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치료 거부, 품위 있는 죽음.. 정진석 추기경 선종

[사진=뉴스1]

정진석 추기경(90세, 천주교 전 서울대교구장)이 27일 오후 10시15분 노환으로 선종했다. 고인은 지난 2월 건강이 악화돼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정 추기경은 고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우리나라가 배출한 두 번째 추기경이다. 어렸을 적 과학자가 꿈이었던 고인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지만, 피난 과정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면서 과학도에서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고인은 가톨릭대 신학부에 입학해 1961년 사제품을 받은 후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임했다. 교회법 연구의 권위자인 고인은  총 49편의 저서와 번역서 14편을 남겼다.

고인은 노환에 따른 대동맥 출혈로 수술 권유를 받았으나 죽음을 잘 준비하고 싶다는 평소의 뜻을 밝히며 연명치료를 받지 않았다. 한때 병세가 호전되기도 했으나 병원 입원 두 달여 만에 별세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고인이 지난 2006년 사후 장기기증과 각막기증을 서약하면서 안구 적출 수술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병원 입원중이던 지난 3월 고령의 나이로 인해 장기기증 효과가 없다면 안구라도 기증해서 연구용으로 사용해 줄 것을 다시 강조하기도 했다.

고인은 지난 2018년 9월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서명했다. 회생 가능성이 없어도 환자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금기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시기에 정진석 추기경의 결단은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치료 효과 없이 무의미하게 이어가는 연명치료와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국내에서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지난 2018년 2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말기-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을 중단해 품위 있는 죽음을 맞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환자 본인, 의사와 환자 가족의 합의 등에 의해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나면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이 80만 명을 넘어 섰다. 건강할 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미리 서류상 밝혀 놓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정진석 추기경은 마지막까지 존엄성을 유지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으면서 연명의료에 대한 큰 울림을 주었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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