기를 펼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교수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시에는 세부전공도 교수들이 정하는 대로 정해졌다.

문 교수는 전공의 1년차 때 귀 치료 분야의 대가였던 김종선 교수(2019년 작고)가 인공달팽이관수술을 통해 아기의 삶을 바꾸는 것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특수학교에 가야 할 아이가 일반 초등학교에 갈 수 있다니, 이게 내 길이다.’ 그러나 전공의 2, 3년차 때 석사 학위는 교수들이 지정한 대로, 성명훈 교수 아래에서 두경부 종양에 관한 논문으로 받아야 했다. 전공의 4년차 때 시작한 박사 학위 논문은 ‘코 명의’ 민양기 교수 밑에서 써야만 했다. 문 교수는 군의관을 마치고 서울대병원으로 돌아와 민 교수 밑에서 코 분야 전임의로 근무해야 했다.

스승 민양기 교수는 코 치료와 연구의 대가이면서도 보다 많은 과학자들이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던 학자였다. 민 교수는 《영문 의학논문 작성 매뉴얼》, 《영문 과학논문 작성 매뉴얼》 등의 책을 펴냈고, 전국에서 영어 논문 작성에 대한 강의를 했다. 문 교수는 스승의 강의 자료를 만들면서 자연스레 논문 작성법을 외우다시피 했다. 또 매주 4, 5명을 내시경으로 수술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큰 자산이 될 줄은 그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2010년 이비인후과 주임교수였던 이철희 교수(현 중앙대학교광명병원장)가 문 교수를 불러서 “삼성서울병원으로 가서 홍성화 교수를 도와드려라”고 지시했다. 그때만 해도 염원했던 귀 분야를 다시 맡게 될 줄은 몰랐지만, 홍 교수에게 첫 인사를 할 때 “앞으로 귀 분야를 맡아야겠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삼성서울병원에서 귀 분야 세부전공 의사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이철희 교수가 “1년 동안 코 분야 전임의를 했는데, 재목이 괜찮으니 키워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추천했다고 했다.

문 교수는 1년 동안 연구 강사를 하면서 민양기 교수에게서 배운 논문작성법을 무기로, 삼성서울병원의 풍부한 수술실적 자료에 대한 논문을 쓰고 또 썼다. 이듬해 임상조교수가 돼 홍 교수로부터 귀 수술의 ABC부터 모든 것을 다시 배웠다.

2011년 이종철 삼성서울병원장(현 창원보건소장)이 “전임교원 임명 전에 인재를 뽑아서 연수를 보낸 다음 교수가 되면 그대로 적용케 하자”는 취지로 ‘글로벌 인재 양성제도’를 도입했을 때, 지원자 12명 중 1등으로 뽑혀서 미국 워싱턴 대 메릴 블뢰델 청각연구센터로 연수를 떠났다. 스승 홍성화 교수의 붕우로 인공달팽이수술과 심리음향학의 대가였던 제이 루빈스타인 교수 아래에서 수술 전후의 난청 환자를 영어로 상담하며 10여 편의 논문을 쓰고 귀국했지만, 삶의 계획이 청사진과 어긋났다. 새로 임명된 송재훈 병원장이 “임상조교수 1년을 더 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라”고 전임교원 임용에 탈락시켰던 것.

이것도 큰 디딤돌이 됐다. 문 교수는 잠시 실의에 빠졌지만, ‘자신만의 영역’을 고민하던 중, 연수 때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미국이비인후과학회(AAO)에서 이탈리아 모데나 대학교 리비오 프레스티 교수 팀이 귀 내시경수술에 대해 시연한 것이 떠올랐다. 서울대병원에서 코 내시경수술을 하지 않았으면 의미도 모르고 지나쳤을 수 있었겠지만, 문 교수는 “2014년 5월부터 ‘해부·실습 트레이닝 코스’를 개설한다는 것을 떠올리고 곧바로 신청했다.

이탈리아 교수들은 백인 의사들 사이에서 유일한 동양인이 탁월하게 수술법을 익히는 것에 탄복했다. 모데나 대 교수들은 1주일 뒤 ”닥터 문은 한국 가서 그대로 수술해도 되겠다“고 박수를 보냈고, 문 교수는 귀국하자마자 귀 내시경 수술 준비를 했다. 구멍이 난 고막을 메우는 수술이었는데 비상상황을 대비해서 현미경 장비를 준비하고 귓구멍으로 수술 장비를 넣었고, 이탈리아에서의 실습 때처럼 어렵지 않게 성공했다. 이전의 수술법으로는 1시간~1시간40분 걸리던 수술이 40분 만에 가능했고, 환자의 퇴원은 이틀에서 하루로 줄었다. 통증과 흉터가 거의 없다는 것도 놀라웠다.

문 교수는 고막 안쪽만 문제가 있으면 내시경, 귀 뒤쪽까지 문제가 있으면 현미경으로 수술한다는 원칙으로 각종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환자 상태에 따라 두 치료법을 섞어서 수술하기도 한다. 2014년 11월 국제귀내시경수술연구회의 국내 유일 회원으로 가입했고, 이듬해 서울아산병원 정종우 교수를 회장으로 모시고, 국내에서 혼자서 귀내시경수술 연구를 위해 고군분투하던 부산대병원 이일우 교수와 함께 대한이과학회 내시경귀수술연구회를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문 교수는 2016년부터 스승 홍성화 교수의 뒤를 이어 삼성서울병원에서 본격적으로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하고 있다. 초반에는 너무 젊은 의사여서 환자들이 자신이나 아기를 맡기기 꺼려했지만, 수술 받은 환자와 보호자들을 통해 시나브로 소문이 나면서 매년 국내 환자의 1/7 정도인 100여명에게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하고 있다. 정확하고도, 빠른 수술은 의사와 환자들에게 소문이 날 정도다. 그는 또 재수술 비율이 4%대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대부분 기기 불량에 따른 것이라는 논문을 미국의학협회 《이비인후두경부수술지》에 발표해 국제학회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문 교수는 산학협력을 통해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에도 열심이다. 삼성전자와 함께 갤럭시 버즈프로 이어폰에 증폭기술을 추가해 간이 보청기로 쓰도록 하는 기술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 지난 3월 《임상과 실험 이비인과학》에 발표했다. 국내에 쓰이는 보청기가 대부분 고가의 외제여서 국산 보청기 개발을 목표로, 벤처기업과 인공지능을 활용한 소리 증폭과 소음제거 연구를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문 교수는 아기 환자들의 부모 가슴이 얼마나 타들어 가는지 알기에, 진료 때나 회진 때 부모의 질문에 대해서 궁금증이 남지 않을 때까지 설명한다. 얼만 전에도 오후 5시 회진 때 환자의 조부모, 외조부모, 부모 등 6명이 돌아가며 질문해서 1시간 반 동안 설명한 적도 있다. 닥터 쇼핑을 하는 엄마들에게도 그 마음에 공감하기 때문에 섭섭해 하지 않는다. 다른 병원으로 가겠다고 하면 그곳 교수들이 잘 이해해서 최선의 치료를 할 수 있도록 성심껏 자료를 준비한다. 환자 보호자가 어떻게 알았는지 이메일이나 전화로 연락 와도 최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려고 애쓴다.

문 교수는 두 가지 진료철학을 가슴에 담고 있다. 첫째는 민양기 교수가 강조한 ‘해를 끼치지 말라(Do No Harm)’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환자에게 해가 될 수 있는 치료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역지사지(易地思之)’다. 꼭 수술을 해야 할지, 보청기나 다른 방법으로 치료할지 판단해야 할 때에는 내 부모라면, 내 아이라면 어떻게 할지에 따라 결정한다.

문 교수의 가장 큰 기쁨은 환자가 정성스레 써서 보내온 편지를 읽는 것이다.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치료법을 결정하고 최선의 치료를 하면 많은 사람의 삶이 바뀐다는 것을 늘 가슴에 새기며 힘을 낸다. 문 교수는 수술실에 들어갈 때 심호흡을 하고 손을 닦으며 기도한다. 스승 홍 교수에게 배운 것이다. 오늘 환자를 잘 수술할 실력을 주시고,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가지 않게 해달라고….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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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의 댓글
  1. 김지열

    안녕하세요?
    문교수님 귀분야에 대한 열의와 진정성을 알아보니 대단하십니다.
    존경스럽네요…이런 분이 계신다는 것이 자랑스럽니다.
    문의 사항이 있는데요
    청각신경으로 인한 손상도 치료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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