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나쁜 소식의 전령’이 돼야 할 때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응급실에는 온갖 중환자가 실려 온다. 응급실 도착 전 심장이 멎은 환자도 적지 않다. 그런 환자 가운데 급성 심근경색으로 치명적인 심실세동이 발생한 환자나 찹쌀떡 같은 음식에 기도가 막힌 환자는 심장이 멈춘 시간이 길지 않다면, 그러니까 응급실 도착 직전에 심정지가 발생했다면 약간이나마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전자에겐 신속하게 심폐소생술을 시작하고 심장내과의 도움을 얻어 관상동맥조영술을 시행하면 가끔씩 ‘심정지로 실려 왔다가 걸어서 퇴원하는 기적’을 마주할 수 있다(ECMO 같은 시술이 가능해지며 그 희망은 조금 더 커졌다). 후자에게도 기관내삽관, 기관절개술 같은 시술을 재빨리 시행하여 기도(air way)를 확보하면 심장이 멈춘 시간이 짧으면 때때로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심정지가 와도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안타깝게도 응급실을 방문하는 중환자 가운데 다수는 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 방금 전까지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하며 스스로 걸어서 응급실을 찾았지만 급격히 의식이 저하됐고 의료진이 시행한 뇌 컴퓨터단층촬영(CT)에서 심각한 자발성 지주막하출혈이 발생했다면, 뇌혈관조영술 같은 시술과 개두술 같은 수술이 단지 ‘심장을 며칠 정도 살려두는 것’에 그칠 때가 종종 있다.

교통사고 혹은 산업현장의 추락사고로 중증외상을 입고 방문한 사례도 마찬가지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신속하게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소생술을 시작하고 외상외과 의사가 바로 수술실로 환자를 옮겨도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심지어 수술실로 옮길 의학적 이유조차 없는 안타까운 사례도 존재한다.

그런 사례에서 응급의학과 의사는 ‘나쁜 소식의 전령,’ ‘다가올 재앙을 알리는 음울한 사절’이 될 수밖에 없다. 또 그런 소생가능성이 희박한 환자가 심정지를 맞으면, 통상적으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20-30분 뒤에도 심장박동을 회복하지 못하면 사망을 선언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보호자는 당연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때로는 20-30분 간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사망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몇 시간씩 무의미한 심폐소생술을 지속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다소 냉담하고 야속하게 느낄 가능성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결정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몇 시간씩 지속하는 무의미한 심폐소생술의 이유 대부분은 의사가 보호자와 환자에 지나치게 감정이입했거나 혹은 보호자에게 나쁜 소식을 전할 용기가 없어 몇 시간씩 지속하는 심폐소생술에 보호자가 지쳐서 ‘그만 하세요’라 말하기를 기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공감할 뿐, 동정하지 말라’는 원칙을 어긴 것이며 후자는 전문가의 책임을 방기한 것이다.

응급실이 아닌 외래와 병동도 이런 ‘다가올 재앙을 알리는 음울한 사절’의 역할에서 자유롭지 않다. 예를 들어 말기암을 치료하는 임상과 의사는 가끔 환자 본인에게 직접 ‘당신은 장기간 생존할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적극적인 치료는 이미 의미가 없으며 길어야 수 개월의 시간이 남았습니다’ 같은 말을 전할 때가 적지 않다. 특히 환자와 보호자가 객관적인 의학적 사실에도 여전히 완치에 대한 강렬한 희망을 지닌 경우, 자칫 서로 신뢰가 깨어지고 얼굴을 붉히는 상황을 마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전문가로 지닌 지식과 상식을 외면하고 횐자와 보호자에게 ‘헛된 희망’에 가까운 따뜻한 말을 건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사무적이고 냉담한 태도는 나쁘지만 정중하고 담담하게 환자와 보호자에게 다가올 차갑고 음울한 사건을 알리는 것이 전문가로 의사가 해야 할 진정한 역할이 아닐까?

에디터 kormedimd@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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