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의사가 먼저 AI로 대체될까?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응급의학과 의사 혹은 응급실 전담의사 사이에는 ‘랩쟁이’란 은어가 있다. 단어의 묘한 어감에서 느낄 수 있듯, ‘랩쟁이’는 경멸과 비판, 짜증이 조금씩 섞인 표현이다. ‘검사실의 결과’를 의미하는 ‘Laboratory Finding’을 줄인 ‘Lab’이란 약어에 ‘~쟁이’를 붙여 만든 이 단어는 환자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무조건 온갖 혈액검사부터 처방한 후, 그 검사 결과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의사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그런 ‘랩쟁이’는 혈액검사 결과에 별다른 이상이 없으면 ‘검사 결과는 정상입니다’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말할 뿐, 그 다음에 시행할 검사와 치료에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왜냐하면 애초에 환자를 세심하게 관찰하여 정교한 치료계획을 세우려는 의지가 부족해서 ‘온갖 혈액검사를 시행하면 하나쯤은 이상이 있으려니’란 심정으로 무턱대고 혈액검사만 처방했기 때문이다.

물론 응급실에서 다양한 혈액검사를 처방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다만 각각의 혈액검사를 시행하는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온갖 혈액검사를 시행하면 하나쯤은 이상이 있으려니’란 생각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늘 이런 검사를 했으니 이번에도 따른다’는 이른바 ‘루틴 엄수’ 같은 태도도 문제다. 반면에 심지어 응급실에서 차방할 수 있는 모든 혈액검사를 시행하더라도 환자를 세심하게 관찰한 소견에 근거하면 결코 비난할 수 없다. ‘랩쟁이’의 문제는 단순히 혈액검사를 많이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제대로 진찰하지 않고 그저 ‘뭐라도 하나는 이상하겠지’라며 온갖 혈액검사를 기계적으로 시행하는 것이다.

대동맥박리 같은 무시무시한 질환도 심각하게 악화하기 전에는 혈액검사에 별다른 이상이 없을 때가 종종 있고, 급성 충수염과 급성 담낭염처럼 응급수술이 필요한 환자도 의외로 혈액검사에는 정상인 경우가 적지 않다.

급성 심근경색도 최소한 몇 시간이 지나야 심장효소(Cardiac Enzyme, 심장근육에 주로 분포하는 효소로 심장근육이 손상하면 수치가 증가한다) 수치가 증가하기 때문에 ‘심장효소 수치가 정상범위이니 큰 문제가 아니다’고 판단하면 환자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응급실이든 외래든, 실제로 진료가 이루어지는 ‘현장’에서는 교과서의 전형적인 사례에 어긋나는 환자가 많아 대충 온갖 혈액검사를 처방하고 뭐라도 하나쯤 이상이 있기를 기다리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태도다. 숙련한 임상의사가 직접 환자를 면밀히 관찰하고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만큼 신속하고 정확한 진단에 중요한 요소는 없다. ‘예측하기 힘든 비전형적인 사례에 해당했고 혈액검사도 모두 정상범위였습니다’라고 보고하는 사례들 가운데에서도 찬찬히 살펴보면 임상의사가 처음부터 세심하게 관찰하고 정교한 치료계획을 세웠다면 재앙을 막을 수도 있었던 경우가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대유행이란 전대미문의 재난으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2016년 3월 구굴이 만든 딥러닝 인공지능인 알파고가 팽팽한 승부가 펼쳐질 것이란 모두의 예상과 달리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에서 압승을 거두자 이른바 ‘알파고 쇼크’란 현상이 나타났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던 전문가 대부분은 알파고가 승리할 것이라 생각했고, 1990년대부터 멀지 않은 미래에 체스처럼 바둑에서도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에게는 이세돌 9단의 패배가 ‘갑작스레 성큼 다가온 멋지고 두려운 미래’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다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 대부분을 대체하는 음울한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특히 ‘알파고 쇼크’가 있기 전에는 단순하고 지루한 작업을 반복하는 비숙련노동자만 기계가 대체할 것이란 생각이 주류였지만, 이세돌 9단의 패배 이후에는 숙련된 엔지니어나 법조인, 기자도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의료인, 특히 의사도 예외는 아니어서 다양한 연구기관에서 발표하는 보고서에 ‘인공지능이 대체할 직업’으로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렸다. 물론 수술을 전담하는 외과의사와 심장내과처럼 시술을 시행하는 의사는 살아남을 것이라 전망했으나 ‘1차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의 전망은 하나같이 암울했다.

다행히 2016년 이후 도입한 다양한 의료 인공지능이 ‘의사를 완벽하게 대체하는 기계’보다는 ‘의사의 진단을 도와주는 훌륭한 도구’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났으나 환자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기계적으로 온갖 검사를 처방하는 ‘랩쟁이’는 과연 미래에 다가올 인공지능의 도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에디터 kormedimd@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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